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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제재 우습게 본 죄 … BNP파리바 9조 벌금 폭탄

지난달 30일(현지시간) BNP파리바 법률 자문역 조르주 디나리(왼쪽 둘째)가 변호사 카렌 패튼 세이모어(맨 왼쪽), 엘리자베스 데이비와 함께 미국 뉴욕 법정에 섰다. BNP파리바는 이날 미국 정부의 경제제재를 어겼다는 이유로 역대 최대인 89억 달러 벌금을 맞았다. [뉴욕 로이터=뉴스1]

미국 사법당국이 유럽은행들의 저승사자가 됐다. 세계 금융의 심장부인 뉴욕에서 영업 중인 유럽은행들이 미국 법령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잇따라 고강도 처벌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걸리면 죽는다’다. 이번엔 프랑스 최대은행인 BNP파리바가 철퇴를 맞는다. 혐의는 미국의 경제제재를 무시하고 이란·수단·쿠바 등과 대규모 금융거래를 했다는 것이다. 에릭 홀더 법무장관은 “BNP파리바가 금지된 거래를 한 데다 증거까지 은폐하며 미 당국을 기만했다”며 “결과적으로 테러리스트와 인권침해 관련 국가들을 지원해 미국의 국가안보를 손상시켰다”고 말했다.

 BNP파리바는 유죄를 인정했다. 벌금액은 무려 89억7000만달러(약 9조원). 경제제재를 위반한 은행에게 매긴 벌금 중 최고액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제재를 가볍게 해보려는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과연 그럴까. 알려지기론 미국 검찰이 때리려고 했던 애초 벌금액은 160억 달러(약 16조원)였다. 그러자 크리스티앙 누아예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가 직접 뉴욕으로 날아가 뉴욕 검찰에 매달렸다. 올랑드 대통령도 나서 미국 백악관에 우려를 표명했다. 이런 외교적 노력 덕분에 그나마 벌금이 깎였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렇다 해도 BNP파리바가 물어야 할 벌금은 종전 최고 벌금 기록이었던 2012년 HSBC의 19억2000만달러보다 세 배 이상 많다. BNP파리바는 지난해 번 것을 다 벌금 납부에 써야 할 판이다. 이 은행의 지난해 세전 소득은 약 112억 달러였다. 물론 죄질은 무겁다. 미국 당국에 따르면 BNP파리바가 제재 대상국에게 제공한 달러 결제 거래는 1900억 달러가 넘는다. BNP파리바가 인정한 것만 300억 달러다. 미국 검찰이 “BNP파리바가 달러 거래에서 마치 수단의 중앙은행처럼 활동했다”고 주장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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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독한 처벌은 벌금으로 그치지 않는다. 업무 정지도 예정돼있다. BNP파리바는 내년 1월부터 1년간 원유·가스 사업의 달러결제 대행이 금지된다. 달러 거래를 할 수 없는 은행이라면 대형 고객 이탈은 불가피하다. 영업권 취소라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영업기반은 크게 훼손되게 생겼다. 또 하나 의미심장한 것은 ‘인책’이다. BNP파리바는 최근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비롯해 13명의 임원을 내보냈다. 먼저 떠난 이도 있지만 사실상 해고다. 가담 정도가 상대적으로 경미한 32명의 임직원은 감봉, 강등 등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이른바 물갈이다. 미국 검찰의 압박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방증한다.

 최근엔 영국계 바클레이즈 은행도 걸려들었다. 익명의 장외거래 시장인 ‘다크 풀(dark pools)’을 운영하면서 투자자들을 기만·오도했다는 이유로 뉴욕 검찰이 기소한 것이다. 뉴욕 검찰은 바클레이즈에게 투자자 피해를 배상하도록 할 계획이다. 앞서 5월엔 크레디트스위스 은행이 26억 달러의 벌금을 맞았다. 미국 부유층의 탈세를 도왔다는 혐의였다.

 최근 미국 사법당국의 강경한 태도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 법무부와 검찰에선 “큰 은행이라고 불법을 저질러도 봐주는 ‘대마불기소’(too big to jail)는 더 이상 없다’는 얘기가 자주 거론된다. 유럽은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외국계 은행에 대해서만 지나치게 가혹한 제재를 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선 사법당국이 금융시장에 가득한 탐욕으로부터 선량한 예금자와 투자자를 보호하는 파수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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