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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의 현문우답] 내 삶의 채점 기준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연극배우들이 묻습니다. “감독님, 이 상황에서 제가 맡은 배역은 슬픈 겁니까, 아니면 기쁜 겁니까?” 국립극단 초대 예술감독을 역임한 손진책 대표는 이런 물음에 답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직접 생각해 보라”고 말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어떻게 100% 기쁘고, 100% 슬플 때만 있느냐. 60% 기쁘면서 40% 슬플 수도 있고, 90%는 기쁜데 10%는 눈물이 날 수도 있다. 그런 복합적인 감정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표현하는 것이 배우다.” 명배우를 흔히 ‘천(千)의 얼굴을 가진 배우’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복잡하고 다채로운 감정을 표현합니다. 우리는 그런 배우에게 열광합니다. 왜냐고요? 실제 삶의 얼굴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100% 기쁨과 100% 슬픔만 있을 수 있을까요. 상가(喪家)에서도 웃음이 나오는 순간이 있고, 꿈을 이룬 순간에 하염없이 눈물만 흐를 수도 있습니다. 그걸 표현하는 게 배우가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어찌 보면 인생은 하나의 커다란 문제집입니다. 온갖 상황과 문제들이 페이지마다 담겨 있습니다. 친구 문제, 가족 문제, 교육 문제, 돈 문제, 직장 문제 등 종류도 다양합니다. 그런 문제 앞에 섰을 때 우리는 ‘정답’만 너무 중시합니다. 정답만 찾고, 정답만 묻고, 정답에만 매달립니다. 문제를 풀다가도 막히면 곧장 답지부터 들춥니다. 우리 사회는 정답이란 결과물을 최고로 치니까요.



 찬찬히 따져보세요. 삶의 정답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남이 만든 정답과 내가 만든 정답입니다. 둘은 다릅니다. 달라도 엄청나게 다릅니다. “이 상황에서 제 배역은 슬픈 건가, 기쁜 건가?”라는 물음에 감독이 “기쁜 거다”라고 답했다면 어찌 될까요. 배우는 감독의 정답을 그대로 받아들일 겁니다. 그리고 100% 기쁜 표정을 짓겠죠. 거기에는 과정이 없습니다. 좌충우돌하는 오답의 과정이 없습니다. 남이 만든 정답만 따라 할 뿐입니다. 그런 배우에게서 슬픔과 기쁨이 버무려져 줄을 타는 표정이 나올 수 있을까요.



 내가 만든 정답은 다릅니다. 지혜로운 감독은 “직접 생각해 보라”고 말합니다. 직접, 그건 인류사에서 수천 년간 내려오는 교육법의 핵심 키워드입니다. 가령 아이에게 방 청소를 시켜 보세요. 처음에는 청소기도 제대로 못 돌리고, 걸레질도 제대로 못 합니다. 청소를 했다는데 방은 여전히 먼지투성이입니다. 이때가 중요합니다. 마음 급한 부모는 “됐어. 이리 줘. 대체 제대로 하는 게 뭐야!”라며 자신이 직접 해치웁니다. 다시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깨끗한 방’이라는 정답만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부모는 다르죠. 기다립니다. 깨끗한 방이 정답이 아니니까요. 방을 깨끗하게 치울 수 있는 아이의 힘이 정답입니다. 그 힘은 한 번에 길러지지 않습니다. 좌충우돌과 시행착오를 거쳐야 합니다. 그걸 반복하며 아이는 청소기와 걸레, 그리고 먼지의 촉감과 성질을 조금씩 알아차리는 겁니다. 걸레를 빨고, 빗질을 하면서 사물을 접하고 이치를 터득하는 겁니다. 그게 아이의 근육이 됩니다. 그때는 깨끗한 방이 정답이 아닙니다. 아이의 시행착오가 정답입니다. 마음 급한 부모가 보는 오답이 그때의 정답입니다.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도 똑같습니다. 그는 숱하게 묻습니다. 슬픈 걸까, 아니면 기쁜 걸까. 그렇게 오답의 언덕을 넘고, 또 넘다가 스스로 키우는 겁니다. 천의 얼굴이 아니라 천의 얼굴을 만드는 근육을 말입니다. 정답이 아니라 정답을 만드는 힘을 말입니다. 그런 힘이 진짜 정답이 아닐까요. 빨간 색연필을 들고서 다시 물어봅니다. 인생에서 나의 채점 기준은 뭔가. 정답이 정답인가, 아니면 정답을 만드는 힘이 정답인가.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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