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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 남의 일 아니다

이상복
워싱턴 특파원
미국에서 배우고 싶었던 것 중 하나는 타협의 정치였다. 몸싸움과 도끼, 공중부양이 난무하는 대신 세련된 화술과 유머로 고급 정치를 구현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낭만과 거리가 있었다.



 요즘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야당인 공화당은 ‘네 탓’ 공방으로 날을 지새우고 있다. 지난달 말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대통령에게 소송을 걸겠다고 밝혔다. 행정명령을 남발하는 건 월권이라는 취지였다. 며칠 후 오바마는 보란 듯이 이민개혁을 행정명령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장관들에겐 자기 분야에서 행정명령으로 야당의 반대를 돌파할 방법을 찾으라고 했다. 지난 1일 연설에선 “야당이 나를 제소한다는데 맘대로 하라”고 큰소리쳤다. 양쪽 모두 오기 정치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연방정부 폐쇄라는 극단적 조치까지 겪었지만 정치권의 불통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되는 일이 별로 없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 지명자는 언제 상원 인준을 받아 한국에 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대사급 49명이 이렇게 대기 중이다. 대사 지명자들은 평균 262일을 부임도 하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정부·야당의 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건 합의제 연방기구 전반이 비슷한 문제에 놓여 있다는 거다. 정치논리가 모든 걸 덮어버리고 그 와중에 국민의 마음이 떠나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 갤럽이 이번 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연방대법원을 신뢰한다는 응답자가 30%에 그쳤다. 1973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저치였다. 대법관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판결이 좌우된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의회 역시 신뢰도 7%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면에 군(74%)과 경찰(53%)은 최상위권의 지지를 받았다. 강력한 명령체계와 일사불란한 조직이 환영받고 입법·사법·행정의 중추 기관들이 심각한 불신을 받는다면 가위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미국인들을 암울하게 하는 건 나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60년째 연방 의원을 지내고 있는 존 딩겔(87)은 최근 “유권자들이 현직 의원들을 모두 쫓아내야 개혁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갈수록 타협의 미학이 사라지고 있다”며 유권자들을 대변할 거란 주장은 허구라고 강조했다. 정치인들이 소수 강경파의 목소리만 들으면서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거였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세계 경찰 역할을 맡아 왔다.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그 역할을 의심하는 목소리로 이어질 수 있다. 현실적 문제도 있다. 각종 외교 문제에서 정치권이 한목소리를 내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문제를 남 얘기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이와 별개로 혹 미국이 신뢰의 위기에서 탈출한다면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남겨줄 것이다.



이상복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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