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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인터뷰] 송호근 묻고 김용구 답하다

김용구 한림과학원장(오른쪽)은 OECD 국가 중 외교문서를 발간 않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할 것이라고 질타했다. 19세기 이후 우리 정신세계가 ‘변경(邊境) 사고’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937년 제물포에서 태어난 김용구(77) 서울대 명예교수는 현역 교수 중 가장 연장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1년 5월 어느 날, 필자의 연구실로 책 한 권이 배달됐다. 김용구 교수가 펴낸 조선 말 외교사였는데 강단을 떠나기 전 뭔가 정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정리 작업이 한림대 한림과학원 원장으로 재직하는 오늘까지 계속될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총 30권으로 예정된 ‘근대한국외교문서’가 그의 진두지휘하에 착착 간행되고 있는 중이다. 한국사학계의 미개척분야인 ‘개념사’도 그가 시작했다. 평생 현안 문제로 언론에 나선 적이 없는 백발 원로가 최초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만큼 한국은 긴박한 상황에 부딪히고 있다.


송 : 한국은 지금 대내·대외적으로 위기상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대내적 국가개조, 대외적 국제외교가 제대로 추진되어야 하는데 말만 무성하고 진전은 없습니다. 세월호 사태로 드레스덴선언은 사장 위기에 처했고, 국가개조도 갑오개혁처럼 국민들의 지지 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질까 두렵습니다. 그렇다면 19세기 말 조선이 처했던 상황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이죠. 19세기 말 조선의 외교 전략과 근대 개혁에서 타산지석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최근 보도된 북·일 협상에서 얘기를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요. 한국은 대북·대일 관계에서 주도권을 상실했습니다. 이런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 정말 난망합니다.

 김 : 얼마 전 김영희 대기자께서 북·일 협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내 고립상태를 면하게 했고 어쨌든 물꼬를 텄다는 것이죠. 동의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좌절자들의 합의’예요. 세계 외교사를 보면 좌절자들끼리 합의한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코너에 몰려서 맺은 합의는 오래 못 갑니다. 다른 현안이 거기에 첨부되지 않으면. 일본은 납치자 문제, 김정은은 거액의 보상금, 그걸 맞교환하고 나면 다른 현안에 부딪힙니다. 한국은 미리 통보하지 않았다고 불평하기보다는 가까운 미래에 터져 나올 다음 단계의 현안을 풀어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지금 일본은 19세기 초반 이후 한반도에 대해 가졌던 우월감을 박탈당했다고 느낍니다. 우월감과 박탈감의 교차, 일본적 심리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죠.

 송 : 일본 국민 전체가 아베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는 않을 텐데요. 그런 정서가 극우파와 중도파에 이르기까지 넓게 퍼져 있기는 하겠죠. 북·일 합의에 대처하는 지혜를 조선 말의 경험에서 구할 수 있을까요.

 김 : 실용주의자 박규수예요. 박규수는 당시 일본의 국력을 알았어요. 그래서 모든 신료들이 반대했을 때 서계(書契·공식 외교문서)를 안 받으면 큰 화가 미친다고 고종을 설득했지요. 구로다가 강화도에 함대를 끌고 와서 무력시위를 할 때였어요. 조선 말에 박규수, 김윤식, 김홍집, 어윤중 같은 탁월한 학자관료가 없었다면 망국은 앞당겨졌을 겁니다. 실용적 사고가 중요합니다. 박규수의 노련한 전략 덕분에 강화도조약을 조선 측에 유리하도록 수정했습니다. 요즘 상황에 대입하면 북·일 합의, 즉 좌절자들의 합의가 파탄에 이르기 전 한국과 미국이 어떤 길을 터 줘야 된다는 뜻이죠.

  송 : 실익보다 절차, 예의에 치중하는 것이 바로 원장님이 주장하신 ‘오지의 사고’ 아닐까요?

 김 : ‘오지 사고’는 본질보다 형식에 치우쳐요. 이게 19세기 중국과 우리의 특징인데, 당시 중국 학자 설복성(薛福成)의 얘기입니다. ‘의전 절차, 형식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지만 교섭내용에 들어가면 마구 양보한다’는 사고방식을 뜻합니다.

 송 : 북·일 협상에서 한국 나름의 지렛대를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오지의 사고를 벗어나는 지혜일 터인데, 북한과는 어떤 교류와 협상도 막혀 있습니다. 외교후진성이라고 할까요?

 김 :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대외교섭을 독자적으로 해 본 것은 불과 10년 정도입니다. 19세기 말엽까지 대외 교섭은 사대질서 밖 행위자 문제였고 그 관계는 중국이 담당했어요. 식민지 때는 일본이, 냉전시대에는 미국이 다 했습니다. 그 상태로 지금까지 온 겁니다. 이게 오지 사고예요.

 송 : 한국의 미래를 좌우할 외교 전략과 국제 정세를 보는 눈이 절실한데요, 조선 말에는 그래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뜻인가요?

 김 : 지금은 그만한 사람도 없죠. 이홍장이나 이토 히로부미가 어윤중, 김홍집, 김윤식은 건드리면 안 되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송 : 박규수는 중국이 시퍼렇게 감시하고 있는 와중에서 조선의 돌파구로 ‘공평대국’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150년 전 당시로서는 혁명적 발상입니다. 19세기 후반 러시아, 영국, 독일, 일본이 호시탐탐 노리는 판에 공평대국의 필요성을 논했던 지혜와 대조하면 요즘의 전략엔 그런 통 큰 전략이 보이지 않아요. 북한 문제는 통로를 못 뚫고, 일본하고는 완전히 척이 져 있고, 미국에는 마냥 의존 상태고, 중국과는 통로를 약간 넓힌 정도에 불과한데요.

 김 : 동의합니다. 그런 혁신적 발상을 내놓거나 추진할 세력가나 주도층이 없다는 것이 문제죠. 냉전 시대에 자주적 외교는 거의 불가능했어요. 이제부터예요. 공평대국을 얘기한 박규수처럼, 목숨 걸고 제언하는 사람이 정말 필요해요. 예를 들어 갑신정변이 실패하고 나서 고종이 미국에 사절을 보내요. 민영익이 이홍장 생각을 고종에게 전한 거지요. ‘전하, 큰일 났습니다. 중국이 합방하려고 합니다’라고. 고종은 미국에 사신을 보내 이를 저지하려고 했지요. 위안스카이가 남대문까지 쫓아와서 욕을 해도 보냈어요. 박정양, 민영익 얘기를 듣고. 공평대국을 찾아 나선 거지요. 중국에서 고종을 죽이려고 암살단을 파견했어요. 실패했지만.

송 : 국제전략이 이런 판에 국가개조의 방식 역시 걱정입니다. 사태의 당사자인 국가가 국가개조를 주도한다는 게 사리에 안 맞습니다. 저는 발상 자체를 전환시키는 거야말로 국가개조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하는데 좀 요원한 것 같습니다. 국민들이 답답해하는 게 바로 이것 아닐까요? 지난 선거에서 그래도 여당이 선전은 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지는 선거를 겨우 무승부로 만들어 놨는데 바로 거기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태로 터져 나오는 모든 사회적 요구들을 ‘국가 주도로 내가 다 하겠습니다’라고 그대로 밀고 나갈 가능성이 훨씬 더 커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민사회에 기회의 문을 열어줘야 할 시점인데요.

 김 : 백번 맞습니다. 국가개조라고 기관이나 기구 몇 개 고치는 건 국가개조가 아니에요.

 송 : 아니죠. 거버넌스 스트럭처(governance

structure)라고 하는 게 무슨 기관을 재편하는 것만이 아니죠. 시민사회에서 나오는 권력 또는 요구들을 어떻게 수렴하고 받아들일 것인지가 문제지요.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시민사회에 맡겨 놓으면 정말 무질서하고 야합도 일어날 거라고 두려워합니다. 물론 그런 위험도 있겠죠. 말씀하셨듯이 세기말 조선에서 그런 전환의 예들이 보이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통치양식의 전환을 외치는 사람들이 집권층에는 없습니다.

 김 : 시민사회의 개입에는 여러 방식이 가능하겠죠. 그러나 발상 자체는 그러해야 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책임과 권한을 주면 무질서가 안 와요. 국가의 독주가 지속되고 법이 안 먹히는 한 우리는 아직 중세국가입니다. 중세국가는 두 가지 특징이 있어요. 하나는 폭력장치의 일반화, 그러니까 아무나 무기를 갖고 공권력에 저항하지요. 그리고 충성심의 집중화. 지금 우리 사회에는 두 가지가 다 있다고 봐요. 충성심의 집중화가 존속되는 한 국가개조는 말이 안 되고요. 검찰이 범인으로 지목한 사람을 일부 집단이 옹호하고 감춰준다면 폭력장치의 일반화가 되는 거죠. 중세 질서예요. 일종의 종교 전쟁이죠.

  송 : 1930년대생은 한국에서 마지막 남아 있는 역사적인 세대입니다. 모든 걸 다 겪었잖아요. 그래서인지 사고의 폭도 상당히 넓고요. 세대를 대표한 지식인으로서 이 시대의 과제를 제시하신다면?

 김 : 지식인은 글자와 사상을 통해 생각을 사회에 전달하는 사람 아닙니까. 지식인들이 200년 걸쳐 온 역사적인 사명을 완수하지는 못했습니다. 3대 과제가 있어요. 첫째가 19세기 과제로서 통일된 국민국가 건설이죠. 국제사회에서 살려면 행위자가 하나가 돼야 합니다, 한반도는. 우리가 못하면 후손들이 내내 질곡 속에서 삽니다. 모든 국가가 19세기에 다 했던 일을 우리만 못했지요. 19세기 과제 완성론이죠. 둘째는 냉전청산론. 20세기 과제인 냉전시대를 마감해야 합니다. 다른 국가들은 세계 문제를 논하는데 우리는 남북 대치 상태에 갇혀 있어요. 셋째는 세계화론. 세계화에 대처하고 능동적 행위자가 되는 과제죠. 20세기 문제에 갇힌 채로 21세기 문제를 풀 수는 없잖아요? 이런 점에서 정치인은 물론 지식인, 언론인, 종교인이 제 역할을 해야 하겠지요.

 송 : 중요한 말씀입니다. 국가개조와 국제전략 혁신이 절실한 현 상황에 필요한 지혜를 19세기 말 조선에서 찾아 보았는데, ‘오지의 사고’를 벗어나야 하고, 국가개조에는 민의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아직 우리는 중세국가라는 원장님의 진단은 충격적입니다. 지금 우리가 역사의 원한에 빠져 울분을 토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국제사회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려면 3대 과제의 실천에 나서야 한다는 사실을 짚었습니다. 난국 타개에 좋은 말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글=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용구 원장은 …

1937년 제물포에서 태어난 김용구(77) 서울대 명예교수는 현역 교수 중 가장 연장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1년 5월 어느 날, 필자의 연구실로 책 한 권이 배달됐다. 김용구 교수가 펴낸 조선 말 외교사였는데 강단을 떠나기 전 뭔가 정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정리 작업이 한림대 한림과학원 원장으로 재직하는 오늘까지 계속될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총 30권으로 예정된 ‘근대한국외교문서’가 그의 진두지휘하에 착착 간행되고 있는 중이다. 한국사학계의 미개척분야인 ‘개념사’도 그가 시작했다. 평생 현안 문제로 언론에 나선 적이 없는 백발 원로가 최초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만큼 한국은 긴박한 상황에 부딪히고 있다.

인터뷰 후기

백발성성한 77세 노학자
현안 문제 인터뷰는 처음


육척 장신의 백발 노신사가 들어섰다. 사대관모를 썼다면 영락없이 홍문관 대제학 용모다. 필자는 예를 갖춰 김용구 교수를 맞았다. 4개 국어에 능통한 그는 19세기 조선에 개입한 제국 열강의 외교 사료를 뒤지고 재구성하는 데 평생을 쏟았다. 대중 앞에 나서본 적이 없다는 그는 대중독자들이 놀랄 만한 충격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중세국가다! 충성심이 심화되고, 공권력의 정당성이 조롱받는 사회가 근대국가인가를 현대국가의 식자연(識者然)하는 필자에게 되물었다.

 대내외적 난국에 박규수 같은 선각자가 없다는 것이 현대 한국의 불행이라는 데 동의했다. 19세기에 발생한 국가적 과제를 우리는 아직 못 풀고 있다는 것이 사료와의 평생 씨름에서 얻은 우국적 진단이었다. 1890년 일본 내각 총리 야마가타(山縣有朋)가 일본을 주권선, 조선을 이익선에 배치한 것, 1880년 이홍장이 국경개념을 공간에서 선으로 전환해 조선을 동3성에 배속한 발상이 여전히 세력을 떨치고 있는데 한국은 만국공법에 매달려 있다! 그런 곤혹스럽지만 정당한 입장을 국제사회에 알려야 한다고 그는 힘줘 말했다. 우리가 아직 19세기 과제도 못 풀었다면, 21세기를 어떻게 건너가야 하는가? 1930년대 세대 선비학자의 표정은 이 대목에서 상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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