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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자기 치유의 인문학'] 산책자의 명상, 걷기의 철학

불가에서는 걷기를 수행법으로 쓰기도 한다. 걷고 있는 자기 자신을 관찰하며 마음을 안정시키고 의식을 집중시키는 걷기 명상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사용했던 수행법 중 하나 이기도 하다.


월간중앙 나는 걸어 다녀야만 명상을 할 수 있다. 걷기를 멈추면 생각도 함께 중단된다. 내 정신은 반드시 다리와 함께 움직인다. - 장 자크 루소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중에서

걷고, 또 걸음으로써 철학에 가까워지는 길



걷기에는 기이한 마력이 있다. 특별히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 사람도, 우연한 기회에 같이 걷게 되면 부쩍 친밀한 감정이 샘솟는다. 낯선 곳에 방문했다가도, 그곳을 지키는 분이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까지 바래다줄 때는 그 사람의 배려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단 한 번 함께 걸었다는 이유로 친구가 되기도 한다. 걷기는 우정과 연대감을 촉진하기도 하고, 아직 확실하지 않은 설렘의 감정을 뚜렷한 호감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다가도, 함께 걷는 행위를 통해 서로를 향한 호감이 싹튼다.



“같이 걸을까?” “우리 좀 걸을까요?” 이만큼 매혹적이면서도 부담 없는 데이트 신청도 없는 것 같다. 걷기 전에는 아무런 화학반응이 일어나지 않던 관계에도, 함께 걷다 보면 그 사람의 보폭, 그 사람의 숨소리, 웃음소리, 보조개나 잔주름 같은 사소한 것들이 자아내는 의미의 파장을 곱씹어보게 된다.



걷기는 어렵지도 않고, 돈이 드는 일도 아니지만, 무작정 같이 걷다 보면 두 사람 사이에 신비한 화학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함께 걷던 거리의 자잘한 풍경들, 그 거리의 가로수나 햇살의 강도나 바람의 세기, 그 사람의 보폭, 나의 보폭, 스쳐가는 옷자락들. 그 모든 것이 한데 얽혀 세상에 하나뿐인 걷기의 추억이 탄생한다. 함께 걷기를 통해 쌓인 친밀감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혼자 걷기는 평소에 잘 돌보지 못한 나 자신과 친밀해지는 최고의 수행 방법이기도 하다. 머릿속 혈류가 꽉 막혀 아무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에도, 우울한 심사를 안고 정처 없이 걷기 시작하면 신기하게도 머릿속 안개가 걷히며 뭉게뭉게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는 타인과 대화하며 걷는 것은 행복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평소에 잘 불러내지 않는 마음 깊은 곳의 나 자신과 대화하며 걷기는 충만한 감정을 샘솟게 한다. 무병장수를 위해 파워 워킹에 도전하는 것도 좋겠지만, 병들지도 모르는 몸에 보험을 드는 기분으로 의무적인 걷기를 수행하는 것보다는 아플 때나 힘들 때나 외로울 때나 가리지 않고 ‘나 자신과 함께 천천히 걷기’를 실천하는 것이 훨씬 더 보람찬 마음 수련법 아닐까.



박태원이 걸었을 1930년대의 경성. 식민지 근대도시 경성에는 카페, 영화관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상징인 백화점까지 들어섰다.


건강한 몸을 넘어 해맑은 영혼을 위한 걷기



“때로 산책을 하면서 어디로 가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왜일까요? 자연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자석과도 같은 미묘한 힘이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저도 모르게 굴복당해 끌려 들어가는 자연의 그 힘이 우리를 바르게 인도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그 길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부주의와 어리석음으로 인해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 십상이긴 합니다만, 분명 옳은 길이 존재합니다.”(헨리 데이비드 소로 외 <소로에서 랭보까지, 길위의 문장들>, 윤희기 옮김, 예문, 2013)



그저 거리를 걸음으로써 저절로 누구나 철학자가 되는 듯한 이 행복한 걷기의 가장 큰 적은 인터넷이다. 여행 다닐 때는 인터넷을 거의 하지 않다가 작년에 처음 거리에서도 인터넷이 되는 서비스를 신청해서 여행을 떠났더니 여행지에서조차 나는 자유롭지 않았다. 서울에서는 자꾸만 업무 관련 메일과 메시지가 날아오고, 나는 여행 자체에 완전히 집중하고 싶은 순간에도 마치 누가 뒷머리를 잡아당기는 느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메일에 답장을 쓰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그 시간에 하지 않았어도 괜찮은 일인데, 그렇게 인터넷에 신경을 씀으로써 인생에 한 번뿐인 그 시간 그 장소의 추억이 복잡한 업무의 기억과 뒤섞여버리게 되었다.



이제는 산책에 나섰을 때, 여행을 떠날 때, 잠들 때는 아예 인터넷 접속을 끊으려고 한다. 사실 너무도 당연한 일인데, 우리는 마치 특별한 ‘봉인’이나 ‘고립’처럼 생각하곤 한다. 걷는 동안만은 휴대폰과 인터넷의 거미줄 같은 감시망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인터넷으로 촉발된 리액션으로서의 사유가 아니라 내 몸과 내 생각이 어우러지는 자발적인 사유, 걷는다는 행위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생각이야말로 진짜 나 자신에 훨씬 가깝기 때문이다.



걷기 위해서는 두 다리만 있으면 된다. 다른 건 일절 필요 없다. 더 빨리 가고 싶다고? 그럼 걷지 말고 다른 걸 하라. 구르든지, 미끄러지든지, 날아라. 걷지 마라. 그러고 나서 중요한 건 오직 하늘의 강렬함, 풍경의 찬란함뿐이다. 걷는 것은 스포츠가 아니다.



“그냥 산책만 해도 우선 멈춤의 자유를 얻게 된다. 이런저런 걱정거리가 안겨주는 부담을 덜고 잠시나마 일을 잊을 수 있는 것이다. 회사 일은 뒤로 다 미뤄놓기로 한다. 나가서 한가로이 거닐며 다른 걸 생각한다. 먼 길을 며칠씩 걷다 보면 일탈의 움직임이 한층 더 강해진다. 일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습관의 굴레에서 해방되는 것이다.”(프레데리크 그로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이재형 옮김, 책세상, 2014)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을 나와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시계를 맞추도록 해버린 임마누엘 칸트, 산책하는 길 위에서 늘 반짝이는 철학의 아이디어를 얻곤 했던 프리드리히 니체와 장 자크 루소, 홀로 떠나는 도보 여행이야말로 최고의 여행 비법이라 예찬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 그리고 이 세상에 스스로 써서 남긴 책은 없지만 단지 걷고 또 걷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기록만으로도 위대한 철학자로 남은 소크라테스와 디오게네스까지. 걷는다는 행위는 탈 것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자본의 시스템과 속도의 정치로부터 최대한 멀리 벗어나, 자기 자신을 갈고 닦는 사람들의 원초적인 구도(求道)의 행위였다.



작가들도 걷기라는 행위 자체를 문학의 화두로 삼았다. <소설가 구보씨의 1일>로 기념비적인 산책자의 명상을 남긴 박태원. 그는 특별한 사건도 없이 오직 서울 한복판을 걷는 행위 속에서 자신이 느낀 단상을 소설로 빚어냈다. 그는 화신백화점의 화려한 풍모와 행복한 젊은 부부의 다정한 모습에 기가 짓눌리고, 쉴 새 없이 달려가는 전차와 자전거의 속도를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산책자의 속도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걷는다는 행위 자체에서 서울이라는 공간이 품고 있는 수많은 욕망의 만화경을 그려냈다.



홀어머니는 아들이 작가이긴 하지만 혼기를 넘긴 독신남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걱정하고, 그는 어머니께 효도하고 싶은 마음과 자유롭게 자기 인생을 살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며, 어떻게 보면 어머니의 근심걱정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신만의 사유에 몰두하기 위해 ‘경성 산책’이라는 독특한 취미를 실천한다. 지금처럼 걷기를 예찬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건강을 위해 걷는다는 개념도 없었으며, 걷기는 오히려 다른 첨단의 교통수단에 비해 덜떨어진 것으로 인식되던 1930년대에, 그는 걷기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소설적 공간을 재구성한다.



문예비평가 발터 벤야민이 거리에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문명의 흔적들을 ‘산책’이라는 행위를 통해 수집하여, 그 도시문명의 폐허와 흔적들을 자신의 머릿속에서 하나뿐인 별자리로 그려내는 작업을 통해 ‘걷기의 철학’을 이루어낸 것처럼. 박태원은 화려한 경성의 이면에 감추어진 인간들의 추악한 욕망을 응시하고, 자신 또한 그 욕망의 블랙홀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인식하였으며, 오직 하루의 산책만으로도 1930년대 경성의 모든 것을 압축적으로 재현해내는 위대한 산책자의 명상을 글로 갈무리하는 데 성공했다.





박태원의 원작 소설을 무대로 옮긴 연극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의 한 장면. 구보씨에게 경성은 산책의 공간이자 카페 체험의 공간이었다.


산책을 운명으로 삼은 사람들



인구 1천만, 한강의 기적, 인구밀도 세계6위, GDP규모 세계 17위의 도시, 서울. 이 화려한 문구들만으로는 서울의 참모습을 알기 어렵다. 서울이라는 공간이 한국인의 삶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아내기 위해, 우리는 서울의 역사와 풍속을 재구성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박태원의 자전적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은 기념비적 작품이다.



1934년 식민지 조선의 소설가 구보씨는 아무런 목적지 없이 하루 종일 서울을 방황한 기록만으로 흥미로운 소설을 완성했다. 1930년대 발터 벤야민이 제국의 수도 파리를 배회하며 문명의 빛과 어둠을 응시했다면, 소설가 박태원은 식민지 조선의 수도 경성(서울의 옛이름)을 배회하며 문명의 과거와 미래를 탐사했다. 젊은 소설가 구보씨는 한 손에 단장(短杖) 한 손에 공책을 들고 창작의 소재를 찾아 거리로 나선다.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은 현재 남아 있는 사진자료만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1930년대 서울의 생생한 일상을 복원해낸다. 구보의 정처 없는 서울 탐험기는 그저 집과 직장을 오가며 기계적인 일상을 반복하는 현대인에게, 매일 걷는 이 오래된 도시의 일상이 오디세우스의 모험처럼 광대한 스펙터클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낡은 전통이 붕괴되고 새로운 문명의 상징이 도시 곳곳에 세워지던 1930년대. 박태원에게 지나간 조선이 “빈약한, 너무나 빈약한 옛 궁전”이었다면, 시시각각 변해가는 경성은 “약동하는 무리들이 있는” 모더니티의 상징이었다. 옛것과 새것이 역동적으로 공존했던 경성. 그곳은 “서정시인조차 황금광으로 나서는” 속물적 욕망의 도시이면서, 청계천에서 아낙네들이 오밀조밀 모여 빨래를 하며 수다를 떠는 전통적 공간이기도 했다.



1930년대 경성은 지금의 서울보다 훨씬 작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도시의 필수적 환경이 거의 빠짐없이 갖춰져 있었다. 백화점과 은행, 전차와 카페 등으로 가득한 1930년대 경성의 풍경은 지금은 메갈로폴리스로 성장한 서울의 원형(archetype)을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구보씨는 일정한 직업이 없으면서도 자신의 소명이 ‘고현학(modernology)’이라고 인식한다. 고고학이 과거의 유물을 통해 역사와 풍속을 재현해낸다면, 고현학은 동시대의 풍속을 연구하며 현재를 통해 미래를 점친다.



구보씨는 그가 살았던 1930년대 경성을 치열하게 탐구하는 과정이 곧 소설이 될 수 있음을 믿었던 것이다. 그가 하루 동안 네 번이나 들렀던 ‘까페’는 단순한 휴식공간이 아니라, 서울의 관찰기록을 메모하기 위한 ‘창작’의 공간이기도 했다. 이 가난한 소설가의 아지트이자 베이스캠프는 바로 도시 한복판의 카페였던 것이다.



구보씨에게 고현학의 대상이었던 경성은 이제 다시금 복원해내야 할 고고학의 대상으로 역전되었다.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은 박태원에게 ‘현재의 기록’이었지만 21세기 서울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유산’이 되었다.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은 수많은 작가와 지식인들의 영감(inspiration)의 원천이 되어 다양한 패러디와 논문의 대상이 되었다. 너무도 낯익어 아무런 새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서울을, 구보씨의 여정을 따라 걸어보면 어떨까.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을 여행 가이드로 삼아 서울을 어슬렁거려보자. 그것은 곧 우리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떠나는 유쾌한 모험이 될 것이다.





독일의 대학도시 하이델베르크의 전경. 오른쪽에 보이는 언덕 중턱에 하이데거, 헤겔, 칸트 등 세기의 철학자들이 걸었던 ‘철학자의 길’이 있다.


누구나 철학하게 만드는 장소에 대하여



“구보는, 약간 자신이 있는 듯싶은 걸음걸이로 전차 선로를 두 번 횡단하여 화신상회 앞으로 간다. 그리고 저도 모를 사이에 그의 발은 백화점 안으로 들어서기조차 하였다. 젊은 내외가 네댓 살 되어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그곳에서 승강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식당으로 가서 그들의 오찬을 즐길 것이다. 흘낏 구보를 본 그들 내외의 눈에는 자기네들의 행복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엿보였는지도 모른다. 구보는 그들을 업신여겨볼까 하다가, 문득 생각을 고쳐 그들을 축복하여주려 하였다.



사실 4, 5년 이상을 같이 살아왔으면서도, 오히려 새로운 기쁨을 가져 이렇게 거리로 나온 젊은 부부는 구보에게 좀 다른 의미로서의 부러움을 느끼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분명히 가정을 가졌고,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 당연히 그들의 행복을 찾을 게다. 승강기가 내려와 서고, 문이 열려지고, 닫혀지고 그리고 젊은 내외는 수남이나 복동이와 더불어 구보의 시야를 벗어났다. 구보는 다시 밖으로 나오며, 자기는 어디가서 행복을 찾을까 생각한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해외여행자 1400만 명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아직도 여행을 놀이나 레저만으로 생각하는 풍토는 많이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우리의 여행이 그저 한번 신나게 즐기기 위한 것에 그친다면 그 비용과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을까. 여행을 과시의 일종으로 생각하는 분위기도 걱정스럽다. 여행은 쇼핑도 아니고, 남에게 보여주거나 자랑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가장 나다운 삶이 무엇인가를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내밀한 기쁨이 아닐까.



길을 떠나간 후 집에 돌아왔을 때 그 집을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 내 삶을 잠시 접어두고 오랜 방랑의 길을 걷다가 다시 돌아와 보니 내 삶이 더 소중해지는 것. 내가 반드시 고쳐야 할 나 자신의 그릇됨을 통렬하게 돌아볼 수 있는 여행이야말로 힐링보다 더 절실한 우리 마음의 여행이다. 우리의 여행은 이제 좀더 깊고, 소박하고, 차분한 성찰의 장(場)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즐기고 마시고 떠들썩하게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고 세상을 곱씹어보는 여행을 꿈꾸는 분들이라면 하이델베르크 같은 조용한 대학도시가 좋을 것 같다. 인구의 30% 이상이 학생이거나 교수이거나 연구자라는 이 놀라운 ‘공부의 도시’. 수많은 노벨상수상자를 배출해낸 대학도시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냥 그곳에 가면 ‘학문의 향기란 이토록 정결한 것이구나’하고 저절로 감탄하게 되기에 여행자의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곳이다.



하이델베르크에서는 걷기와 자전거타기 같은 아주 단순한 몸짓조차도 조용한 성찰의 악보가 되는 것 같다. 사람들 얼굴에 마치 이런 문장들이 새겨져 있는 것 같다. “저는 학생이에요.” “저는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저는 연구가 직업입니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가장 존중받는 도시, 순수학문을 ‘쓸모없다’고 타박하지 않는 도시, 공부야말로 삶을 바꾸는 기예임을 아는 사람들의 도시, 그곳이 바로 하이델베르크다.



하이델베르크는 화려한 볼거리를 사냥하는 대도시 관광에 지친 사람들에게, 카메라 없이도 그저 걷고 생각하는 몸짓만으로도 진정한 마음의 풍경을 찍는 법을 아는 분들에게 더욱 어울리는 장소다. 칸트가 매일 똑같은 시간에 나와 산책을 해서 사람들이 칸트를 보고 시계를 맞추었다는 저 유명한 카를 테오도어 다리에서 바라본 하이델베르크의 풍광은 그윽하기 이를 데 없다. 보이기 위해 만든 도시가 아니라 생각하기 위해 만든 도시.



이것저것 사고팔기에 정신없는 도시가 아니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도시. 내겐 그런 곳이 바로 하이델베르크였다. 하이데거, 헤겔, 야스퍼스 등의 위대한 철학자들이 사유의 용광로로 삼았다는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은 놀라운 마력을 지닌 산책로다. 어떻게 보면 ‘이게 뭐가 특별한가?’라고 투덜거릴 법한 평범한 오솔길이다. 하지만 그 속에 들어가서 걷는 순간 마법처럼 내 마음을 뒤흔드는 생각의 소용돌이에 흠칫 놀라게 된다.



철학자들이 놀라운 사상을 잉태했다는 이유만으로 ‘철학자의 길’이 아닌 것 같았다. 오히려 철학자가 아닌 나 같은 사람들까지도 철학자로 만들 수 있는 마법을 지닌 길이라 ‘철학자의 길’이 된 것은 아닐까. 나처럼 철학을 잘 모르는 사람까지도 이 길을 걸으면 ‘철학할 수밖에 없는 기분’이 되어버린다. 누구나 철학하게 만드는 길.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생각의 혈류가 다르게 흘러가는 것 같은 경이로운 감정에 사로잡힌다. 그 흔한 동상 하나 없고, 기념비 하나 없지만, 인류를 구원하고자 했던 수많은 철학의 아이디어가 스치고 지나간 이 철학자의 길에는 아직도 그 모든 사람의 고민과 아픔과 눈물과 미소의 흔적들이 보이지 않는 사유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우리 평범한 사람들에게조차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길’을 열어 준다.



2008년 겨울, 철학자의 길을 말없이 걸으며 나는 나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하는 마음속 지진의 진앙지를 찾았다. 나는 타인의 기대에 호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내가 진정 원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것조차 모른 채 나에게 지나친 기대를 하는 주변사람들을 남몰래 원망하고 증오했다.



‘난 당신들이 원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 거예요.’ 이렇게 솔직하게 말할 용기가 없어, 그들의 기대에 얼핏 부응하는 척 하는 나를, 나 자신도 무척이나 싫어하고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이 ‘기대의 거미줄’에서 벗어나리라, 그저 도망칠 궁리만 했다. 어떤 타인의 거미줄로도 포획할 수 없는 나만의 작은 요새를 만들어 그 안에서 평생 숨어살고 싶었다.



600만 년 전 인간의 첫 발걸음이 시작됐다. 수많은 교통수단이 등장했지만 인간은 여전히 걷고 있다. 속도의 시대에 걷기가 굳건히 버틸 수 있는 힘은 걷기가 주는 여유, 그리고 성찰과 철학의 시간에서 나오는 건 아닐까.


책이 아닌 걸음에서 얻는 깨달음



하지만 철학자의 길을 걸으며,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는 그 완벽한 요새 속에서 걸어보니 문제는 그 ‘기대의 거미줄’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기대는 오히려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타인에게 멋진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나’의 집착이 그 모든 타인의 시선을 ‘지나친 기대’로 해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직 진정한 주체가 아니었다. 아직 나비가 되지 못한 애벌레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20대 초반에 이미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했기 때문에 스스로 빨리 어른이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저 경제적으로만 독립했을 뿐 심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생물학적으로도 독립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은 항상 기댈 곳을 찾았으며, 공동체를 갈망하면서도 공동체에서 튕겨 나왔고, 혼자 먹고 입고 자는 일도 잘하는 척했지만 사실은 온갖 잔병치레로 고생하고 있었다. 주변사람들을 사랑하는 만큼 원망했고, 조직생활에 한 번도 제대로 적응한 적이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정직하게 나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는 일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진심으로 정직해지는 순간에는 꼭 울음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눈물이 샘솟는 순간 온몸이 타버릴 듯이 아프고 부끄러워져서 그만 말문이 막혀버리곤 했다.



아무도 날 이해하지 못한다고 믿었기에 아무도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 못했다. 이미 내 곁을 항상 따뜻하게 밝혀주고 있던 우정과 사랑과 연대의 손길을 외면했다. 그것조차 나를 향한 지나친 기대이거나 그들의 이기심이라고 제멋대로 해석해버렸던 것이다. 나는 더 멋진 나, 더 대단한 나로 거듭나고자 하는 넘치는 탐욕 때문에 나를 둘러싼 진정한 공감의 손길을 깨닫지 못했다.



세상 사람들이 ‘대세’라고 말하는 것들을 경멸하면서도 그 대세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도 못했으며, 나만의 요새를 만들어 그곳에 숨어 있을 때조차도 창조적인 고독은커녕 견딜 수 없는 외로움에 빠져 허우적댔다. 그렇게 나 자신을 생각의 죽비로 마구 내리치며 걸었던 철학자의 길은 굳이 다시 가지 않아도 항상 마음속에 이미 나 있는 오솔길이 되었다.



이제야 알 것 같다. 표현이란 언어만이 아니다. 내가 정직하게 ‘말’로 표현하지 못했을 때도, 진심으로 나를 아껴준 극소수의 사람은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를 항상 품어주고 있었다. ‘철학자의 길’ 이후, 늘 책을 끼고 살면서도 정작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를 회피했던 내 철학적 게으름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나’가 아니라 ‘좀 더 진짜 나에 가까워지는 법’을 생각하는 것이 인생의 화두임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철학자의 길은 나에게 책 없이도 철학하는 법, 누구의 말도 인용하지 않고 오직 내 머리로 생각하는 법을 온몸으로 가르쳐준 최고의 스승이었다. 어떤 장소는 사람의 품처럼 따스해서, 그렇게 걷는 발자국마다 희망이 되고 사랑이 되어 마침내 나 자신의 일부가 된다.



정여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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