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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마천루·하수구 … 도시의 금단지역을 탐하다

도시탐험가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평소에 접근하기 어려운 고층빌딩 꼭대기와 깊숙한 지하터널 등에 잠입하며 스릴을 느낀다. 도시 공간을 새로운 각도에서 체험하는 실천이자 일상의 무관심에 저항하기 위한 모험이다. 영국 런던도시탐험연합이 런던 네오뱅크사이드 고층빌딩에서 촬영한 사진. [사진 메디치미디어]


도시해킹

브래들리 L 개럿 지음

오수원 옮김, 메디치미디어

368쪽, 1만7000원




한 발짝만 헛디디면 여지없는 추락이다. 두 명의 침입자가 런던에서 가장 높은 빌딩 ‘더 샤드’(308m)의 꼭대기에 올라선다. 템즈강이 욕조처럼 보이고 정박된 벨파스트호(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순양함)는 장난감 같다. 긴장감에 뒷목이 뻣뻣해지고 아드레날린이 치솟아 온몸이 덜덜 떨린다.



 경비원을 속이고 출입이 금지된 마천루를 ‘불법’으로 정복한 이 책의 저자 브래들리 개럿은 도시인류학자이면서 ‘도시해커’다. 그는 도시해킹의 경험을 논문으로 써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시해킹은 권력이 금지구역으로 정해놓은 곳을 침입하는 행위다. 저자는 여기에 철학적 근거를 보탠다. “시민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규정하는 말끔한 서사에 위협을 가하며, 부당하게 제약받아온 도시 속 우리의 권리를 되찾는 행위”라고.



 이 책은 저자가 공간해커들의 모임인 런던도시탐험연합(LCC)과 함께 2008년부터 최근까지 런던과 해외의 폐건물·고층빌딩·하수구를 누빈 기록이다. 땅속부터 하늘 위까지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공통점이라면 모두 보안 구역이나 사유 재산이라는 이유로 출입이 금지된 곳이다. 탐험가들의 직업은 목사·청소부·사진작가·교사·경찰 등으로 다양하다. 그 중 여자는 10~15%다.



 탐험가는 대부분 도시 속 폐허나 폐건물에 끌려 도시해킹에 입문한다고 한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시간이 공간에 새긴 두터운 무늬에 매혹된 이들은 고층건물·하수구 등으로 발을 넓힌다. 공사 중인 건물을 기어오르고, 맨홀 뚜껑을 열고 하수구를 들쑤시는 일이 위험하지 않을 리 없다. 크레인에서 떨어지거나 폭우 때 하수구에 익사할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실제로 미니애폴리스에서 폭우에 휩쓸려 익사하거나 방콕의 한 호텔 5층에서 추락사한 이도 있다.



 아무 짝에도 필요 없어 보이는 짓을 죽음까지 무릅쓰고 하는 이유가 뭘까. “물질적 사회와 거대도시라는 신진대사 체계에 잠입하고 그 내부의 장기를 건드리며 도시의 정맥과 동맥 속에서 이득도 없고 무의미한 전복적 유희를 즐김으로써, 우리는 대안적 길을 만들고 작은 가능성의 파편들을 창조한다.” 도시의 내밀한 구석을 샅샅이 훑었다는 자부심이 엿보인다.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은 도시해킹이 마약처럼 빠져나오기 힘든 강렬한 열락(悅樂)이 있어서다. 죽거나 다칠 수 있음에도 극단적 경험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뜻하는 ‘엣지 워크’(Edge Walk), 이게 원동력이다. “탐험을 중지하는 것은 철이 든다거나 신체적으로 하던 일을 못하게 되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엣지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블로그에 올렸다가 영국의 유명인사가 됐지만 건물에 대한 불법 침입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기도 한다. 심지어 미국 국가대테러센터의 수사대상에도 올랐다. 하지만 그는 떳떳해 보인다. “도시인들은 과로에 시달려 고단하고 권태에 찌들어 있으며 심드렁하다. 그들은 정부와 기업과 금융기관과 자신의 일에 좌절을 느낀다. 우리의 탐험은 이들을 일상에서 끌어내며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영역을 선사한다.”



 그의 탐험기를 읽으며 무지막지한 빠르기로 폐허를 지워내는 한국에 아직 남아 있는 몇몇 탐험 장소를 떠올리고 말았다. ‘가봐야 하나’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뇌물 주거나 인부로 위장 … 침입’의 기술



도시탐험은 ‘금지된’ 곳을 파고드는 일이다. 철조망·CCTV·경비원이 있는 구역에 어찌 침입할 수 있었을까.



의외로 전문적이진 않다. 냅다 달려서 경비원을 따돌리거나 뇌물을 건네기도 하고 뜯어진 철조망이나 뚫린 외벽을 찾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물리적 허술함보다 심리적 허술함을 노리는 게 더 효과적이다. 하수구 탐험을 예로 들면 이런 식이다. 인도에 차를 세운 뒤 야광안전조끼를 꺼내 입고 컬러콘으로 그 구역을 아예 막는다. 테이프를 둘러 저지선을 만들어 도로교통국의 공사 현장처럼 보이게 한다. 그리고 사람이 보고 있든 말든 그 자리에서 맨홀 뚜껑을 들어올리고 내려간다.



 건설 현장에선 안전조끼와 안전모를 쓰고 그저 건설 노동자인 척 하는 것만으로도 의심을 피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태연자약한 태도가 필수다.



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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