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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접받지 못하는 예술가

독일 작곡가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로 불린다. 어떤 사람은 독일어로 ‘시냇물’을 뜻하는 ‘바흐’라는 이름에 빗대어 그를 ‘음악이라는 거대한 물줄기의 발원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칭호들은 후대의 사람들이 그의 예술성을 높이 평가해서 붙여준 이름일 뿐, 생전에 바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대우를 받지는 못했다.

바흐가 살던 바로크 시대는 신분 질서가 엄격한 절대 왕정의 시대였다. 당시 문화의 중심지는 교회와 궁정이었는데, 음악가들은 이런 교회와 궁정·시에 소속되어 교회와 왕이나 귀족의 후원을 받아 생활했다. 당시 음악가들은 고용인에 불과했다. 교회와 궁정에는 주방 담당, 청소 담당, 손님 접대 담당, 의상 담당, 회계 담당 등 여러 종류의 고용인이 있었을 것이다.

음악가는 그 중 음악을 담당하는 고용인이었다. 물론 음악가는 창조적인 일을 담당하니만큼 접시를 닦거나 마당을 쓰는 사람보다는 나은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용인으로서의 신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음악의 아버지로 존경하고 있는 바흐 역시 사실은 고용인에 불과했다. 그는 생의 후반기를 라이프치히에 있는 성 토마스 교회의 칸토르(일종의 음악감독)로 일했는데, 그 고용계약서를 보면 당시 음악가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칸토르는 시의회에 최대한 존경과 복종을 표시해야 한다. 의원들 중 누구라도 음악을 듣기 원하면 바로 학생을 보내줘야 한다. 칸토르는 시의원과 나란히 서 있으면 안 되고, 장례식 때는 학생들 옆에서 행렬에 참가해야 한다.”

이런 식이었다. 심지어는 책임자의 허락 없이는 절대로 도시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굴욕적인 조항도 있었다. 당시에는 음악가를 음악을 만들어내는 기능공 정도로 생각했고, 이 때문에 바흐는 끊임없이 자신의 고용주와 마찰을 빚었다.

이 점은 서양 음악사상 최고의 천재로 꼽히는 모차르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을 고용한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무식함에 넌덜머리를 내곤 했다. 모차르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아마데우스’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도피’의 초연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 객석에서 오페라를 감상한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황제가 무대 뒤를 찾았다. 그는 모차르트에게 작품이 매우 훌륭하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무조건 칭찬만 해서는 황제로서의 권위가 서지 않는다고 생각했던지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가한 저녁에 듣기에는 너무 음표가 많아. 음표를 조금 줄이도록 하지.”

음악에 대해 조예가 깊었던 요제프 황제가 정말로 이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술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잘난 체 하는 고용주를 풍자하기 위해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여하튼 영화에서 황제의 말에 어이없어 하던 모차르트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런데 이렇게 황당한 일이 우리 주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몇 년 전에 한 사립대학의 이사장이 학교 교정에 서 있는 모자상(母子像)이 5등신에다 머리가 너무 크다며 그것을 만든 미대 교수에게 조각상을 8등신의 늘씬한 미인으로 바꾸라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사장의 ‘팔등신 미인론’을 거부한 교수는 재임용에서 탈락되었고, 그 후 길고 긴 법정 싸움을 끝에 겨우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예술가를 하인으로 취급했던 바흐나 모차르트 시대의 얘기가 아니다. 21세기, 소위 민주사회를 표방하고 있는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시대가 달라졌어도 돈이나 권력,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예술가에게 전횡을 휘두르는 사람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 예술가가 이런 사람을 만나면 정말로 답이 없다.

앞의 ‘8등신 미인론’에서 보듯이 시작은 거의 코미디에 가깝지만, 그 코미디 같은 요구를 거절했을 경우 예술가가 겪어야 할 현실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기 때문이다.



진회숙 서울시향 월간지 SPO의 편집장을 지냈다.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공부하기 등에서 클래식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클래식 오딧세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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