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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이야기꾼 성석제의 서민 예찬 … 힘없지만 궂은 일 다한 만수씨

[일러스트 강일구]


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창비

372쪽, 1만2000원




투명인간 천지인 세상.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투명인간을 만들어줄 마법의 망토가 세상에 널린 것도 아닐 텐데, 투명인간 투성이라니.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는 반응이 제격이겠지만, 투명인간을 양산하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공범이다.



 우리의 무관심과 타인에 대한 무시가 있어도 없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수많은 투명인간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무관심은 편리하다. 자신의 일만으로도 복잡한 사람들이 남의 일에 얽히고설키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결코 현명하지 않은 처신이다. 그러니 모르는 척, 안 보이는 척, 못 본 듯 넘기는 무관심을 가장하게 되는 터다.



 게다가 경제적·사회적 지위로 남을 저울질하는 우리의 못돼 먹은 태도는 한 사람을 온전한 인격체로 여기지 않는, 그래서 투명인간처럼 만들어버리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소설의 주인공 김만수가 “나는 오래도록 신용불량자였고 그때 은행이나 장사하는 사람들이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경제적으로는 투명인간이었다”라고 말하듯.



 주인공 김만수는 대한민국 필부의 전형에 가깝다. 두메산골 개운리에서 3남3녀의 넷째로 태어난 그는 딱히 눈에 띄지 않는 인물이다. 허약하게 태어난데다 매사에 이해가 더뎌 조금은 모자라게까지 보이는 만수씨는 그저 착하고 순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 착하고 순박한 만수씨의 어깨에는 감당하기 힘든 짐이 잔뜩 실려있다. 부잣집 삼대독자였지만 일제강점기에 사상 문제로 고초를 겪은 뒤 세상을 등진 할아버지와 그런 할아버지를 미워하며 일자무식의 농부로 한평생 가족을 부양하다 술꾼으로 전락한 아버지, 명석한 머리를 타고나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베트남전에 파병된 뒤 고엽제로 목숨을 잃은 큰 형, 위장취업을 한 뒤 행방불명된 남동생의 빈자리를 메우고 어머니와 누이를 챙겨가며 가족을 건사한다.



 이야기는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만수씨의 고단한 삶을 압축적으로 그려낸다. 서술의 방식은 다소 독특하다. 만수씨의 가족과 친구, 동료 등 주변 인물이 차례로 화자로 등장해 만수씨와 얽힌 에피소드와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마치 계주에서 주자들이 바통을 주고 받으며 경기를 이어가듯 숱한 화자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릴레이로 이어지며 빚어내는 모자이크는 압축 성장을 경험한 우리의 현대사인 동시에, 만수씨의 삶이며, 사람들의 이야기다. 작가는 저글링하듯 이 무수한 화자들의 이야기를 능수능란하게 던지고 받아가며 거대한 서사시를 펼쳐낸다.



 만수씨는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온갖 궂은 일을 마다치 않으며 희생을 감수하지만, 그의 희생을 밟고 선 이들은 만수씨에게 매몰차게 등을 돌린다. 만수씨는 현실의 무게에 짓눌린 채 투명인간이 되고 말지만, 이렇게 말한다. “죽는 건 절대 쉽지 않다. 사는 게 훨씬 쉽다. 나는 한 번도 내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내게는 아직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니까”라고.



 소설은 세상의 숱한 만수씨를 향한 찬가다. 끝없이 만수씨를 뒤흔드는 세파에도, 만수씨 따위는 보이지 않는 듯 세상이 그를 업신여겨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미련스럽게 우직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숱한 만수씨가 있기에 오늘의 우리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다는.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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