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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축구광 남편 때문에 괴롭다는 30대 주부


Q 30대 중반 주부입니다. 남편은 청혼을 축구장에서 했을 만큼 축구광입니다. 당시에는 콩깍지에 씌어서인지, 이 남자랑 살면 재미있겠다 싶기도 하고 조금 로맨틱하기도 해 홀랑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축구 보는 시간 뺏기기 싫어 청혼을 축구장에서 한 것 같습니다. 한국 국가대표 경기만 보는 게 아니라 영국 프리미어 리그 등 해외 경기를 잠도 안 자고 흥분하며 보는데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잘 지경입니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윤대현 교수
A 월드컵 때면 전 세계인이 밤잠 설쳐가며 열렬히 응원합니다. 승패를 떠난 세계인의 축제라지만 엄연히 승자와 패자가 있는 만큼 다들 가슴 졸이며 자국 경기를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재미있다고 하기엔 좀 심각한 월드컵 관련 의학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월드컵 경기가 심장을 멎게 할 만큼 짜릿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정말 멎게 한다는 겁니다. 최고 권위 의학 학술지인 NEJM(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2008년 판에 실린 논문입니다. 월드컵 경기 시청 중 받는 정서적 스트레스가 심장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한 것인데요.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독일 한 마을에서 심근경색 등 심장 문제로 응급실을 찾는 환자 발생 빈도를 측정했습니다.

 조사 결과 독일 경기가 있는 날 심장문제로 응급실 찾는 사람이 경기 없는 날에 비해 2.66배나 높았습니다. 특히 남성은 3배가 넘었습니다. 남편이 월드컵 경기 보며 너무 흥분하면 아내가 진정시켜야 할 수준입니다. 당시 독일은 결승 문턱에서 좌절했죠. 준준결승과 준결승 때 심장 질환 발생 빈도가 예선 때보다 훨씬 올랐습니다. 국민 심장만 생각하면 자국 팀이 잘해 8강, 4강에 오르는 게 의학적으로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웃지 못할 결과입니다. 내 심장이 터져도 좋으니 모든 경기에서 다 이겼으면 좋겠다는 게 국민들 마음이긴 합니다.

 독일의 3번째 예선전에서는 심장 문제 발생 빈도가 평소보다 더 적었습니다. 이는 이미 예선 통과가 결정된 후의 경기라 정서적 스트레스가 덜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3, 4위 결정전 때의 심장 문제 발생 빈도도 경기 없는 날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역시 결승 진출이 좌절된 후라 맥이 빠져 심장에 별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던 셈입니다.

 우리가 월드컵에 열광하는 건 그 만큼 공동체 의식에 대한 욕구가 마음 속에 있다는 걸 말해줍니다. 누가 내 인생을 너무 간섭하면 저항하지만 다른 한편엔 심장이 멈출 정도로 다 함께 하고자 하는 욕구가 공존하는 셈입니다.

 이 욕구를 selfish(이기적)란 용어에 빗대 group-fish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끈끈한 공동체를 만들고 경계를 지어 주변과 분리한 후 우리라는 동질 의식을 만끽하는 욕구입니다. 만약 다른 공동체에 대한 배려 없이 유토피아적 강박에 빠지면 공격성만 가득 찬 집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위안부 강제 동원 등이 그런 예입니다.

 국가 간 축구 경기에서도 열기가 과열돼 폭행과 살인 사건까지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만큼 우리는 내가 속한 집단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혼자보다 함께할 때 생존 가능성도 높아지기에 group-fish가 진화론적으로 강화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맹목적인 집단의식은 세계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오늘 사연의 주인공인 축구광 남편은 자신을 선수, 그리고 팬과 동일시해 안정을 찾습니다. 동시에 마음 속에 숨겨져 있는 공격성을 다른 방식으로 분출하는 거죠. 어떤 집단에 소속되고자 하는 욕구와 공격성에 대한 욕구는 부딪히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속한 집단을 지키려면 강한 전투력이 필요하니까요. 물론 이 두 힘의 균형이 중요합니다. 월드컵을 보다 심장 문제로 응급실 찾은 사람은 이 균형을 못 맞추고 전투력을 과다하게 분출한 것입니다.

 정신신체의학은 말 그대로 몸과 마음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전문가인 하버드 의대 데닝거 교수 초청 강연 때 들은 연구 결과가 흥미롭습니다. 불쌍하지만 실험을 위해 하얀 생쥐 등에 화상을 입힌 후 세 가지 다른 환경에 노출시켜 관찰을 했습니다. 첫 번째 환경은 친구 쥐와 함께, 두 번째는 혼자 외롭게 있게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따듯한 솜을 주고 혼자 두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친구와 함께 키운 쥐는 금방 화상 상처가 아물었습니다. 혼자 외롭게 둔 쥐는 상처가 아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솜을 옆에 넣어 준 마지막 환경의 쥐는 혼자 외롭게 놓여졌지만 상당히 치유가 됐습니다. 솜은 대체 어떤 효과를 준 걸까요.

 우리 뇌에는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항스트레스 시스템인 연민시스템이 존재합니다. 이 반대 축에 작용하는 게 스트레스 시스템인 불안-생존 시스템입니다. 스트레스 시스템이 내뿜는 아드레날린·코티졸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은 단기 위기 극복에는 좋지만 오랜 시간 끊임없이 흘러 나오면 마음과 몸을 망칩니다.

 반면 연민 시스템은 대표적인 항스트레스 호르몬인 옥시토신을 만들어 냅니다. 앞의 쥐 실험에서 옥시토신을 측정했더니 동료와 함께 한 쥐에서 옥시토신이 가장 많이 분비됐고, 외롭게 홀로 남겨진 쥐는 옥시토신 수치가 바닥이었습니다. 솜과 함께 있던 쥐에서도 옥시토신이 제법 많이 분비됐습니다. 진짜 친구가 아닌 가짜 친구에게도 따뜻함을 느낀 겁니다.

 최신 스트레스관리 이론으로 연민집중치료 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내 뇌의 연민시스템을 활성화하자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방법을 들어보면 허무합니다. 너무 뻔하기 때문이죠. 좋은 관계 자주 갖기, 자연과 교감하는 시간 갖기, 그리고 좋은 문화 생활하기 등입니다. 그런데 막상 내 삶을 들여다보면 이런 것들과 멀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뇌는 사람·문화·자연 등과 따뜻하게 연결될 때 힐링의 호르몬을 내놓습니다. 오늘 사연 주신 분,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남편과 함께 좋은 사람, 따뜻한 자연, 그리고 촉촉한 문화 콘텐트를 즐겨 보세요. 남편이 축구에 열광하는 속마음엔 실은 연결의 욕구가 있는 겁니다. 이를 충족하지 못하고 축구 승패에만 집착하면 스트레스가 자꾸 커져 거꾸로 힐링의 호르몬은 메마르게 됩니다.

 남편이 같이 안 할 거라고요. 그렇다면 쾌감의 역설을 이야기 해주세요. 축구에만 집착하면 내성 탓에 축구로 얻을 수 있는 쾌감이 점점 줄어듭니다. 다른 걸 즐길 때 축구도 더 재미있어진다고요.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윤대현 교수

아래 e메일 주소로 고민을 보내주세요. 윤대현 교수가 매주 江南通新 지면을 통해 상담해 드립니다. 사연을 지면에 공개하실 분만 보내주십시오. 독자분 신분이 드러나지 않게 익명 처리합니다.

yoon.snu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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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