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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칼럼] 윤병세 대일외교, 이대로는 안 된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우리 경제와 안보를 위해서 한·일관계도 한·미관계와 한·중관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건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관계의 비정상이 정상화될 전망이 안 보인다. 두말할 것 없이 그 일차적인 책임은 동북아의 근·현대사를 왜곡하는 역사수정주의 궤도를 질주하는 일본 총리 아베에게 있다. 아베 정부는 오늘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사과한 1993년 고노 담화의 바탕을 흔드는 내용의 조사보고서를 국회에 낸다. 보고서는 고노 담화는 한·일 두 정부가 입장을 조율해서 만든 것이고 일본은 아시아 여성기금까지 만들어 할 만큼 했다는 주장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위안부 조사보고서는 아베 정부가 정력적으로 추진하는 집단자위권 확보와 일본인 납치문제에 관한 북·일합의의 꼬리를 물고 나오는 것이어서 한·일관계는 더 깊고 어두운 터널 속으로 빠져들 게 뻔하다.

 일본의 이런 일련의 도발에 한국은 성명을 내는 것 말고는 손을 놓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대일 강경일변도 외교에 있다. 윤병세-아베의 잘못된 조합(mismatch)이 한·일관계를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본 국왕의 사과 요구 이래 최악의 벼랑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북핵문제를 안고 있다. 미·중 패권 다툼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다. 경제와 안보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 그래서 한국 외교는 동북아시아의 정치·경제·안보 환경을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 동북아의 지정학적 요구에 맞춰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한국에 편식 외교는 독이다.

 그런데 윤병세 장관은 어떤가. 올 초 위안부 피해자들의 ‘나눔의 집’ 방문 때부터 일본에 대한 과도한 강경 행보를 계속한다. 한국의 외교부 장관이 취임 후 한 번도 주한 일본대사를 만나지 않은 걸 누가 납득하겠는가. 그는 일본 외상과도 국제회의에서 잠깐 두 번 만난 게 전부다. 작년 7월 아베의 측근인 사이키 아키타카 외무성 사무차관이 취임 한 달 되는 시점에 서울에 와서 윤 장관을 예방했다. 한국에 대한 아베의 진의를 탐색하고 한국의 입장을 아베 정부에 직접 전달할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윤 장관은 면담 내내 시계만 힐끗거리면서 대화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일본 외무성에서 “시계 사건”으로 화제가 되어 원성이 자자했다. 윤 장관의 일본에 대한 의도적인 또는 근본적인 무성의의 사례는 많다.

 만나서 대화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만나서 대화하지 않으면 문제해결의 가능성은 제로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어려운 현안이 쌓이기만 하는데 윤병세 외교에서는 동북아시아의 콘텍스트가 안 보인다. 북한이 일본인 납치자를 재조사하고 일본이 북한에 대한 일본의 독자적인 경제제재를 완화하기로 한 스톡홀름 합의가 성사되고, 김정은-아베 정상회담이 예상되고, 북·일 국교정상화의 대가로 일본이 북한에 줄 보상금이 200억 달러로 절충되었다는 추측이 나돌아도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고위급 대화 채널이 없다. ‘윤병세 벽’이 너무 완고하다.

 윤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 정상외교의 성과인 두터운 한·미, 한·중 관계에 도취된 것 같다. 그는 자기도취에서 깨어나 내리막길의 한·일관계를 치열한 자기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는 우선 박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대통령께서는 확고한 원칙을 가지고 강하게 나가십시오. 저는 대일 외교자원을 총동원해서 그들과 만나서 따지고 협상하겠습니다.” 이것이 대일외교에 필수적인 대통령과 외교부 장관의 역할분담이다. 그러나 우리 외교부 장관은 강경자세에서 대통령보다 윗길이다. 

 윤병세 외교는 한국의 고립을 자초할 수 있다. 미국이 일본의 과속을 조금은 견제하겠지만 북한과 일본은 전면적인 관계개선 궤도를 달릴 것이다. 북한은 일본을 통해서 유엔 안보리가 주도하는 제재에서 숨통을 트려고 한다. 아베는 납치문제 해결에 국내 정치의 성패를 걸었다. 우리가 북·일관계 개선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한·미·일의 북핵공조는 흔들지 말아야 한다. 일본에 그런 요구를 하기 위해서라도 외교 수장부터 일본과 말문을 터야 한다. 장관의 일본에 대한 경직된 자세는 실무진들의 한·일관계 업무태도에 반영되어 실책을 연발한다.

 요미우리신문과 한국일보가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한국인의 83%, 일본인의 73%가 상대를 믿지 못하겠다고 하면서도 한국인의 90%, 일본인의 83%가 관계개선을 원한다고 답변했다. 이것이 국민 여론이다. 정부는 국민들 앞에 한·일관계 개선의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 윤 장관이 강경자세를 안 바꾸면 박 대통령이 그에게 대화 모드로 자세를 완화하도록 지시할 수밖에 없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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