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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대맛 라이벌] (17) 해물찜 - 얼큰한 바다를 먹다

한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예부터 해산물 요리를 즐겼습니다. 국·탕·조림·찜 등 조리법도 다양합니다. 그중 각종 해물을 고춧가루의 매콤한 맛, 그리고 콩나물의 아삭한 맛과 함께 맛볼 수 있는 게 찜요리입니다. 담백하고 쫄깃한 아귀찜 역시 해물찜과 더불어 한국인에게 인기가 많은 음식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1위 집은 싱싱한 해물에 주인장이 개발한 특별 양념장으로 맛을 더한 곳이고, 2위 집은 넉넉한 인심으로 30년 동안 아귀찜을 팔아온 할머니가 반겨주는 곳입니다.

동해해물탕의 해물찜엔 13가지 해물이 들어간다. 서삼례 사장은 해물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매일 아침 수산시장에서 직접 장을 본다. 여기에 자신이 개발한 비법양념장으로 맛을 더한다.

700만원 소매치기 당한 절망의 순간, 기회가 왔다

“그날도 오늘처럼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이었어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죠. 정말 절박했거든요.”

 천둥을 동반한 거센 소나기가 퍼붓던 지난 12일 오후 3시. 서삼례(58) 동해해물탕 사장은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자 창밖을 보며 운명의 순간을 털어 놓았다.

 신길동에서 마산아구라는 상호로 장사하다 망하고 청파동에 동해해물탕집을 차린 1999년 어느 날이다.

 “신길동 집은 너무 준비없이 시작했어요. 가게 자리 볼 줄도 몰라 그냥 주택가에다 가게를 냈어요. 유동인구가 없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으니 당연히 장사가 안됐죠. 겨우 2년 버티다 처분하고 다른 데 알아보던 중이었어요.”

 돈이 없으니 임대료 싼 곳을 중심으로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싸고 목 좋은 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8개월 넘게 자리만 보며 돌아다녔다. 생계는 해물탕이나 아구찜 하는 다른 식당 주방에서 일 하며 이어나갔다. 그런데 설상가상, 거액을 소매치기까지 당했다.


 “가게 알아보느라 늘 계약금으로 200만~300만원쯤 가지고 다녔거든요. 그런데 마음에 드는 가게를 발견하면 늘 계약금 적다고 성사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루는 700만원을 어찌어찌 만들어서 나왔는데 그날 딱 소매치기를 당한 거예요. 절망 그 자체였죠. 그러다 그 청파동 가게를 갔어요. 수중엔 돈도 없고 비는 주룩주룩 오고, 심정이 어땠겠어요.”

 그런데 바로 그 가게에서 서 사장은 인생의 기회를 잡았다. 고기장사하던 사장이 가게를 정리하고 부산으로 내려가려고 내놓은 곳이었는데 가게가 안 나가 애만 태우고 있었다. 서 사장에게 유리한 상황이었지만 돈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 사장이 제시한 금액에서 1500만원이나 모자랐어요. 그런데 웬걸, 사정을 말했더니 나머지 돈은 1년 뒤 여유가 생기면 갚으라고 하더라고요. 아니면 안 줘도 된다고. 어찌나 고맙던지.”

 서 사장은 그렇게 극적으로 가게를 인수했고, 반년 만에 돈을 다 갚았다. 장사가 잘 돼 매달 200만원, 300만원씩 여유가 생길 때마다 틈틈이 보낸 거다. 연락처도 모르는 상태에서 계좌번호만 받아 그렇게 돈만 차곡차곡 보냈다.

 “우리 집이 올초에 방송에 한번 소개된 적이 있는데 그 사장님이 우연히 그걸 보곤 얼마 전에 부산에서 여기까지 찾아왔더라고요. 반가웠죠. 고마웠다고 그때 못한 인사를 했어요.”

(1) 이 집의 비법양념장 (2) 1년치 수게를 보관하는 창고 (3) 식당 외관
 서 사장은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여기에 노력을 더해 성공의 길을 열었다. 돌이켜보면 가게 찾느라 반년 넘게 씨름했던 게 허송세월이 아니라 다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지금 쓰는 동해해물탕만의 비밀 양념장도 당시 다른 식당에서 일하며 어깨 너머로 배운 맛집 양념장을 토대로 한 것이니 말이다. 물론 지속적으로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지만 말이다.

 “지금 당산동 가게를 열기 전 두 달 정도 공사를 했거든요. 하루라도 빨리 장사를 해야 했지만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어요. 옛날 기억을 떠올리면서 차라리 그 두 달을 값지게 쓰자고 마음먹고는 다시 양념장 개발에 몰두했죠. 양념장 한번 만들 때마다 밥숟가락 하나 정도의 고춧가루를 썼는데, 나중에 보니 두달 동안 40근(약 24kg)이나 썼더라고요. 얼마나 많이 만들어봤는지 대충 짐작이 가나요.”

 그는 비밀 양념장의 주재료를 말해주면서 “신문에 밝히면 안된다”고 신신당부했다. 이렇게 자신만의 비법을 만들어낸 그는 해물탕과 해물찜의 비밀 양념을 정확히 계량해 미리 담아놓는다. 손님이 많이 몰려 바빠도 언제나 똑같은 맛을 내기 위해서다. 많은 손님을 대비해야 할 만큼 자리를 잡았지만 워낙 힘들게 가게를 일으켜서인지 서 사장은 지금도 더 좋은 맛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맛있다고 소문나거나 언론에 소개되는 집은 꼭 한번 찾아간다. 심지어 손님들이 밥 먹다가 “어디어디가 맛있대”라고 가볍게 대화한 것도 놓치지 않고 기억했다가 계산할 때 물어보고는 직접 가본다.

 “내 것만 최고라고 자만하면 절대 안 돼요. 유명한 집은 뭐 하나라도 배울 게 있거든요. 맛·반찬·서비스·직원태도·인테리어 등 뭐가 됐든지 간에요.”

 늘 배운다는 자세 덕분에 늘 발전할 수 있었다. 장사 초기엔 비교적 저렴한 오징어를 사용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오징어 하나만 더 좋은 걸로 바꿔도 그 집 이미지가 달라진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식당에 가서 오징어를 먹었더니 우리집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탱탱하고 신선한 거예요. 깜짝 놀랐죠. 한입만 먹어도 정말 신선하다는 느낌을 확 받을 정도로요. 그래서 그 가게 뒤에 폐 상자 등 쓰레기 내놓는 곳에 가 보니 오징어 담았던 박스에 ‘선동’이라고 쓰여있더라고요. 선동이란 건 오징어를 잡자마자 배에서 얼린 걸 말해요. 그래서 그 이후로 선동 오징어만 써요.”

(왼쪽부터) 낙지, 명태알, 아귀, 소라·민들조개·가리비, 미더덕, 곤이(명태 알·내장), 키조개, 꽃게, 오징어, 새우(대하·민물새우)

 2년 전엔 인천 연안부두의 유명하다는 한 해물탕집에서 처음 보는 조개를 발견하곤 음식쓰레기를 다 뒤지기도 했다.

 “껍질을 가져오고 싶었는데 종업원이 살을 발라주곤 껍질을 다 가져가는 거예요. 그래서 그날 서울로 올라와 저녁장사까지 다 하고 밤 11시에 다시 내려가서 그집 쓰레기 봉투를 뒤졌죠. 껍질을 찾아서 시장가서 물어봤더니 민들조개라고 하더라고요. 이걸 넣으면 국물이 훨씬 시원하고 감칠맛이 나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 우리집에도 민들조개를 넣기 시작했죠.”

 맛도 맛이지만 해물을 다루는 식당인만큼 서 사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식재료 품질관리다. 하루만 지나도 재료의 신선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모든 해물은 매일 새벽 시장에서 직접 사오는 걸 원칙으로 한다. 단 꽃게는 11월 중순에 잡히는 수게가 가장 맛있고 살이 많아 1년치 게를 한꺼번에 구매해 인천에 있는 저장고에 보관해 사용한다.

 “전에 고기집도 했었고, 장사경력이 한 30년 돼요. 근데 해물집은 정말 어려워요. 재료가 꽃게·오징어·새우·조개·낙지, 뭐 이렇게 13~14개 되는데 그 중 하나가 조금만 이상해도 난리가 나거든요. 미더덕만 해도 하루에 수백, 수천개를 쓰잖아요. 근데 그중에 딱 하나 좀 이상한 게 있는데 운 나쁘게 그걸 손님이 먹어봐요. 그럼 아무리 다른 재료가 좋아도 우리 음식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질 수밖에 없죠. 하나부터 열까지 다 꼼꼼하게 신경 쓸 수밖에 없어요.”

“술만 먹지 마” … ‘엄마’ 잔소리가 비법 양념

32년째 같은 자리에서 아귀찜을 팔고 있는 최화자 할머니가 주먹밥을 만들고 있다. 원래 파는 것이지만 안주 없이 술만 먹는 손님들에게 그냥 주기도 한다.

지난 17일 찾아간 지하철 3호선 신사역 1번 출구 근처 원조부산아구집.

 본격적인 식사시간으로는 조금 이른 오후 5시쯤이었지만 원조부산아구집 안으로 끊임없이 사람들이 몰려들어왔다. 화사한 원피스나 깔끔한 정장을 잘 차려입은 직장인들이 아귀찜 먹겠다고 허름한 식당 안으로 계속 들어왔다.

 “생각해봐. 죽을 때 10원 한장 가져가나. 사람은 욕심부리면 안돼. 욕심내지 말고 늘 베풀면서 살아야 하는 거야. 장사를 하면 늘 좋은 물건 쓰는 건 기본이고. 내가 이번에 배 사고(세월호 침몰 사건) 난 거 보고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

 32년째 논현동에서 아귀찜을 팔고 있는 최화자(71) 할머니는 장사꾼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가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할머니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의외로 좋은 맛이 아니었다. 그저 좋은 재료로 정성껏 음식을 만들고 자신의 식당을 찾은 손님이 배가 불러 나가면 그만이란다. 이런 생각이 원조부산아구집 앞에 늘 줄이 서는 원동력이다.

 “잘게 부슨 김에 밥을 굴려 만든 주먹밥 한 접시가 원래 2000원이야. 그런데 가끔 밥은 안 먹고 술만 먹는 아들들이 있어. 그럼 그냥 줘. ‘이놈들아, 술만 먹지 말고 밥도 먹어, 몸 상해’ 이러면서.”

 방송을 같이 출연해 이집 단골집으로 알려진 축구선수 안정환 말고도 가수 비와 방송인 강호동 등 숱한 유명인이 자주 찾는다. 할머니는 이런 사람들에게 음식값을 안 받기도 한다.

 “안 받는다고 해도 막 주는데, 그럼 혼나. 우리나라를 빛내는 애들 아니야. 그런 애들한테 내가 밥 한끼 못주겠어. 그거 받아서 내가 얼마나 부자된다고.”

 아귀찜을 시키면 게를 삶은 뽀얀 국물을 주는데, 시원하면서 짭쪼름한 맛이 찜과 잘 어울린다. 국물만 따로 싸달라는 손님이 있을만큼 인기다. 할머니는 그런 손님에게는 아낌없이 퍼준다. 카운터 한켠에 매달려 있는 비닐봉지 안에 패트병 뚜껑이 가득 담겨 있는 이유다.

 “게 삶은 물을 술하고 같이 먹으면 술을 아무리 마셔도 다음날 거뜬 없다고 다들 좋아하더라고. 또 저걸로 라면 끓여먹으면 그렇게 맛있다고도 하고. 그래서 이렇게 준비했다가 달라고 하면 조금씩 퍼 주고 있지.”

 이렇게 엄마처럼 정(情)을 퍼주니 단골들은 최 할머니를 모두 ‘엄마’라고 부른다. ‘사장님’이라고 부르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모두 아들·딸, 가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들고 나는 손님들에게 내내 “어서 와라, 이쁜이들. 계단 조심하고”라며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사실 할머니가 장사를 시작한 데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사람 좋아하고 인정많은 성격을 알아본 점쟁이의 권유가 결정적이었다.

 “내 고향이 경기도 양주야. 결혼하면서 서울 와서 돈암동에 살았지. 남편은 전기 기술자라 늘 해외에 나가있고 난 애들 키우는 주부였어. 그런데 어느날 점 보러 갔더니 그 점쟁이가 내 얼굴이랑 손금을 보더니 사람 많이 만나는 장사 같은 걸 해야 한다는거야. 그냥 이렇게 살 팔자가 아니라면서. 쌀 장사라도 빨리 시작하라고 어찌나 성화던지.”

1 최 할머니는 살 많고 신선한 미국산 아귀만 쓴다. 2 식당 외관.
 하지만 당장 장사를 시작할 순 없었다. 경험도 쌓을 겸 논현동에서 베이컨과 소시지 요리 식당을 하는 친구를 찾아가 일을 도와줬다. 일 하는 틈틈이 주변을 살펴보니 주위에 아귀찜집은 많은데 다들 맛은 별로 없었다.

 “어느 날 한 아귀찜집에 가서 눈대중으로 만드는 법을 보고선 내가 직접 만들어봤어. 그랬더니 난리가 난 거야. 맛있다고. 그래서 여기에 식당을 냈지. 원래 내가 어릴 적부터 음식을 많이 해봤거든. 명절 때면 친척 등 손님이 엄청났어. 쌀 한가마니로 떡을 해도 금세 다 없어질 정도였으니까. 어머니를 도와서 음식을 많이 해봐서 원래 음식솜씨가 좋아.”

 솜씨 좋은 할머니 식당은 문 열자마자 손님들 발길이 줄을 이었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잘됐다. 아무리 그래도 어려운 시절은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 후 1999년에야 사라진 심야영업 제한 때문이다.

 “여긴 주변에 술집이 많아서 밤에 손님이 많아. 술집 갔다 오는 손님도 있고, 일 끝낸 술집 직원도 오고. 그런데 그 때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장사를 못하게 법으로 막아놨거든. 다들 장사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니 꼼수를 부리기도 했지. 밤 11시 되면 문 걸어 잠근 채 작은 불 하나만 켜고 문 앞엔 천막쳐서 빛 안 새어나가게 하고. 그렇게 장사했어. 뭐, 그렇게 해도 단속에 걸리긴 했지.”

 그때와 비교하면 요즘은 온통 신나는 일 뿐이다. 마음껏 장사를 할 수도 있는 데다 전보다 아귀 손질이 더 쉽기 때문이다.

 “전엔 국내산을 많이 썼는데 국내산 아귀는 크기가 작아. 전부 직접 손질을 다 했어. 그런데 지금은 미국산 아귀만 써. 살도 많고 잡은 뒤 배에서 바로 얼려 싱싱하거든. 이건 크기도 크고 냉동상태라 기계로 다 잘라서 와. 중국산은 바로 얼린 게 아니라 좀 비려. 아, 국내산을 안 쓴는 건 너무 작아서 뼈밖에 없다고 손님들이 싫어해서야.”

 할머니는 지금도 오후에 출근해 밤새 가게를 지킨다. 고령에다 무릎도 좋지 않아 다른 일 하는 자식들은 일 좀 그만하라지만 할머니는 가게에 나오는 게 좋다.

 “내가 안보이면 손님들이 찾아. 다들 ‘엄마’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고. 나도 요즘엔 그런 아들·딸들이랑 얘기하는 재미로 살아. 새벽에 손님 없을 때 틈틈이 자니까 괜찮아. 올해 71세인데 75세까지만 장사하면 좋겠어.”


1·2위 어떻게 선정했나

江南通新은 레스토랑 가이드북 『다이어리알』 이윤화 대표,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배한철 총주방장, 천덕상 롯데호텔 무궁화 셰프 , 음식평론가 강지영씨의 추천을 받아 5개 식당을 후보로 추렸습니다. 이후 후보 식당 5곳을 5월 21일자 江南通新에 공지한 후 일주일 동안 독자투표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동해해물탕과 부산아구가 각각 1, 2위로 뽑혔습니다.

라이벌 (18) ‘냉면’ 결과는 7월 2일 발표합니다.
현재 진행 중인 메밀막국수 투표 방법은 15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글=심영주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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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