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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내 이름을 불러줘

최근 할아버지가 된 남자 선배 얘기다. 결혼을 일찍 했고 외모도 젊다. 축하 인사를 했더니 손사래부터 쳤다. “아이는 예쁘지만 할아버지로 불린다는 게 정말 싫다”고 했다. 주변에도 별로 알리지 않은 눈치다. 또 다른 50대 남성 취재원도 비슷했다. 언젠가 길가에서 누군가 자신에게 할아버지라고 할 순간을 생각하면 식은땀이 난다고 했다. 할아버지 되기의 공포감이다.



 요즘 들어 부쩍 늙어간다는 것에 관심이 많아졌다. 지하철에서도 나이 든 사람들에게 시선이 간다. ‘난 얼마 후면 저렇게 될지’ 가늠해보기도 한다. 물론 나 역시 할머니가 된다는 것은 쉽게 상상 안 가지만, 앞의 두 사람 같지는 않다. 오히려 직장을 다니느라 남이 대신한 육아의 기쁨(고통은 생각하지 않으련다!)을 새삼 느껴볼까, 턱없는 공상도 한다.



 곰곰 생각해보면 이 두 중년 남성의 반응은 마치 결혼한 여성이 ‘누구 엄마’로 불리며 정체성 상실을 강요받을 때와 비슷하다(물론 더 본질적인 것은 젊음을 숭상하고 늙음을 죄악시하는 사회 분위기일 테지만 말이다). 여성들은 결혼·출산과 동시에 경험하는 ‘제 이름 잃기’가 남성들에게는 사회생활을 통해 미뤄지는 셈이다. 그 남성들이 ‘누구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순간은, 은퇴 등으로 사회적 지위가 사라지는 순간과 겹친다. 그래서 더욱 심리적 충격이 큰 것 아닐까.



 앞의 선배는 “누구 엄마, 누구 할아버지 대신 외국처럼 그냥 이름을 부르면 좋겠다”고 했다. 나 역시 공감이다. 그러나 사회적 호칭에마저 가족 관계를 적용하는 우리 정서를 감안하면 쉽지 않은 일이다. 종업원과 고객이 서로 존중한다며 ‘이모님’ ‘아버님’으로 부른다. 아이돌의 성인팬은 ‘이모팬’ ‘삼촌팬’이다.



 IT업계의 새로운 호칭 문화를 소개한 글이 눈에 띈다. 다음에 이어 네이버도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아무개님’으로 부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카카오는 영어 이름을 부른다. 직위에 따른 상하관계에서 벗어나 수평적 조직 문화를 위해서다. 이 분야의 선두주자는 2000년대 ‘직위 떼고 아무개님’을 처음 도입한 CJ E&M일 것이다.



 아무튼 상대를 뭐라고 부르느냐는 단순히 호칭만이 아니고, 미묘하고도 정치적인 문제다. 뜬금없지만 이 구절이 떠오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 ‘꽃’). 이름은 그의 모든 것이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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