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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으로] 60대가 80대 모시는 '노노 부양' 14만 세대

최종덕(96) 할아버지네 4대 아홉 식구가 1일 대전시 서구 관저동 집 앞 놀이터에 모였다. 최 할아버지(앞줄 모자 쓴 사람)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아들 호붕(65)씨, 손자 석근(35)씨와 증손자 현왕(9)군, 손자며느리 윤현정(37)씨와 증손자 현호(1)군, 증손녀 선희(13)양, 며느리 신명화(61)씨, 증손녀 혜현(11)양. 할아버지는 “이게 (4대 동거) 신문에 나올 만큼 신기한 일이냐”며 웃었다. 호붕씨는 “아버지가 매일 운동하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부모도 노인, 자녀도 노인-. 백발의 자식이 팔순 또는 구순 부모를 모시는 ‘노노(老老) 부양’ 시대가 왔다. ‘소노(小老·자식 노인)’가 ‘대노(大老·부모 노인)’를 모시는 것이다. 평균수명이 늘고 80세 이상 초고령 노인이 급증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그런 세대가 어느 정도인지 통계청이나 보건복지부의 공식 통계는 없다. 본지는 건강보험공단의 건보 가입자 자료를 활용해 ‘부모 노인, 자식 노인’으로 된 가족 현황을 뽑아봤다. 지난해 기준으로 14만2065세대였다. 2009년(11만6455세대)에 비해 22% 증가했다. 60∼70대 자식 노인이 80세 이상 부모 노인과 건보 기준으로 동일 세대를 구성하고 있는 경우다.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나 지역가입자의 세대원 형태로 등재돼 가족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노노 부양 세대는 앞으로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다. 이번 자료는 주민등록상 동일 세대 구성원을 뽑았다. 동거 여부는 드러나지 않는다.

4대 동거 65세 아들 "부족한 것 채워줘 행복해요"
부모·자식 함께 돌보는 낀 세대 "내 인생은 어디에"



동거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자식 노인이 부모를 부양하는 경우가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증조부모에서 손자까지 4대가 동거하는 경우는 올해 1만615세대다. 핵가족화 현상 때문에 4대 동거세대가 매년 줄어왔고 앞으로도 줄어 2035년에는 지금의 절반(4452세대) 이하로 줄어든다. 4대 중에서 최연장자인 1대가 85세 이상인 경우는 2014년 261세대에서 2035년 458세대로 증가한다. 통계청 관계자는 “1대가 85세 이상이면 2대는 60세 이상일 가능성이 커 노노 부양 세대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준비가 덜 된 채 노후를 맞은 자식 노인에게는 노노 부양이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지금 60대의 39%만이 국민연금을 받는다. 본인도 부양받아야 할 시점에 80세 넘은 부모를 돌봐야 한다. 어떤 경우는 20대 자식을 부양해야 한다. 아래위를 동시에 부양해야 하는 ‘낀 세대’다. ‘노노 가족’을 만나 사연을 들어봤다.



노노 부양의 행복



 ◆4대가 함께 살다
=“고놈 나를 닮아 아주 잘 생겼네.”



 백발의 최종덕(96) 할아버지가 생후 석 달밖에 안 된 막내 증손자 현호를 보며 껄껄 웃었다. 굵은 주름이 눈가에 가득 잡혔다. 쌍꺼풀 없는 눈매에 아담하고 오뚝한 콧날. 유전자는 100년 가까운 세월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요즘 증손자 보는 재미에 살맛이 난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들 최호붕(65)씨는 옆에서 더 싱글벙글했다. “우리 아버님 정말 정정하시죠? 아버님에 비하면 나는 진짜 젊은 거라니까. 하하.”



 최호붕씨는 20년 전부터 부모를 모셨다. 주유소 직원에서 시작해 사장이 되면서 생활의 여유를 찾기 시작할 무렵부터다.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9년 전 심장마비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2011년엔 아들 석근(35)씨가 그 빈자리를 채웠다. 대전에 식당을 개업하면서 “다 같이 살자”고 나섰다. 그렇게 4대(代) 아홉 식구가 한 지붕 아래 옹기종기 모여 산다.



 어느덧 호붕씨와 아내 신명화(61)씨는 환갑을 넘겼다. 손자·녀 7명을 둔 할아버지·할머니가 됐다. 손자·녀 재롱을 보면서 할아버지 행세를 하기가 조심스럽다. 100세를 바라보는 아버지 앞에서 항상 몸가짐에 신경을 쓴다. 같이 나들이를 하고, 식사를 챙기고, 때로는 말동무가 돼 아들 노릇을 한다. 최씨는 아버지가 아흔이 넘어 장수하는 게 고맙기만 하다. “주변에서 힘들지 않느냐고 많이 물어요. 다들 안 해봐서 그래. 사랑은 주고받는 거라니까.” 최씨는 “아버지와 아들, 손자녀까지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서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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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 부양 ‘효 바이러스’=노노 부양의 행복 바이러스는 자식들에게 바로 전해진다. 서울 용산구에 사는 이희건(62)·이상자(59)씨 부부는 요즘 새삼 노모 부양의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아내 이씨는 결혼하면서부터 시어머니 채순임(101)씨를 모셨다. 이씨 부부는 바깥 나들이를 할 때 항상 채 할머니를 모시고 나간다. 부부 동반 모임에도 모시고 갈 때가 있다. 어릴 때부터 보고 배운 덕분일까. 올해 9월 결혼을 앞둔 둘째 아들이 “할머니와 부모님을 함께 모시고 살겠다”고 나섰다. 아들을 만류해 없던 일로 했지만 속으론 흐뭇했다. 이씨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농담으로도 이런 말을 안 한다고 들었다”며 “부모에게 잘한 게 어디 안 가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이씨가 사는 동네에는 혼자 사는 노인이 많다. 주로 방 하나에 부엌 달린 작은 집에 산다. 형편이 어려워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노인도 있다. 이씨는 “알고 보면 자식들이 다 있고, 그 자식들은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라며 “부모를 돌보는 마음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따로 또 같이=노노 부양의 모습은 다양하다. 우선 장남이 부모를 책임진다는 전통적 사고는 엷어졌다. 자식들끼리 돌아가며 모시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식은 부양 부담을 덜어서 좋고, 부모는 자식과 두루두루 살아서 좋다. 김순연(97·서울 동작구) 할머니는 거주지가 여러 개다. 장남 전정환(70)씨 집이 일종의 ‘베이스 캠프’다. 이를 근거지로 삼아 7명의 자식 집을 돌아다닌다. 고향이 그리우면 고향을 지키는 아들 집에 간다. 날이 추워지면 대구에 사는 딸네 집을 찾는다. 몇 년 전에 백내장 수술을 받아 시력이 40대 시절로 돌아갔다. 새로 한 틀니 덕분에 입이 항상 즐겁다. 전씨는 “‘내가 늙었을 때 우리 어머니처럼 자식과 함께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부모와 꼭 한 지붕 아래 살라는 법은 없다. 박모(62·여·경북 울진군)씨는 최근 여든을 넘긴 시어머니(85)를 고향의 요양병원에 모셨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시어머니를 서울 집에 모셔봤지만 여의치 않았다. 본인도 나이가 들어 갑상샘·척추 수술을 받았다. 퇴직한 남편을 설득해 경북 울진으로 내려왔다. 어머니를 자주 찾아가기 위해 요양병원 근처에 집을 얻었다. 시골이라 요양병원 비용이 비교적 저렴했다. 서울에 있을 때보다 자주 병원에 들러 시어머니와 얘기를 나눈다. 박씨는 “사정상 직접 모시지는 못하지만 자주 찾아 뵈면서 예전보다 사이가 좋아졌다. 나도 어머니도 만족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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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노 부양의 그늘



 ◆준비 없이 찾아온 은퇴
=이처럼 노부모를 모시는 게 누구에게는 더 없는 행복이지만 또 다른 누구에겐 버겁고 힘든 일이다. 세대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부터 신체적·정신적·경제적 고통이 따른다. 지금의 60대는 자식과 부모 사이에 ‘낀 세대’다. 평생을 부모와 자식을 위해 쉴 새 없이 달리다 보니 몸도 맘도 지치기 마련이다. 시어머니(89)를 30년 가까이 모시고 사는 안모(59·여)씨는 “두 살짜리 손자를 보면서 시어머니까지 챙겨야 한다”며 “몸이 지칠 땐 ‘내가 어쩌다 이 나이에 이렇게 아래 위로 끼었나’라는 생각이 들어 슬퍼진다”고 말했다. 우송대 이상용(사회복지아동학부) 교수는 “노노 부양 시대에 ‘노인 며느리’가 아흔 시어머니를 모시는 스트레스가 점점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낀 세대는 노후준비를 제대로 못한다. 젊은 시절 악착같이 모은 돈을 나이 들어 야금야금 까먹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고령층 고용동향 특징과 시사점’에 따르면 60대 중반(63~68세)의 평균 순자산은 2억6373만원으로 나타났다. 6년 전(4억1791만원)보다 약 1억5000만원이나 줄었다. 보고서는 “60대는 체계적 준비 없이 은퇴를 맞은 대표적 세대”라며 “경기 회복이 늦어지면서 장성한 자녀가 부모에게 의지하는 경우가 늘어나 부모 세대의 부담이 그만큼 늘게 됐다”고 밝혔다.



 버는 돈은 없고 쓸 일만 있으니 자식 노인의 고충은 더하다. 부모를 모시는 데도 적잖은 돈이 든다. 부모 노인들은 대부분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 하나쯤은 달고 산다. 자연히 의료비 부담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건강보험 통계(2013)에 따르면 80세 이상 초고령 노인의 월평균 진료비는 37만5000원으로 가장 높았다. 전체 1인당 월평균 진료비(8만5000원)의 4.5배 수준이다.



 ◆몸과 마음의 ‘수발병’=오랫동안 부모를 모시다 보면 여기저기 탈이 난다. 시어머니(86)를 30년 넘게 모신 최모(66·서울 강서구)씨는 최근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시어머니의 당뇨가 심해져 2년 전부터 거동을 할 수 없게 됐고, ‘수발 노동’의 강도가 세지면서 허리가 급격히 나빠졌다. 최씨는 “지난해부터 한계가 온 것 같다. 몸과 마음에 병이 들었다”며 “그러면 불효인줄 알지만 (시어머니가) 빨리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는 나쁜 생각을 할 때도 솔직히 있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형제 갈등으로도 번진다. 말싸움으로 끝나면 다행이다. 감정 대립이 극심해지면서 도를 넘는 안타까운 사고가 심심찮게 난다. 벌써 올해에만 노부모 부양을 둘러싸고 2건의 가족 간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4월 경기도 포천경찰서는 노모(75) 부양 문제로 다투다 여동생(56)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J씨(57)를 구속했다.



 ◆노노 상속 등장=노노 부양은 시장을 왜곡한다. 시장으로 흘러야 할 돈줄을 마르게 한다. 이른바 ‘자산 잠김’ 현상이다. 부모 노인이 오래 살면서 자식한테 상속하는 시기가 늦어진다. 이웃 일본이 그렇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 김동엽 이사는 “현재 일본의 60대 이상 노인들은 금융 자산의 70%를 보유한 채 돈을 쓰지도, 자식에게 물려주지도 않는다. 100세까지 살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그런다”고 말했다. 부모 노인이 90세 전후에 자식 노인에게 물려주고 자식은 그 돈을 자신이 100세가 될 때까지 보유한다. 자산이 젊은 층으로 가지 않는 것이다. 김 이사는 “돈을 가진 세대가 소비를 안 하고 투자도 안 하니 경제가 돌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 시각=김동엽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이사는 “평균수명이 늘다 보니 당연히 노노 부양 세대가 많이 생기는데 우리보다 앞서 일본이 그랬다”며 “노노 부양은 돈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어느 정도 경제적 능력이 있으면 간병을 비롯한 가족의 정서적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윤경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노인부양 의무를 자식에게 과도하게 지우기보다는 관계를 잘 유지해 갈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도와줘야 한다”며 “간병 부담은 가족이 아닌 외부에서 덜어주고, 가족은 정서적 지지를 보내주는 ‘느슨하지만 친밀한 형태’가 미래 가족 형태로 가장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최성재 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은 “자식 노인과 부모 노인이 이웃처럼 가까운 곳에 사는 형태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소설가 박완서(1931∼2011)는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에서는 “수프(국)가 식지 않을 거리가 따로 사는 부모 자식 간에 이상적인 거리”라는 표현이 나온다.



 한양대 김경민(정치외교학) 교수는 “65세 이상 자식 노인이 90세 전후의 부모를 부양할 경우 부모 노인에게 가는 생계비 지원 기준을 완화하는 등 연령대별로 차별화된 복지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상용 교수는 “일반적인 부모-자녀 세대와 노노 부양 세대는 차이가 있다. 가족 구성의 차이를 감안하지 않으면 자식 노인에게 너무 큰 부담이 돌아간다. 시대 변화를 감안한 맞춤형 복지 기준을 정부가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선임기자, 장주영·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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