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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650개의 촌철살인 잠언 … 인간의 이기성 낱낱이 해부

테오도르 샤세리오(1819~1856)가 그린 라로슈푸코의 초상화(1836).
본래 모습 그대로 사랑하는 것은 참 어렵다. 하지만 못난 자식이나 못난 부모는 못난 그대로, 돈 못 벌어오는 남편은 돈 못 벌어오는 그대로 사랑해야 한다.

<34> 라로슈푸코 『잠언집』

많은 사람들이 성불(成佛)이나 ‘하느님의 자녀’가 되길 꿈꾸고 소망하는 것은 어쩌면 지금 이대로의 인간 모습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더러움’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찌하랴. 사람을 변화시킨 다음에 사랑하는 것보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게 훨씬 쉬운 것을···.

사람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사랑하려면 우선 사람의 참모습, 본 모습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읽으면 좋은 책은 프랑스 고전 작가 프랑수아 드 라로슈푸코 공작(1613~1680)가 쓴 『잠언집(箴言集·Maximes·1665)』이다.(전체 제목은 프랑스어로 『Reflexions ou sentences et maxime morales』, 영어로 『Collected Maxims and Other Reflections』라고 하지만 줄여서 『Maximes』, 『Maxims』라고 한다.)

잠언은 인간의 본성과 행동 양식, 사회에 대해 짧게 표현한 교훈이다. 경험에 바탕을 둔 깊은 성찰에서 우러나온 말들이다. 잠언은 무릎을 치게 하는 탁견(卓見)이나 패러독스, 수수께끼 같은 알쏭달쏭함으로 신선한 깨달음을 선사해야 한다. 총 650구(句)로 구성된 『잠언집』은 고대로부터 시작된 잠언이라는 문학 장르를 완성한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완결편이라고 해도 무장하다.

『잠언집』의 한글판과 영문판(프랑스어 원문 포함) 표지.
대귀족 가문 출신의 반골·반항아
라로슈푸코는 잠언 작가가 되는 데 딱 들어맞는 다채로운 삶을 살았다. 『잠언집』은 그의 삶의 산물이다. 대귀족 가문 출신인 라로슈푸코는 군인이자 정치가였다. 중간 중간 쉬었지만 그의 군생활은 1629년 16세때 시작돼 33세인 1646년에 끝났다. 정치가로서는 ‘바위에 달걀 부딪치기’를 좋아했다. 강대국 프랑스를 만든 두 명의 추기경 겸 총리와 맞섰다. 루이 13세 때의 총리인 리슐리외 추기경(1585~1642)에 대한 음모에 가감했다가 투옥됐다. 루이 14세의 시대에는 총리 마자랭(1602~1661)과도 싸웠다. 마자랭을 겨눈 프롱드의 난(1648~1652)에 주모자로 나섰다가 패하여 1652년 정계에서 은퇴했다. 15세에 결혼에 자식 여덟을 두었지만, 당시 한가락하는 남성들이 흠모하는 여성 3명과 순차적으로 염문을 뿌리기도 했다.

『잠언집』은 당시 꽃피운 살롱 문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라로슈푸코는 사상가·수학자 블레즈 파스칼(1623~1662)이 포함된 마담 드 사블레의 살롱 빈객이었다. 이런 식으로 잠언이 생산됐다. 발제자가 인간과 사회에 대해 한 말씀 하면, 나머지 손님들이 질문하고 비평했다. 모든 손님들이 수긍할 때까지 잠언을 가다듬었다.

『잠언집』을 관통하는 인간에 대한 결론은,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자기애(自己愛·amour-propre·self-love)와 이기심이라는 것이다. 『잠언집』의 대표 잠언은 “우리의 미덕(美德)은 대개의 경우 위장된 악덕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할 수 있다. 악덕을 미덕으로 포장하는 이유는 이기적인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 위선에 대해 라로슈푸코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애는 가장 위대한 아첨꾼이다.” “이기심은 어떤 사람들은 눈을 멀게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빛을 가져온다.”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의 불행을 감당할 만큼은 충분히 강하다.”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모든 악행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한 사람도 없다.” “대부분의 인류 구성원에게 감사란 단지 더 큰 호의에 대한 은밀한 기대에 불과하다.” “제일 친한 친구들의 불행에서 우리는 우리를 불쾌하게 하지 않는 뭔가를 항상 발견한다.”

자 이제 인간 관계 일반에서 사랑이라는 특수하고도 특별한 인간관계로 넘어가 보자. 라로슈푸코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의 열정은 종종 가장 현명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지만 가장 우둔한 사람을 현명하게 만들기도 한다.” “좋은 결혼 생활은 있으나 정말 좋은, 달콤한 결혼 생활은 없다.” “진정한 사랑은 유령의 출몰과 같아서, 모두 화제로 삼고 있지만 실제로 봤다는 사람은 극소수다.” “우리가 사랑을 사랑이 낳은 대부분의 결과로 평가한다면, 사랑은 우정보다는 증오를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은밀한 관계에 흠뻑 빠져본 적이 한번도 없는 여성은 찾을 수 있어도, 딱 한번 그런 적이 있는 여성은 희귀하다.” “부재(不在)는 흔한 욕정을 잦아들게 하지만, 큰 욕정은 치솟게 한다. 바람이 촛불을 끄지만 큰불은 번지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이 잠언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Out of sight, out of mind)”는 말보다 훨씬 포괄적이다.)

한국 정치를 논할 때 써먹을 만한 라로슈푸코의 잠언은 이런 게 있다. “한쪽만 잘못인 다툼은 오래가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희망에 따라 약속하고 우리의 두려움에 따라 약속을 실천한다.” “위대한 사람들의 영광을 평가할 기준은 그들이 그 영광을 쟁취하는 데 동원한 수단이다.” “오직 큰 인물에게만 큰 결함이 있다.” “우리를 따분하게 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은 거의 항상 따분하다.”

말년과 죽음에 대해 완벽하게 준비
잠언을 이해하려면 충분한 경험과 연륜이 필요하다. 다음과 같은 라로슈푸코의 알쏭달쏭한 말을 이해하려면 말이다. “위선은 악덕이 미덕에 바치는 헌사다.” “지성은 항상 마음에게 속임을 당한다.” “허영심과 함께 하지 않는 미덕은 멀리 갈 수 없다.” “우리는 종종 우리를 따분하게 하는 사람들을 용서하지만 우리가 따분하게 하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다.” “늙은이는 조언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쁜 본보기가 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는 데에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진실을 감춘다는 이유로 속상하면 안 된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우리 스스로에게 진실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태어난 고장의 말씨는 그의 말투뿐만 아니라 마음과 가슴에 남아 있다.”

생활의 지혜로 삼을 만한 것들은 이것들이다. “우리는 절대 생각하는 만큼 불행하지도, 희망하는 만큼 행복하지도 않다.” “책보다는 인간을 공부하는 게 필요하다.” “특정 사람보다는 인간 일반, 인류에 대해 아는 게 더 쉽다.” “영리함의 정점(頂點)은 영리함을 숨길 수 있는 능력이다.” “친구들에게 속임을 당하는 것보다 친구들을 의심하는 게 더 부끄러운 일이다.”

라로슈푸코는 일찌감치 말년과 죽음을 준비했다. “라로슈푸코는 마지막 순간들을 너무나 자주 생각했기에 그의 마지막 순간들은 그에게 전혀 새롭거나 낯설지 않았다”라는 말이 전한다.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조나선 스위프트(1667~1745)는 이렇게 인간을 어둡게 묘사한 『잠언집』을 옹호했다. “잘못은 부패한 인간의 마음에 있다. 라로슈푸코는 잘못이 없다.” 『잠언집』은 비트겐슈타인·키르케고르·니체 등 대문호들에게 영향을 준 책이다. 프랑스 계몽기 사상가 볼테르(1694~1778)는 프랑스인의 국민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라고 평가했다. 프랑스인들이 즐기는 인간 심리에 대한 성찰,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표현은 『잠언집』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동북아가 ‘성선설 vs 성악설’에 대해 고민할 때, 서구는 ‘인간은 완전히 타락했느냐’ 아니면 ‘원죄로 타락한 인간도 선을 행할 일말의 자유의지는 있느냐’를 두고 다퉜다. 그 과정에서 마키아벨리(1469~1527)의 『군주론』(1532)과 애덤 스미스(1723~1790)의 『국부론』(1776)은, 이기적인 인간본성은 그대로 두고, 한 정치·경제 공동체가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는 틀을 제시했다. 근·현대 서구를 만든 3대 저서에, 이기적인 사람들과 살면서 행복할 수 있는 법을 제시한 라로슈푸코의 『잠언집』을 꼭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억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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