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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여 관객 "한 곡 더" … 황홀했던 영국의 여름 밤

5인조 밴드 ‘술탄 오브 더 디스코’가 지난달 30일 새벽, 영국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에 섰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관객들은 한국어 노래에도 앵콜을 외치며 열광적으로 음악을 즐겼다. [사진 붕가붕가레코드]


전세계 음악인들에게 '꿈의 무대'로 통하는 44회 영국 글래스턴베리(Glastonbury) 페스티벌이 현지시각으로 지난 달 27~29일 서머싯주의 작은 마을 글래스턴베리에서 열렸다. 올해는 한국 최초로 밴드 '술탄오브더디스코'(술탄) '잠비나이', 싱어송라이터 최고은이 공식 초청받았다. 아이돌 가수 중심으로 해외로 뻗어나가던 케이팝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힌 순간이다. '술탄'의 레이블인 붕가붕가레코드의 고건혁(33) 대표가 축제 현장에서 따끈따끈한 참가기를 보내왔다.

글래스턴베리를 처음 경험한 건 아내와 의기투합해 신혼여행 삼아 다녀왔던 지난해의 일이었다. 평생 동경해오던 축제는 세계 대중 음악의 중심에서 만들어낸 40여 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모든 면에서 기대를 넘어섰다. 하루 평균 17만 관객이 3.6㎢에 달하는 야외 공연장에서 캠핑을 하며 음악 공연부터 서커스까지 100개 이상의 무대를 즐겼다. 경이로웠지만, 너무 대단했기에 스스로 하찮게 느껴지는 우울함도 있었다. 복잡한 마음으로 3일을 보내고 마지막 날 밤, 조그마한 무대에서 이름 모를 밴드의 공연을 보게 됐다. 그리고 꿈을 품었다. '이 커다란 축제의 품 안에 이런 작은 무대가 있다면 우리도 10년 후에는 올 수 있지 않을까.'

17만 관객, 100개 이상 무대 열려

글래스턴베리엔 올해도 어김없이 하루 평균 17만 명의 관객이 모여 음악과 뒹굴었다. 사진은 50여 개 음악 무대 중에서 두 번째로 큰 ‘디 아더 스테이지’.

그런데 1년만에 꿈은 현실이 됐다. 글래스턴베리 관계자가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국제음악박람회 '에이팜'에서 세 팀의 공연을 보고 페스티벌에 초청한 것이다. (디스코 음악을 하는 '술탄'은 밴드지만 멤버 중에 댄서가 있다. 디스코란 장르를 모든 관객과 즐길 수 있도록 춤이라는 보편적 코드로 접근한 것이 좋은 점수를 받았다.) 현실감이 없긴 했지만 한편으론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무려 글래스턴베리가 아닌가!

하지만 쉽지 않았다. 출연진이 예년만 못하다며 공연 볼 스케쥴을 한가롭게 짜고 있었던 게 출발하기 전이다. 고난은 영국에 도착한 24일부터 시작됐다. 항공사 측의 실수로 공연 의상을 포함한 수하물이 도착하지 않았고, 항공사는 자기 알 바 아니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결국 26일로 예정되어 있던 독일 공연을 위해 베를린으로 넘어갔고 그곳에서 새 의상을 구입하려고 미친 듯이 돌아다녀야 했다. 영국 도착 72시간 후에야 짐을 찾을 수 있었지만 이미 페스티벌 현장 도착 예정 시간을 5시간 넘어선 시점이었다.

밤 10시, 숙소로 예약한 캠핑카에 도착하니 설상가상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영국 사람들은 참으로 친절하고도 여유로웠기에 결국 우리는 깜깜한 차 안에서 첫날 밤을 보내며 아침까지 기다려야 했다. 첫 날 예정했던 모든 홍보 일정을 취소했던 것은 물론이다.

꼬인 일정 … 홍보도 못하고 공연

그리하여 둘째 날. 도착이 늦은 바람에 아쉽게도 같은 한국 팀인 '잠비나이'의 첫 날 공연을 볼 수 없었지만 최고은의 공연은 볼 수 있었다. 아침 이른 시각에 비가 왔음에도 적지 않은 사람이 함께 모인 무대에서 최고은은 예의 뛰어난 가창력과 함께 능란한 영어로 무대를 이끌어갔다. 그녀의 공연이 끝난 후, 이제 본격적으로 돌아다녀보려 했지만 이미 피곤은 극에 달해 있었다. 진창 속에서 돌아다니는 것에 지쳐 금세 숙소로 돌아와 잠이 들고 말았다. 깨어보니 어느새 저녁. 공연은 하나도 보지 못한 채로 글래스턴베리의 이틀이 지나가버렸다.

하지만 그때부터 우리의 진짜 축제가 시작됐다. 29일 0시, 래빗홀이라는 작은 텐트에서 공연을 올렸다. 60분간 12곡을 불렀다. 반응은 굉장했다. 200여명의 사람이 꽉 들어차있던 것은 물론, 관객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어 가사에도 모든 춤을 따라 추려 애쓰며 공연을 즐겼다. ('술탄'은 모든 곡에 안무가 있다.) '오리엔탈 디스코 특급'과 '탱탱볼'을 부르며 엉덩이를 흔들었고, 서정적인 곡인 '캐러밴'을 들으며 여름밤을 음미했다. 심지어 헤드라이너급 공연에서 볼 수 있다는 "One More Song(한 곡 더)!" 연호까지 나왔다.

그리고 30일 새벽. 우리는 1000명이 들어가는 공연장 '라 푸시 팔루어(La Pussy Parlure)'에서 다시 한번 공연을 했다. 더 대단했다. 이 무대를 위해 단련해온 멤버들이 최고의 음향을 만나 굉장한 무대를 보여줬고 어제보다 훨씬 많은 관객들이 더 강력한 반응으로 멤버들을 맞아줬다. 마찬가지로 나온 "한 곡 더" 연호. 시간에 걸맞게 '일요일밤의 열기'라는 노래로 올해 글래스턴베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BBC 리포터 “올해 최고의 무대”

글래스턴베리는 국내에 우후죽순 생겨나는 록페스티벌과 차원이 달랐다. 돈보다는 관객에게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 있었다. 음악 외에 다른 장르나 사회운동을 끌어들이면서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었다.

물론 우리에게 달라진 건 없다. BBC의 한 리포터가 트위터에 "올해는 술탄 오브 더 디스코가 최고"라고 표현했지만 어디까지나 개인 의견일뿐 아직까지 공식적인 보도는 없다. 하긴, 세계 무대의 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 뭔가 크게 달라지진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다. 그럼에도 그 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 우리는 성장했고, 술탄의 음악이 세계 음악의 중심에서도 먹힌다는 가능성을 알게 됐다. 수많은 역경에도 다시 한번 이곳을 찾고 싶은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번보다는 더 큰 무대에서.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 =1970년 영국 런던에서 남서쪽으로 차로 3시간 반 떨어진 작은 도시에서 시작된 세계 최대 규모의 음악 축제. 티켓은 오픈과 동시에 바로 매진된다. 록 ㆍ힙합ㆍ일렉트로닉 등 장르에 구애없이 실험정신으로 충만한 뮤지션을 우대한다. 롤링스톤스, U2 등 전설의 가수가 무대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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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