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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의 돈키호테 … '향기 나는 공간' 엉뚱한 상상을 현실로

무림교역 이상정 회장이 경기도 군포시의 한 공원에 설치된 이동식 화장실 앞에서 한국 화장실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근 설치한 이 화장실은 색다른 디자인과 화재예방 기능 등을 갖췄다. [오종택 기자]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의 이동식 화장실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허름한 가림막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누렇게 변색된 플라스틱 통이 나란히 놓인 곳이 소변용, 임시로 만든 구덩이에 아슬아슬하게 나무판자 두 개를 걸쳐 놓은 것이 대변용이었다. 화장실 안은 온갖 오물로 뒤범벅이 된 터라 코를 막고 발뒤꿈치를 들어야 했다. 여성용 화장실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렇다 보니 대규모 행사가 열릴 때면 행사장을 찾은 인파들은 이동식 화장실이 아닌 하수구나 담벼락·나무 등에 ‘실례’를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연중기획 퍼스트 펭귄 (19) 이동식 화장실 개발·보급 30년 이상정 무림교역 회장
1984년 교황 방한 인파 보고 착안
88올림픽, 대통령 취임식 독점 공급
펜션형 화장실 등 자체 기술로 개발



 이런 원초적인 한국의 화장실 풍경을 완전히 바꿔놓은 인물이 있다. 화장실 전문기업 무림교역의 이상정 회장. 국내에 최초로 이동식 화장실을 보급한 그는 한국의 화장실을 ‘문화’ 차원으로 높이고, 하나의 산업으로 키운 ‘퍼스트 펭귄’으로 평가받는다.



 서울시 주택부국장을 끝으로 17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던 84년 5월이었다.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미사를 집전하던 장면을 TV로 보던 그는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저 많은 사람들이 ‘볼일’은 어디서 해결할까? 당시 100만 명이 운집했다는데, TV를 유심히 살펴봐도 화장실을 찾을 수는 없었다. 순간 그는 ‘이동식 화장실을 팔아보면 어떨까’라며 무릎을 쳤다. 이 회장은 “한때 여의도를 관할하는 영등포구청에 근무했는데, 대규모 집회만 열리면 여의도 광장은 쓰레기뿐만 아니라 배설물과 악취로 난장판이 됐다”며 “이참에 이런 문제를 직접 해결해 보자는 생각이 든 것”이라고 회상했다.



화장실 문화가 개선되면서 단순히 ‘볼일’만 보던 이동식 화장실은 이제 독특한 디자인을 갖춘 편리한 화장실로 바뀌고 있다. 무림교역이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설치한 이동식 화장실(왼쪽)과 1993년 대전 엑스포에 설치한 이동식 화장실(오른쪽), 그리고 현재 무림교역이 보급하고 있는 최신 이동식 화장실의 모습. [사진 무림교역]
 당장 전국의 주요 공원, 해수욕장, 예비군 훈련장, 고속도로 휴게소 등을 돌면서 공중 화장실의 실태를 살폈다. 가는 곳마다 관리 부실로 악취가 진동했고, 화장지 같은 위생용품이 없어 이용하기 망설여지는 수준이었다. 그는 “서울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개최가 얼마 안 남은 시점이었는데, 외국인이 이렇게 불결한 화장실을 보면 국가 이미지가 땅에 떨어질 게 불 보듯 뻔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독일·일본 등 선진국의 이동식 화장실 보급 사례를 검토했고, 미국 업체가 만든 조립식 이동식 화장실을 수입해 한국식으로 개조한 뒤 국내에 보급하기 시작했다. 무림교역은 85년 9월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세계양궁대회에 20대의 이동식 화장실을 설치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당시 정몽구 대한양궁협회장이 직접 이동식 화장실을 만져보면서 “이런 게 다 있나”라고 감탄했다는 게 그의 회고다.



 이후 무림교역은 86 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대전 엑스포, 세계잼버리대회 등 국제행사에 이동식 화장실을 독점 공급했다. 한강시민공원, 예비군 훈련장 등의 이동식 화장실 설치도 맡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제품을 수입해 개조하는 식이었지만, 노하우가 쌓이고 자체 생산기술을 갖추면서 국내 최대 이동식 화장실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수요가 늘면서 경쟁업체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13대 노태우 대통령에서부터 18대 박근혜 대통령까지 취임식 행사장에는 늘 무림교역의 이동식 화장실이 자리를 지켰다. 덕분에 무림교역은 계열사의 매출을 합쳐 약 2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회장은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 잡으면서 시민들의 공중도덕 의식을 높이는 새로운 문화운동이 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스스로 ‘화장실 문화 전도사’가 되기로 다짐한 것이다. 사실 80~90년대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첫손에 꼽은 불만이 바로 더러운 화장실이었다. 그는 해외에서 열리는 화장실 관련 세미나·심포지엄에 참가해 듣고 배운 내용을 토대로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화장실 문화 개선운동을 제안했다.



 그가 정부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총 6가지의 공중 화장실 개선안이 담겼다. ▶화장실 내부는 밝고 쾌적해야 한다 ▶불쾌한 냄새가 없고 향기가 나는 공간이 돼야 한다 ▶손을 닦고 화장을 고칠 수 있는 시설을 갖춰야 한다 ▶장애인과 노약자가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유아를 동반한 어머니나 쇼핑백을 든 사람도 불편 없이 이용하게끔 별도의 시설이 있어야 한다 ▶여름철 냉방시설은 안 되더라도, 겨울철 수도관 동파를 방지하기 위해 난방시설은 갖춰야 한다 등이다. 지금 화장실에 적용해도 전혀 문제가 없을 만큼 당시로선 선구자적 발상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의욕을 따라잡지 못했다. 겨우 담당 공무원을 설득해 약속을 받아도 화장실 시설 개선은 늘 예산 집행에서 후순위로 밀렸다. 기자들과 만나 화장실 문화 선진화에 대해 열변을 토해도 ‘독자·시청자들이 식사하는 데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기사는 나오지 않았다.



 그의 노력이 빛을 본 것은 2002년 월드컵을 유치하면서다. 모든 면에서 일본과의 비교가 불가피해지면서 최고의 위생과 청결 수준을 자랑하는 일본 화장실에 뒤질 수 없다는 공감대가 마련됐다. 월드컵 개최 도시들은 화장실을 대대적으로 신축·보수했고, 외국인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주지 않기 위해 전국적으로 화장실 문화운동이 펼쳐졌다. 정부가 직접 나서 ‘아름다운 화장실 대상’을 뽑기도 했다.



 이 회장도 단순한 이동식 화장실에서 벗어나 화장실의 고급화를 위해 다양한 신제품을 선보였다. 분뇨를 자연 발효시켜 물과 전기가 필요 없는 ‘자연발효형’, 10명 이상이 사용할 수 있는 ‘트레일러형’, 내부에 세면대·방충 시설은 물론 냉난방 시설을 갖춘 ‘펜션형’ 등의 이동식 화장실이 월드컵을 계기로 속속 설치됐다. 최근에는 화장실의 실내온도, 이용자 수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소모용품 교체주기도 체크할 수 있는 ‘무인 화장실 관리시스템’을 선보이기도 했다. 오명 전 부총리는 이 회장을 ‘화장실 문화사에 길이 남을 선구자’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화장실 문화뿐 아니라 관련 산업도 변했다. 일반 기업은 물론 가정집에서도 고급 화장실을 갖추려는 수요가 늘면서 변기나 인테리어는 물론 비데·방향제 등까지 연관 산업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후진국형 화장실 문화를 바꿔보겠다’는 작은 시작이 적지 않은 파급효과를 불러온 셈이다. 이 회장은 “화장실 사용 수준은 그 나라의 문화와 생활 수준을 나타내는 척도”라며 “국내 공공 화장실이 이젠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처지지 않는 수준으로 올라선 것은 한국이 경제는 물론 문화적으로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자신의 나이를 기재하지 말아달라고 완곡히 부탁했다. 앞으로 적어도 20년은 더 일할 생각인데, 괜히 ‘노땅’ 취급을 받기는 싫다는 것이다. 그는 “일에 대한 열정과 기백은 나이와 무관하다”며 “이젠 해외로 나가 한국의 선진 화장실 문화와 첨단 관련 제품을 알릴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글=손해용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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