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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이 명령하자 사할린 시추선이 움직였다

지난달 27일 최고경영자(CEO)처럼 집무실에서 극동의 유전 시추 개시 명령을 내리는 푸틴의 모습. [러시아 대통령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실은 지난달 27일 서방의 눈길을 끄는 사진을 공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62)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극동의 사할린 근처에 막 닻을 내린 석유시추선 관계자들과 화상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대화록의 내용은 더 흥미롭다. 시추선의 현장 지휘자는 푸틴에게 세세하게 업무를 보고했다. 마치 최고경영자(CEO)에게 하는 듯했다. 이어 그는 “시추 개시 명령을 내려주십시오”라고 푸틴에게 요청했다. 푸틴은 전혀 어색하지 않게 “시추 시작!”이라고 외쳤다. 크렘린의 대통령이 기업 소유 시추선에 직접 지시를 내리는 건 공산주의 시절에나 봤을 법한 광경이었다.

[똑똑한 금요일] 크렘린의 경제 권력
민간기업 운영 나선 '경제 차르' … 러시아식 '국가자본주의' 지배
우크라이나 사태로 외자 탈출, 돈줄 끊긴 기업들 생존 위기
푸틴, 중앙은행 금고 열어 구제
4월에만 1420억 달러 … 막강 입김



 이날 시작된 시추작업은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인 로즈네프트와 미국 에너지 메이저인 엑손모빌이 공동으로 벌이는 사할린 1광구 원유·천연가스 개발 프로젝트였다. 푸틴의 손길은 에너지 부문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비즈니스위크는 “요즘 러시아 경제에 대한 크렘린 장악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라고 최근 전했다. 정부 출자를 통해 직접 지배하는 기업이 많을 뿐만 아니라 금융 지렛대를 활용해 민간 기업까지 통제하고 있어서다.



 계기는 우크라이나 사태다. 올 2월 시작됐다. 크림반도 귀속과 서방의 두 차례 경제제재, 우크라이나 동부 내전까지 상황은 짧은 기간 동안 파상적으로 전개됐다. 간주곡처럼 대화의 장이 열리기는 했다. 그러나 이달 1일 우크라이나 정부는 동부 반군과 휴전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사태에 마침표를 찍기엔 아직 이르다는 방증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휴전협상 결렬로 우크라이나 사태의 휘발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며 “러시아 자산에 대한 해외 투자자들의 자본이탈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얼마나 빠져나갔을까. 러시아 중앙은행은 “올 1분기(1~3월)에 510억 달러(약 52조원)가 국외로 흘러나갔다”고 발표했다. 이것뿐일까. 아니다. 또 다른 데이터가 올 5월 공개됐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자본이탈 규모가 2200억 달러”라고 추산했다. 러시아 수치보다 4배 이상 많다. 러시아 국내총생산(GDP) 2조1100억 달러의 10%를 넘는 규모다. 미국 비즈니스위크는 “러시아 민간 기업들의 자금 조달 창구가 사실상 봉쇄된 상태”라며 “이들 기업이 푸틴의 자비에 의존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 자금이 모두 푸틴의 입김이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중앙은행에서 나와서다(중앙은행 특별금융). 올 4월 한 달 동안에만 1420억 달러나 제공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두 배가 넘는다. 로이터통신은 “특융 자금은 국영 스베르뱅크나 VTB뱅크 등을 통해 민간 기업에 배분되고 있다”고 전했다. 자금 출처와 유통 경로가 모두 푸틴의 변덕(Whim)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 러시아 자본주의 역사상 새로운 현상이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의 두 기둥인 지분(출자)과 금융을 통한 지배가 완성되고 있는 셈이다.



 이전까지 푸틴은 출자고리를 통해 기업들을 장악했다. 에너지·항공 등 주요 기업들이 크렘린 소유다. 프랑스 금융그룹 BNP파리바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정도가 공기업들에 의해 창출됐다. 세계 평균치는 30% 수준이다. 푸틴이 집권한 1999년엔 러시아 공기업 비중이 10% 정도였다. 오랜 시장경제를 채택한 나라들보다 낮았다. 바로 1991년 소비에트연방 해체 이후 펼쳐진 ‘요란한 시대(Roaring Age)’의 결과였다. 러시아계 미국 저널리스트인 고(故) 폴 클레브니코프는 『크렘린의 대부』란 책에서 “옐친 전 대통령이 계획경제를 빠르게 시장경제로 전환하기 위해 충격 요법을 썼다”고 설명했다. 아주 빠르게 시장 가격 시스템이 도입됐다. 국가 소유 거대 생산시설들이 무더기로 민영화됐다. 1917년 볼셰비키혁명 이후 사라진 계급이 되살아났다. 바로 부르주아들이다. 러시아인들은 그들을 올리가르히라고 불렀다. “올리가르히들은 자유를 만끽했다. 사치와 향락을 일삼았다. 원숙한 시장경제에서나 볼 수 있는 기업 사냥도 즐겼다(클레브니코프).”



 자유방임의 종착역은 위기였다. 98년 러시아는 대외채무 상환을 연기했다(모라토리엄). 빈부격차가 더욱 심해졌다. 러시아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이를 등에 업고 권좌에 오른 인물이 바로 푸틴이다. 그는 지탄의 대상이 된 올리가르히들을 사법처리했다. 자동차 재벌인 보리스 베레좁스키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이 과정에서 푸틴은 자신의 정적을 처리하기도 했다. 에너지기업 유코스의 회장인 미하일 호도르콥스키를 탈세 등의 이유로 감옥에 넣었다. 유코스는 해체돼 공기업에 흡수됐다. 겨우 사정 바람을 이겨낸 민간 기업들은 서방 자금 덕분에 그나마 자율성을 유지했다. 2000년 이후엔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 서방 자금이 밀려들었다. 굳이 푸틴의 은행들에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원유 등 원자재 값이 약세를 보이는 와중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하면서 그나마 민간 기업이 발휘할 자율의 공간은 쪼그라들었다. 서방으로부터 오던 자금줄이 말랐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러시아 민간 기업들이 서방 금융회사가 아니라 국영 VTB뱅크 등에 기대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따라서 경제에 대한 푸틴의 입김도 막강해졌다. 국가자본주의 구조가 완성되면서 공기업이 정부조직처럼 기능하는 일도 빚어지고 있다. 석유회사 로즈네프트가 자체 자금으로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있다. 소치 겨울올림픽 시설 가운데 상당수가 공기업들이 지은 것들이다. 이런 러시아식 자본주의의 정점에 푸틴이 있다. 마치 ‘경제 차르(절대군주)’처럼 말이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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