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그의 예술혼 표현 위해 연주자들은 손 ‘혹사’

구스타프 클림트의 ‘피아노 치는 슈베르트2’(1899). 슈베르트는 평생 자기의 피아노를 갖지 못했다.
왕년의 스타 프란츠 리스트. 본인 말고는 아무도 못 칠 줄 알았던 초절기교의 곡들을 200년 뒤 대한민국의 입시생들이 눈 감고도 칠 줄 상상이나 했을까. ‘너무 쓸데없이 어렵다’며 연주를 거절당했던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연주하는 것이 석탄 천톤을 삽으로 푸는 스테미너와 맞먹는다는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3번도 이제는 대부분 피아니스트들의 십팔번이 된지 오래다. 프로그램에만 넣으면 테크니션이라는 수식어를 자동으로 안겨주던 발라키레프의 ‘이슬라메이’나, 그보다 더 어려운 곡을 만들겠다는 일념 하에 라벨이 칼을 갈고 쓴 ‘스카르보’ 역시 이제는 완벽하게 연주하지 못하느니 안 하는 게 나은 곡들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 누구에게도 기술적으로 정복당하지 않은 최후의 난곡을 우리 음악가들은 안다. 문제는 음악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 답을 눈치채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일단 정답부터 말하겠다. 답은, 슈베르트의 기악곡들이다.

음악가만 아는 것들 ① 슈베르트

가곡의 왕 슈베르트는 사실 다작의 왕이다. 650곡이 넘는 가곡 이외에도 미사곡, 극음악, 교향곡, 관현악곡, 실내악곡, 피아노곡 등 모두 합쳐 800곡에 달하는 곡을 쏟아냈다. 그처럼 방대한 양의 작품을 그토록 다양한 종류로 써낸 사람은 바흐 이래 슈베르트 한 사람 뿐이다. 서른 둘로 박명한 그가 마흔만 넘겼더라도 바흐의 작품수(천여곡)를 넘겼을지 모르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그 모든 작품이 하나같이 수작이라는 것이다. 사실 생의 전반에 걸쳐 고루 수작을 써낸 작곡가는 생각보다 흔치 않다. ‘환상교향곡’을 쓴 베를리오즈나 ‘카르멘’을 작곡한 비제의 다른 작품을 다섯곡 이상 떠올릴 수 있던가? 그런데 슈베르트는 히트작만 수십곡이다. 하지만 내가 보는 가장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다. 그건 바로, 이 모든 작품이 별 다른 이유 없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바흐는 교회에, 하이든은 귀족에, 모차르트는 돈을 주는 사람에게 고용되어 작품 활동을 한 피고용자였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은 말년의 모차르트나 타고난 반골 기질의 베토벤처럼 순전히 자의로 체제전복을 꿈꾼 위인들에게 슈베르트는 멀고도 멀었다. 그는 고용되지 못한 실업자에 불과했다. 비유하기엔 어쭙잖지만 칼럼 마감 다섯시간 전까지도 두 줄 이상을 채 못 적는 내가 마감 시각을 넘기는 순간부터 속필가가 되는 것만 보아도, 200년전의 무직자가 누구도 독촉하지 않는 곡을 수백개나 써내려갔다는 건 실로 불가사의다. 그것은 곧 그의 음악이 태생부터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증명한다.

아론 코플랜드는 말년에 스스로의 영감이 바닥났다는 것을 시인했다. 서태지도 창작의 고통은 감당하기 힘든 것이라 했다. 짐작컨대 슈베르트는 이게 대체 무슨 말들인가 했을 것이다. 그의 작품들은 가만히 있어도 그에게로 알아서 찾아오는 영감을 받아적은 즉흥곡과 다름없다. 단 최고급 재료에 걸맞은 최고급 기계로 짜낸 쥬스 같은 모차르트의 음악에 비한다면 슈베르트의 음악은 직접 손으로 짜낸 쥬스라고 할까.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모차르트의 최고급 기계는 단순히 형식이나 구성을 일컫는 것만은 아니다.

모차르트는 어린 시절 서유럽 전역으로 연주 여행을 다닐 정도의 피아노 신동이었다. 따지고 보면 군중 앞에서 피아노 배틀을 벌일 정도의 베토벤, 틈만 나면 직접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던 하이든과 멘델스존, 모두 악기와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다음 세대의 슈만, 쇼팽, 리스트는 말할 것도 없는 피아노의 귀재들. 슈베르트처럼 악기의 매카니즘에 무지한 음악가는 실로 드물었다. 외국어를 공부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책을 소리내지 않고 입만 벌려 여러번 읽는 것은 실제 발음 연습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걸. 사람의 발성은 혀끝과 입 속, 깊게는 목구멍과 콧 속까지 모두가 총동원돼야 하니 음소거 상태에서 연습해보는 발음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걸. 음악이 이와 같다. 작곡가가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곡상은 악기를 가지고 소리를 내면 전혀 다른 결과물을 낳고 만다. 쇼팽, 슈만, 리스트의 피아노 음악이 멜로디부터 다른 것은 그들의 음악성이 달랐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들 각자가 피아노를 다룬 방식이 상이했기 때문이다.

거꾸로 슈베르트가 또 다른 피아노 신동이었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슈베르트의 멜로디들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클래식 음악사에 가장 다행스러운 일 중 하나인 걸까. 자신의 가곡 ‘마왕’의 반주부를 쳐달라는 친구의 부탁에 슈베르트는 “이런 건 악마나 치라고 해” 했단다. 최고로 단순한 소품도 악마적 기교들로 장식해 편곡하는 게 취미던 리스트가 이 곡도 손을 댔다. 헌데 이 지극히 피아노적인 편곡반은 원곡의 비논리적 난이도에 비하면 너무 합리적이라 심지어 쉽게 느껴질 정도다. 리스트도 이 곡은 어려웠나보다.

아직까지는 슈베르트를 연주하며 손이 꼬이지 않는다는 피아니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를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스케일은 불규칙해서 도저히 손에 익지 않고, 화성 전개마저 엉뚱하기 그지없어 머리로도 익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곡들은 떠오르는 악상을 그대로 악보에 옮긴 것이기 때문에 듣는 이에게는 전혀 어렵지 않다. 듣기에는 한없이 우아한 ‘백조’같은 슈베르트의 음악. 물 속에서 쉬지 않고 발 굴러야 하는 음악가들에게는 손해보는 장사임이 틀림없는데도 지금 이 시각까지 전세계 구석구석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다. ‘고작’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접어두는 것은 불가능한 치명적 아름다움이니, 우리의 고충 쯤은 몰라줘도 어쩔 수가 없다.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