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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를 "일본 편" 둔갑시킨 산케이

일본의 극우 입장을 대변해 온 산케이신문의 22일자 1면 ‘반일로 한데 묶어 1면 톱?이라는 제목의 머리기사(오른쪽). 산케이신문은 “배춘희 위안부 할머니는 생전 일본에 우호적이었다”고 주장하며, 배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전한 중앙일보 9일자 1면 머리기사(왼쪽)가 편파 왜곡 보도라고 비판했다.

일본의 산케이(産經)신문이 22일자 1면에서 본지가 9일자로 보도한 ‘이제 54명 남았습니다’ 기사를 비난했다. “일본 편이던 전 위안부의 죽음, ‘반일’로 한데 묶어 1면 톱”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서다. 우익 성향의 산케이가 연재 중인 시리즈 ‘역사전(戰)’의 제3부 ‘위안부 한국과의 대화’의 첫 번째 기사다.

 기사는 “취재팀이 9일 한국에 도착해 처음 받은 ‘세례’가 중앙일보의 1면 톱 기사였다”로 시작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춘희 할머니의 별세를 전한 본지 기사는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237명 중 생존자는 이제 54명이 남게 됐다”며 여성가족부 자료를 토대로 생존한 피해자 명단(피해자의 성·연령·거주지) 전체를 실었다.

 산케이 기사는 이렇다. “(생존자) 명단엔 현재 나이가 80세로, 종전 당시 10세나 11세였던 여성도 있다. 일본 입장에서 보면 믿기 어렵지만 한국에선 그것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 (위안부 피해자 쉼터) ‘나눔의 집’에서 마지막을 보낸 배씨는 사실 전후 스스로 일본에 와서 약 30년간 살았고, 군가 등 일본 노래를 잘했다. 관계자는 ‘일본 편이라 나눔의 집에서는 (어울리지 못하고) 좀 떠 있었다’고 말했다. 오래전부터 배씨를 알았고 배씨의 장례에도 참석했던 사람을 만났더니 ‘그녀는 (위안부를) 강제로 끌고 갔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고, 일본을 용서하고 싶다고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의 미디어는 이런 배씨의 일면은 보도하지 않는다. 중앙일보 기사는 그녀의 사람됨은 언급하지 않았다. 위안부가 된 경위도 사고방식도 생활태도도 다른 여성들을 ‘일본군 피해자’라는 관념적인 틀로 한데 묶어 획일적으로 다뤘다. 이런 한국 사회의 자세는 각자의 사정도 있고, 복잡한 심경을 가진 전 위안부들을 한 명의 여성으로 존중하지 않고, 단지 ‘반일’을 위해 이용하고 있는 것 아닌지 의문을 금치 못하겠다.”

 산케이는 그러나 배씨가 생전에 일본에 우호적 성향을 보였다는 근거로 모두 익명의 발언을 인용했다. 게다가 발언 내용도 지나친 자의적 해석이 많다.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은 “배 할머니가 강제로 끌고 간 건 아니라고 말한 것은 ‘좋은 곳에 취직시켜 준다는 말에 속아 위안소로 끌려갔다’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이어 “배 할머니가 일본어를 잘하고 일본 군가를 부르기도 했지만 그걸 일본을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악의적 해석”이라고 말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손영미 소장도 “배 할머니가 일본의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는 수요집회에 자주 참석했는데 일본을 용서했다면 그랬겠느냐”고 반박했다. 또 위안부로 끌려간 정황이나 살아온 개인사가 각기 다른 할머니들을 모두 ‘위안부 피해자’로 보도한 것이 잘못이라면 북한으로 납치된 경위가 다른 피해자들을 ‘납북 피해자’로 묶어 대응하는 일본 언론과 정부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는 뜻인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난 2일 도쿄의 일본 국회회관에서 열린 세계 8개국 위안부 단체 합동집회에서 산케이 기자만 유독 팔을 붙잡히며 항의를 받았다. 이번 기사를 읽어보면 산케이가 왜 그처럼 험한 꼴을 당했는지 자명해진다. 산케이는 “일본에 불이익을 주려는 움직임의 진상을 밝히겠다”는 취지로 올 4월 ‘역사전’이란 기획물을 시작했다. 모두가 위안부 할머니들과 고노 담화를 폄훼하는 내용이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서울=구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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