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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남자의 새로운 매력, 백치미

김형경
소설가
새 천년 초입에 텔레비전 광고에 자주 보이던 남자 배우가 있었다. 당시 그는 남성 의류, 신용카드 등 열 가지쯤 되는 광고 모델이었다. 나는 그의 영화나 드라마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에 대한 사전 이미지나 환상이 없었다. 무슨 뜻인가 하면, 내 눈에는 그가 전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였다. 서른 살 안팎 여성이 예닐곱 명쯤 모인 자리에서 그 배우가 왜 인기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녀들은 일제히, 사전에 말을 맞추기라도 한 듯 대답했다. 백치미요! 격세지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우리 세대에게 백치미란 오직 남자가 여자를 향해 사용하는 단어였다.



외국을 여행하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성적 매력이 반비례하는 듯하다는 점이다. 남자라는 사회 권력을 통하지 않고는 다른 생존법이 없는 나라일수록 여성들은 성적 매력을 가꾸고 드러내는 데 온 힘을 쏟는다. 마찬가지로 남자들의 성 역할에 대한 편견은 그 나라 국민소득과 반비례하는 듯 보였다.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문명이 덜 발달한 나라일수록 남자들은 강하고 거칠게 행동하며, 그것이 허용되고 장려되는 분위기였다.



아니마 아니무스는 융 심리학 용어다. 남성 속에 억압된 여성성, 여성 속에 억압된 남성성을 의미한다. 심리 내면에서 두 요소가 이분법적으로 나뉘어 한 측면이 심하게 억압된 사람일수록 심리적 불편을 많이 겪는다. 그것은 또한 역량과 재능의 절반을 땅 속에 묻어둔 채 살아간다는 뜻이다. 사회적 통념으로 볼 때 남자답지 않은 남자, 여자답지 않은 여자가 오히려 편안하고 자유롭게 자기를 실현해 나간다. 성 역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존감이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당사자들은 가끔 자신을 불편해한다. 한 원로 예술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평생 남자인 척하면서 사는 게 힘들었어. 동년배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여자들과 한창 수다 떨다가 문득 그런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내면 시선과 맞닥뜨리지. 융 학파 심리학에서는 억압해둔 반대 성의 요소를 끄집어내서 표현하고, 그것을 내면에 통합하는 작업을 정신 건강의 회복으로 본다.



백치미의 그 배우는 지금도 여러 광고에 얼굴이 보인다. 그는 성 역할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재능을 발휘하는 듯 보인다. 성 역할의 부담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어하는 동시대 남자들의 공감도 얻는 듯하다. 국민소득과 여성의 지위가 높아질수록 그는 계속 승승장구할 것이다.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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