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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은 기업 경영 화두 ··· 장기적인 ‘이윤 창출’로 봐야”

[권동일 교수] 금속을 파괴하지 않고 강도와 피로도 등 특성을 측정하는 기술을 독보적으로 개발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이 기술은 국제표준으로 자리잡아 금속 특성측정 패러다임을 바꾼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서울대 금속공학과(학사) ▶ 미국 브라운대 재료공학 박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현)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에너지환경전문위원회 위원장(현)
2010년 천안함 폭침 현장에서 수거한 기뢰에서 어른 엄지손톱 크기의 알루미늄 산화물을 떼어냈다. 이 작은 산화물 조각이 서울대 재료공학부 권동일(57) 교수에게 ‘법(法)공학’과 ‘안전’에 눈을 뜨게 했다. 그는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함께 기뢰 표면의 알루미늄 산화물이 어떻게 생성됐는지를 밝히는 조사에 참여했으며, 화약 폭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국방부 합동조사본부에 전달했다.
 권 교수는 “천안함 폭침 조사 참여는 공학이 단지 학문에 머물지 않고 사건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한 계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평범한 공대 교수’에서 공학을 이용한 ‘안전 전도사’로 변신했다. 천안함 조사 참여 뒤 국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원자력발전소 부품 조사 단장을 맡았으며, 경북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 현장 조사 등 크고 작은 안전 관련 사건 조사에 단골로 참여하고 있다. 2010년에는 법공학연구회를 창립한 데 이어 지난해 11월 비영리 사단법인 법안전융합연구소를 설립해 국내 안전 전문가들이 구심점을 갖고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만들기도 했다. 현재 이 연구회와 연구소에서 활동하는 안전 전문가들만 100여 명에 이른다. 민간 안전 관련 비영리 연구소는 국내 처음이며, 규모도 만만치 않다.

[박방주가 만난 사람] 권동일 서울대 교수

 또한 특정 사건의 기술적 원인, 법률적 문제 등을 ‘원 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전문가들 대부분이 본업을 가지고 있어 비상근 회원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지식을 문제 해결에 보태는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일종의 공학과 법률 컨설팅 활동이다. 법안전융합연구소는 공권력 없이도 특정 사건에 대한 과학적인 검증을 한다는 측면에서 민간 과학수사대(CSI)를 지향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안전문화 교육도 하는 교육기관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지난해 법안전융합연구소 설립
보통의 대학교수들은 권 교수 정도의 나이가 되면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퇴직 5년 전쯤인 60세부터는 대학원생도 거의 받지 않는 것이 관례다. 정년이 8년밖에 남지 않은 그가 이렇게 판을 키우는 것이 궁금했다. “혹시 정부 연구비나 많이 받으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는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이 나이가 되니까 국가와 사회로부터 받은 ‘행운’을 되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고민한 결과가 안전한 사회 구현에 일조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는 남부러울 것 없는 사회 지도층 인사로 비친다. 속칭 KS(경기고-서울대) 출신에 미국의 명문 대학인 브라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서울대에서 20년 동안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도 스스로 ‘행운아’라고 말한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다 귀국한 뒤 한 지방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지 4년 만에 모교인 서울대로 옮길 수 있었고, 금속을 파괴하지 않고도 그 물성을 속속들이 알아낼 수 있는 독보적인 기술을 개발해 세계 표준 제정 절차를 밟고 있을 정도로 학문에도 일가를 이뤘다. 그 기술을 기반으로 창업한 벤처기업도 연 매출 규모는 30억원 내외로 작지만 이제 안정기에 접어든 상태다. 현재 대통령 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에너지환경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권 교수는 “평생 이렇게 잘 풀린 인생을 산 것이 자신의 노력도 있지만 결국은 사회와 국가로부터 받은 혜택이 아니냐”며 “그래서 안전한 사회 구현에 기여할 수 있는 비영리법인 연구소를 세우게 됐다”고 한다.  
 권 교수가 세계적으로 독보적이라고 자랑하는 자신의 기술이 무엇인지가 궁금해졌다. 그가 안내한 연구실에는 커다란 금속 파이프에서부터 휴대전화용 초소형 부품까지 다양한 금속의 특성을 측정할 수 있는 기기가 종류별로 설치돼 있었다. 즉 일반적인 금속 덩어리에서부터 나노(10억분의 1m) 크기의 초소형 부품까지 그 물리적 특성을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권동일 교수팀이 개발한 측정 장비로 송유관의 노후 정도를 측정하고 있는 모습. 송유관을 잘라내지 않고도 현장에서 측정이 가능하다.
금속의 물리적 특성 판단 기술 개발
뾰족하게 깎은 연필심처럼 생긴 금속 침으로 측정하려고 하는 금속 파이프 등 금속 표면을 살짝 눌러주기만 하면 측정 끝이다. 눌린 금속에서 나오는 반응이 탐침을 타고 컴퓨터로 전달되면 그 특성이 자동으로 분석되는 것이다. 너무 간단해 보여 이게 정말 세계적으로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것이냐고 물었다.
 권 교수는 “금속 측정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꾼 셈이다. 이 기술을 개발하기 이전에는 금속의 강도나 피로도 등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시료를 부수지 않으면 안 됐다. 그러니 실제 가동하고 있는 기기나 부품 특성을 잴 길이 없었다. 그러나 이 기술은 금속 침으로 살짝 눌러주는 것만으로 그런 측정이 가능하다. 기름이 흘러가고 있는 송유관, 가동 중인 기계류 등 어떤 금속이라도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금속 침으로 살짝 눌러준 쇠파이프 위에는 좁쌀이 얹혀질 정도의 극히 작은 홈이 파이는 정도의 흔적만 남았다.
 한 정유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섭씨 수백 도의 고온·고압 가스가 오가는 금속 배관의 수명은 설계 당시 12년이었다. 이미 9년을 사용했기 때문에 잔여 수명은 3년 정도 남았다. 그런데 권 교수팀이 측정한 결과 1년 정도밖에 수명이 남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깜짝 놀랐다. 즉시 파이프를 교체해 자칫하면 큰 폭발사고로 이어질 뻔한 위기를 모면했다. 2010년 10월 서울 합정동에서 일어난 50m 높이의 타워크레인 붕괴 원인이 크레인의 가로와 세로축 연결 볼트의 열처리 결함이 원인이라는 사실도 이 기술로 알아냈다. 크레인 볼트의 경우 담금질을 할 때 찬물에 푹 담그는 것이 아니라 물에 스치듯 해야 단단해지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 결함이 생겼다는 것이다. 권 교수가 개발한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 기업은 세계 최대 정유회사인 미국 엑슨모빌을 비롯해 GE, 셸, 삼성전자, 포스코 등 40여 개사에 이른다.
 
안전관리 체계 바로 세우기에 초점
그는 요즘 짬을 내기 어려울 정도로 바쁘다. 독성물질인 불산 유출사태가 삼성전자뿐 아니라 경북 구미, 충남 금산에 있는 기업에서도 일어나 사회문제화되고 있는 가운데 현재 금산사고에 대한 원인 조사를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13명이 여러 가지 안전사고로 사망한 모 제철소에는 안전 컨설팅을 하고 있다.
 권 교수는 우리나라가 안전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은 “안전 자체를 비용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국가나 기업이 경영 화두로 ‘안전’을 설정해야 세월호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는다고 했다.



박방주 교수=중앙일보에서 20여 년간 과학전문기자로 활동했으며, 2009∼2012년 한국과학기자협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가천대 전자공학과 교수.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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