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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담화 계승하겠다더니 '깎아내리기 검증' 아베 물밑 총감독

지난 2월 13일 중의원 예산위에 참석한 아베 총리. TV 카메라 불빛인 빨간 원이 마치 일장기를 상징하는 듯하다. [도쿄 로이터=뉴스1]
20일 일본 정부가 공표한 소위 ‘고노(河野)담화 검증 보고서’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담화의 의미를 ‘한·일 양국 간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깎아내렸다. 보고서가 발표되기까지 중요한 고비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전 세계, 특히 미국에서 쏟아지는 ‘역사 수정주의자’ 비판이 두려워 본인은 “고노담화를 수정하지 않겠다”며 숨었지만, 물밑에선 부지런하게 작업을 독려하고 주도했다.

 먼저 우익세력의 단순한 희망사항에 불과했던 ‘고노담화 검증’을 정부 차원의 과제로 추진되도록 만든 이가 아베였다. 2월 20일 우익언론의 담화 검증론을 우익정당 일본유신회의 야마다 히로시(山田宏)가 국회로 퍼 날랐다. 그는 과거 고노담화 발표 과정에 참여했던 이시하라 노부오(石原信雄) 전 관방부장관을 중의원 예산위원회로 불러내 “담화 작성 과정에서 한국 측과 절충이 있었다고 추정된다”는 답변을 유도했다. 이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에게 “정부 내 팀을 만들어 검증하라”고 압박했다.

 답변에 나선 스가 장관은 “역사학자에게 맡겨야 할 문제”라며 원론적 답변을 반복했다. 이런 스가의 태도를 바꾼 게 바로 아베였다. 21일자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당시 각료석에 함께 앉아있던 아베 총리가 스가 장관에게 “확실하게 말하는 게 어떠냐”는 취지로 참견했고, 결국 스가의 입에서 “검증을 검토하겠다”는 답변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렇듯 ‘야당 의원의 압박에 못 이겨 할 수 없이 검증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연출했던 아베지만 정작 무대 뒤에선 야당 의원을 독려했다. 2월 25일 예산위가 종료된 뒤 아베는 야마다 의원에게 일부러 말을 걸며 “언론 보도를 보니 여론조사에서 고노담화를 검증해야 한다는 의견이 60%를 넘더라. 당신의 질문 덕분”이라고 칭찬했다. 이에 야마다는 “정부와 국회에서 역할을 분담하자”고 화답했다. 고노담화 무력화를 위해 총리와 야당 의원이 의기투합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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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검증을 명분으로 담화 발표 당시의 양국 간 협의 내용을 공개하는 것을 통해 아베 총리가 노린 것은 뭘까. 아사히신문은 “위안부에 대해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하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그건 (담화 발표로) 모두 끝난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내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담화 발표 전날 김영삼 대통령이 담화의 문안을 (높이)평가했다’는 내용이 보고서에 포함된 것에도 이런 의도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고노담화 검증팀이 검증 결과 공표를 망설이자 공표하도록 유도한 것도 아베 총리였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보고서가 공표된 뒤 담화 발표 당사자인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관방장관을 국회로 불러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야마다 의원은 “고노 전 관방장관을 참고인으로 국회로 불러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아베 총리의 최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총재특별보좌관은 22일 TV에 출연해 “본인이 발언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국회에 나와 설명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기우다는 “위안부 상(像)을 설치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국가에는 (검증 보고서)영문판을 만들어 사실을 설명하면 좋겠다”고도 했다.

 한편 고노 전 관방장관은 21일 한 강연회에서 “(위안부 모집이)강제적으로 이뤄졌다고 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가지 (위안부)모집 형태가 있었겠지만 시설(위안소)에 들어가면 군의 명령으로 일했고 돌아가려 해도 돌아갈 수 없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고노 담화=1993년 8월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관방장관이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담화. “위안부 모집은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맡았으나 그 경우에도 감언·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된 사례가 많았으며, 더욱이 관헌 등이 직접 이에 가담했다는 것이 명확했다”고 밝혔다. 또 위안소는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치됐고 위안소 관리와 위안부 이송에 일본군이 관여했다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올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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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