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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고노 담화 검증은 역사의 덫이다

신각수
서울대 일본연구소 특임연구원
전 주일본 대사
일본 정부가 1993년 8월의 고노 담화에 관한 검증작업 결과를 20일 발표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역대 일본 정부는 고노 담화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공식 입장으로 존중하고 견지해 왔다. 아베 정부가 이런 역사적 중요성을 가지는 고노 담화를 이제 와서 검증하겠다는 발상은 자기 부정이자 역사의 퇴행에 불과할 뿐이다. 아베 총리는 집권 초기부터 고노 담화의 수정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러나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부정적 인식이 확고함을 알고는 검증으로 선회한 셈이다. 아베 정부는 마지못해 고노 담화의 ‘존중’이 아닌 ‘계승’을 언급했다. 검증은 결국 고노 담화의 실체적 진실에 대한 도전이 어려워지자 절차적 꼬투리를 찾아 고노 담화를 흠집 내려는 전술적 전환이라 할 것이다.

 이번 검증 결과의 가장 큰 문제는 한·일 간 외교기록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문명국 외교 상식에 어긋나는 행태를 보인 점이다. 외교의 근간인 신뢰와 상호주의를 송두리째 무시한 처사다. 또한 검증팀이 복잡한 외교 과정의 자의적 해석과 의도적 짜깁기를 통해 정해진 결론을 도출한 것은 ‘갈라파고스 일본’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일본이 노리는 핵심 목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고노 담화가 한·일 정부 간의 의견교환을 통해 작성되었다는 형식을 빌려 이 담화가 사실 관계보다는 한국의 요구로 만들어진 흠집 있는 문서라는 점을 주장하려 하고 있다. 둘째는 고노 담화 검증과 직접 관련이 없는 아시아여성기금을 다루면서 한국 정부가 초기에 동의했다가 나중에 입장을 바꾸었다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미해결 책임을 한국에 전가하려 한 점이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진실에도 반할 뿐만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더욱 꼬이게 하는 어설픈 각본과 다름없다. 첫째, 고노 담화는 일본 정부가 사실 조사를 토대로 스스로의 책임하에 작성하고 발표한 문서다. 한·일 정부가 협의나 교섭을 통해 작성할 성격의 문서가 아니다. 더구나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한국이 도덕적 우위에서 일본에 물질적 보상을 요구하지 않고 사실 규명 및 후세 교육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일본에 담화 내용에 관한 협의나 교섭을 요구하지 않은 것은 자명하다.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바로 드러날 사안이다.

 둘째, 일본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군 관련 문서를 정부 지시로 모두 소각·폐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증언이다. 피해자의 목소리는 고노 담화의 중요한 토대이자 우리 모두 귀를 기울여야 할 사료다. 이를 의도적으로 부인하는 검증 결과는 손으로 해를 가리겠다는 것과 같다.

 셋째,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핵심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강제적으로 성노예 행위를 제도적으로 강요한 데 있다. 즉 성노예 행위의 ‘강제성’ 및 조직적 행위로서의 ‘제도성’이 관건이다. 이러한 사실은 라디카 쿠마라스와미, 게이 맥두갈 유엔특별보고관의 보고서, 유엔 인권기관의 권고, 미국·유럽연합(EU) 등 주요국 의회 결의 등에 반영되어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보고서는 강제성의 의미를 ‘강제 연행’ 여부로 좁히고, 이를 일본군이 지시한 문서는 없었다는 식의 논리를 답습하고 있다. 2007년 워싱턴포스트에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인하는 광고를 냈다가 국제사회로부터 뭇매를 받았던 전철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 아시아여성기금은 1990년대 중반 최종 해결에는 실패한 방안이다. 일본 정부는 자신의 의지에 반해 여성으로서의 존엄을 잃고 평생 그늘에 숨어 살아야 했던 피해자의 마음을 풀어야 해결되는 사안임을 간과했다. 그동안 얼마나 피해자의 마음에 다가가는 진정한 노력을 했는지 일본 정부는 스스로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우리로서는 아베 정부의 검증 의도가 진실을 왜곡하고, 일본군 위안부 책임 회피를 위한 국제 홍보전의 일환으로 드러난 만큼 이에 대해 착실히 대응해가야 한다. 무엇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기존 자료의 정리와 새로운 자료 발굴을 통해 검증이 의도한 왜곡 효과를 차단하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검증 결과가 국제사회 여론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설명하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국제여론 환기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 조기 해결을 일본에 지속적으로 압박해 가야 할 것이다.

 일본 정부는 더 이상 스스로를 역사의 덫으로 몰아넣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일본이 유엔에서 발표한 전시 여성인권보호지원 제안이 세계의 분쟁지역뿐만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도 향해지길 바란다. 일본군 위안부는 여성의 명예와 존엄이라는 보편적 인권의 본질을 침해한 사례로서 이미 한·일 차원을 넘어 일본 대 국제사회의 문제다. 피해자는 평균 88세로 54명만이 생존해 있다. 역사와 화해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일본은 한·일 관계 안정과 동북아 평화를 위해 역사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돌려야 한다. 아베 정부는 언제까지 역사 수정주의를 통해 20세기의 질곡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두려 하는가.

신각수 서울대 일본연구소 특임연구원 전 주일본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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