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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베트남 패망의 날, 한국인 150여 명 목숨 건 탈출 행로

1975년 4월 26일, 베트남 뉴포트항에서 우리 해군이 비상 출항하는 모습. 손 흔드는 이는 김영관 대사다. [사진 안병찬 당시 한국일보 특파원]
1975년 4월 30일. 사이공 함락과 함께 남베트남이 패망한 날이다. 이 날은 우리 현대사에도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 하루였다. 당시 베트남에 남아있던 한국 대사관의 외교관과 교민 150여 명은 목숨 건 탈출을 시도해야 했다. 퇴로는 마땅치 않았다. 오직 최후의 작전명 ‘프리퀀트 윈드(Frequent wind)’에 따라 미군 헬기로 탈출하는 길뿐.

 19시간 동안 81대의 헬리콥터로 사이공 전역에서 미국인, 난민들을 항공모함까지 실어나르는 이 작전으로 미국 외교관·민간인 2619명은 전원 탈출했다. 그러나 우리 공관원의 절반 가량과 상당수 교민은 탈출에 실패했다. 그중 일부는 육로로 탈출을 감행, 사지를 뚫고 바다로 나가 보트피플에 섞여 탈출하기도 했다. 나머지 일부는 베트남 공산정부에 의해 1년 안에 송환됐지만 그대로 현지에 남은 이들도 적잖았다. 체포된 후 남베트남 지도자들과 함께 사이공 치와형무소로 보내진 외교관과 교민들도 있었다.

 JTBC가 5일, 12일 오후 7시30분 방송하는 총 4부작 다큐 ‘사이공 1975’는 그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한국 교민들과 공관원들의 베트남 탈출 상황을 담는다. 그간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사이공 최후의 날 한국인들의 모습이다. 제작진은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이들의 증언을 듣고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베트남·인도·미국 등 각지를 돌며 3개월에 걸쳐 촬영했다. 당시 한국일보 특파원으로 현지에 파견됐던 안병찬 언론인권센터 이사장이 취재에 동행해 전 과정을 자문하며 사실성을 높였다. 그가 공개하는 각종 자료와 사진들이 긴박한 순간들을 전한다. 당시 현장 기록 『사이공:최후의 새벽』의 저자로도 유명한 그는 “사이공의 최후는 현대 통일 베트남의 출발점으로, 베트남의 오늘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역사적 순간”이라고 말했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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