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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월드컵]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책임’은 사라지고 ‘의리’만 남았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최악의 성적을 낸 홍명보(45) 축구대표팀 감독이 유임됐다. 해외 언론도 놀라고, 국내 축구팬들은 “의리축구 시즌2가 시작됐다”며 한숨을 쉰다.



허정무 "무조건 물러나는 건 문제"
탈락 원인 분석도 없이 임기 보장
약속했던 정몽규 회장 사과 없어

 대한축구협회는 3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홍 감독의 유임을 발표했다. 당초 계약대로 내년 1월 호주 아시안컵 본선까지 임기를 보장키로 했다. 협회를 대표해 기자회견장에 등장한 허정무(59) 부회장은 “홍 감독이 자진사퇴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지만, 정몽규(52) 축구협회장이 직접 만나 만류했다”면서 “한 번 실패했다고 무조건 물러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월드컵 본선 실패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날선 질문은 “그만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이번 월드컵을 준비한 모든 과정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는 동문서답으로 비켜갔다.



 “정몽규 회장님이 기자회견장에 나와 국민들께 직접 사과하기로 했다”(이해두 대외사업실장)는 말도 거짓이었다. 정 회장은 허 부회장에게 총대를 떠넘긴 채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국 축구는 추락을 경험했다. 1998 프랑스 대회 이후 16년 만에 본선을 무승(1무2패)으로 마쳐 2002년 이전으로 회귀했다. 부진한 결과 못지 않게 무기력한 내용도 실망을 안겼다. “한국 축구의 오랜 강점인 투지와 조직력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게 해외 언론의 공통적인 반응이다.



 한국 축구의 뿌리를 흔드는 ‘대형 사고’가 터졌는데, 책임을 지려는 이는 보이지 않는다. 홍 감독도, 대표팀 지원 임무를 총괄한 황보관(49) 기술위원장도, 선수단장을 맡은 허 부회장도, 협회의 수장 정 회장도 모두 한 발씩 물러서 있다.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된 직후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감독과 축구협회장이 동반 사퇴한 이탈리아와 딴판이다.



 브라질 월드컵 부진의 원인은 홍 감독 스스로 인정했듯이 준비 과정의 비효율에 있었다. 선수 선발 과정부터 ‘의리 논란’이 불거지는 등 잡음이 일었다. 준비한 전술은 단조로웠고, 대회 직전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에도 애를 먹었다. 부정확한 분석으로 인해 지피(知彼)와 지기(知己) 모두 실패했고, 의무팀의 준비도 부실했다. 홍 감독은 벨기에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이 끝난 뒤 “선수단에서 내가 가장 부족했다”며 머리를 숙였다. 그렇지만 “자진 사퇴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모호한 화법으로 빠져나갔고, 결국 유임을 받아들였다.



 축구협회의 나몰라라식 일처리도 화를 키웠다. 대표팀이 부진한 가운데서도 협회는 적극적인 도움 없이 방조했다. 집행부 임원들은 협회장 선거권을 가진 시·도축구협회장들을 브라질로 초청해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표심 챙기기’에 전념했다. 차기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 자리에 도전 중인 정 회장은 로비 작업에 몰두하느라 대표팀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대표팀의 ‘두뇌’가 돼야 할 기술위원회는 보고서 작성에나 치중하며 코칭스태프와의 협업 노력을 게을리했다. 월드컵 본선 경험이 크게 부족한 선수단에겐 협회의 체계적인 뒷받침이 절실했지만, 협회 수뇌부마저 초보인 탓에 힘이 되지 못했다.



 브라질 월드컵의 실패를 어물쩍 넘기려는 축구협회의 태도에 대해 축구인들의 시선은 따갑다. 여론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기회를 엿보다 홍 감독 유임 카드를 꺼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1994 미국 월드컵 당시 대표팀을 이끈 김호(70) 감독은 “축구협회가 홍 감독을 진심으로 걱정했다면 월드컵 본선 이전에 ‘성적과 관계 없이 유임’을 못 박았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기술위원회가 이번 대회 실패 원인을 충분히 파악한 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유임 여부를 판단하는 게 옳다. 대표팀 감독 임면권을 지닌 기술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집행부의 판단만으로 감독 유임을 결정한 건 절차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우리 대표팀의 약점과 한계를 극복할 해결책도, 충분한 준비 기간도 확보하지 않은 상황에서 감독의 임기만 연장했다는 사실 또한 논란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축구인은 “이제껏 형식적인 업무 지원에 머물러 온 기술위원회가 브라질 월드컵을 통해 드러난 우리 대표팀의 약점을 어느 정도 파악했는지, 또는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축구대표팀 서포터스인 붉은 악마는 3일 성명서를 내 “기술위원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황보관 위원장의 퇴임을 촉구했다.



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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