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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월요일 - 시간을 먹다 ① 서울식 추탕

곰보추탕 2대(代) 조명숙(73)씨가 추탕을 담아 손님에게 내고있다. 큰 가마솥에 끓인 추탕을 조금씩 덜어 데운 후 다시 손님에게 낸다.

반세기 넘게 맛을 지켜 온 식당들이 있다. 똑같은 음식을 대를 이어 파는 건 쉽지 않다. 맛을 인정한 손님들이 오랜 기간 이 집에 이문을 남겨주고, 주인장은 그 맛을 지켜왔기에 가능했다. 한 해에 5만여 개의 식당이 문을 열고 닫는 요즘, 그 시간만으로도 존경받을 일이다. 서울시 미래문화유산선정위원회와 한식재단이 인정한 오래된 식당들을 4주에 한 번씩 소개한다. 82년 된 곰보추탕이 문을 닫을 수도 있다고 해서 이곳을 포함해 일제시대 개업한 서울식 추탕집 3곳을 첫 방문지로 삼았다.


지난 20일 서울 동대문구 용신동 곰보추탕. 수십 년은 된 듯한 선풍기가 ‘털털털’ 돌아가고 있고, 그 바람을 맞으며 60대 손님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추탕을 먹고 있다. 진한 국물에 야들야들 익은 미꾸라지가 통으로 들어간 ‘서울식 추탕(鰍湯)’. 일산에서 찾은 장영주(60)씨는 “아버지 손 붙잡고 50년 전에 처음 왔을 땐 저기 앞 개울가에 물도 많이 흘렀고, 이 집도 한옥이었는데 그간 많이 바뀌었다”며 “그래도 맛은 그때 그 맛이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곰보추탕은 1933년 문을 열었다. 올해로 개업 82년째다. 서울에선 다섯 번째로 오래됐다. 곰보였던 창업자 고(故) 정부봉씨의 별명을 따라 자연스레 곰보추탕이 됐다. 형제추탕(1926년 개업), 용금옥(1932년 개업)과 함께 서울식 추탕 3대 명문집 중 한 곳이다. 70년부터 큰며느리인 조명숙(73)씨가 가게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식 추탕은 곱창·양지로 육수를 내고 고추장을 풀어 담백하고 매운 국물로 만든다. 이 국물에 미꾸라지를 통으로 넣고 유부·두부·버섯 등을 더한다. 미꾸라지를 갈아 된장과 시래기로 맛을 내는 남도식 추어탕(鰍魚湯)과 구분해 추탕이라 불린다.

 곰보추탕은 잡뼈를 넣지 않고 쇠고기 양지로 푹 삶아 국물을 낸다. 커다란 가마솥에 늙은 호박과 느타리버섯·대파·계란 등 16가지 재료를 넣는다. 조미료는 쓰지 않는다고. 구수한 맛의 비밀은 밀가루란다. 맛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도 모든 재료는 저울에 달아 넣는다. 재료는 국내산만을 고집한다. 미꾸라지는 소금으로 해감한 후 포대에 넣고 30분간 끓이다 따로 빼낸다. 예전에는 경기도 일대에서 잡은 자연산 미꾸리를 썼지만 지금은 국내에서 양식한 미꾸리를 쓴다. 미꾸리는 미꾸라지보다 크기가 작고 몸통이 둥글어 예부터 추어탕에 사용됐던 품종이다. 조 할머니는 “중국산 미꾸라지는 뼈가 억세 통으로 먹을 수 없다”며 “서울식 추탕의 제맛을 내려면 미꾸리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할머니는 67년 곰보추탕집으로 시집을 왔다. 시아버지에게 따로 조리법을 배우지는 않고 어깨너머로 익혔다고 했다. 당시엔 국물이 지금보다 훨씬 매워 “한 술 떠먹으면 입에 불이 나는 맛”이었다. 고 조병옥 박사와 고 서영춘씨 등 정치인과 연예인 단골도 많았다.

 곰보추탕은 최근 손님은 많이 줄었다. 조 할머니가 지난해 가마솥에 불을 때다 화상을 입어 두 달간 영업을 하지 않은 탓이 컸다. 옛 신설동 자리에 있어 외지 손님이 찾아오는 것도 쉽지 않다. 오랜 단골이나 옛 기억을 더듬어 가게를 찾는 50대 이상 손님들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가게를 찾아 추탕을 먹고 나가던 이승철(57)씨는 “아버님을 따라 찾아왔던 기억이 나 10년 전부터 다시 찾아와 먹고 있다”며 “지난주에 유럽에 갔다 왔는데 이 맛이 생각나 귀국한 후 바로 찾아왔다”고 말했다.

 서울시 추탕의 원조라는 조 할머니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구부정하게 굽은 허리가 안쓰러워 오래된 단골들이 “뜨는 건 제가 직접 하겠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다른 이에게 주방을 넘긴 적은 없다. 조 할머니는 “추탕에 들어가는 16가지 재료 중 손님에게 뜰 때는 반드시 다섯 가지가 들어가야 하는데 이건 나만 아는 비법”이라고 말했다.

 곰보추탕은 얼마 후 문을 닫을 예정이다. 영업기한은 조 할머니의 건강이 허락하거나 가게 주변이 재개발되기 전까지다. 가게 주변 지역은 재개발 조합과 재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 사이의 소송전이 벌어져 그동안 재개발이 계속 미뤄졌던 곳이다. 그러다 지난 5월 대법원에서 조합의 손을 들어주며 재개발이 최종 결정됐다. 아들은 “어머니가 그동안 고생하셨으니 가게를 팔아 노후를 편히 보내시라”며 점포 영업을 이어가지 않기로 했다. 조 할머니는 “맛이 끊기는 건 아깝지만 이 맛을 유지할 수 없는 사람한테 가게 이름만 넘길 수는 없다”고 말했다.

글=안효성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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