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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전근대적인 개발 규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자

최영진
부동산 전문기자
세월호 참사가 터지기 전만 해도 박근혜 정부의 화두는 규제 혁파였다. 부처별로 규제 해소 할당량이 정해지는가 하면 대통령이 직접 규제 개혁 끝장토론까지 벌일 정도였 다. 사실 규제 혁파의 슬로건은 역대 정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써먹던 정책 어젠다 중 하나였다. 전봇대 규제라는 용어로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MB정부도 얼마나 많은 전봇대를 뽑아냈느냐 말이다. 그런데도 더 빼야 할 전봇대가 수없이 남아 있다니 당혹스러울 뿐이다.

 그렇게 없애려고 애를 써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이 규제를 지탱해 주는 배경은 무엇일까. 아마 공공의 이익과 질서 유지, 사회안전망 확보 등을 들 수 있겠고, 공직자 밥줄과의 연관성도 한 축이 되지 않겠나 싶다.

 문제는 세월호 침몰사건으로 이번 정권이 그토록 공을 들인 규제 철폐 정신이 퇴색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세월호 말고도 서울 지하철 추돌, 일산 터미널 화재 등 일련의 대형 사고가 줄줄이 터지면서 이들 사고의 대부분이 규제가 느슨해서 벌어진 것으로 비칠 여지가 많아서다.

 이런 가운데 최근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가 ‘좋은 규제? 나쁜 규제?’라는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벌였다. 그래 좋은 규제는 어떤 것이고, 나쁜 규제는 뭐란 말인가. 상투적인 대답은 자기한테 이득이 되면 좋은 규제고 그 반대이면 나쁜 것이다. 이날 토론장에서의 논조는 업계·공무원·학계 등의 입장에 따라 서로 갈렸다.

 “서울 등 도시에서 왜 건물 층수를 규제하나. 가이드 라인만 정해 주고 다른 것은 업체들이 알아서 하도록 놔두면 사업성이 높아져 침체된 부동산경기도 살아날 게 아닌가.”(부동산개발업체 대표)

 “산지 규제를 풀어놓으니 산사태 사고 등이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 불명확하게 돼있는 개발행위 허가 기준은 오히려 난개발을 양산한다.”(교수)

 “발코니 확장 등 사유 재산권 관련 규제를 한번 완화해 놓으면 화재와 같은 사고가 발생해도 다시 묶을 수 없다. 철저하게 공익적 차원에서 생각해보고 규제를 풀어야 한다.”(공무원)

 이날 토론의 중론은 도시 관련 규제를 완화할 때 철저하게 공적 개념 차원에서 진단해야 오류가 생기지 않는다는 쪽으로 모아졌다. 도시는 현 세대가 영유하는 공간이긴 하나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중요한 자산이기도 해 단순히 경기부양 등을 앞세워 맹목적으로 관련 규제를 풀 대상이 아니라는 의견이다.

 반면 건설·부동산 업계는 개발사업이 번성해야 고용이 창출되고, 이로 인해 돈이 풀려 침체된 내수시장도 살아나게 된다며 오히려 규제를 더 풀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경제가 엉망인데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다는 주장이다.

 모르긴 해도 일반인도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면 아무래도 주머니 사정이 좋아져 지금보다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겠느냐는 쪽에 점수를 더 줄 것 같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우리의 도시개발은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재개발 활성화를 위해 서울 한 달동네의 개발 용적률을 최고 수치까지 높여본 일도 있고, 전·월셋집 공급을 늘린다는 명목으로 주차장 규제를 완화한 도시형 생활주택 상품도 만들어냈다. 이뿐이 아니라 5층짜리 아파트를 30~40층 규모로 재건축을 허용했는가 하면 공공의 재산이나 진배없는 한강 조망권을 일부가 독차지할 수 있도록 한강변에 초고층 아파트도 짓게 해줬다.

 지금 그곳을 돌아보면 가관이다. 용적률을 잔뜩 높여준 지역은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정도로 건물 간 간격이 좁아 인기 없는 단지로 전락했고 성벽을 두른 듯한 한강변 초고층 아파트는 수려한 한강의 경관을 망가뜨렸다. 또 가뜩이나 난잡한 동네에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도시형 생활주택은 주차난을 악화시켜 주민들의 인심까지 사납게 만들었다.

 이런 사례는 공공성이 강한 도시개발에는 규제 완화만이 능사가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규제를 강화하자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자잘한 규제 완화에 신경 쓸 게 아니라 싱가포르나 홍콩 같은 아름다운 도시가 만들어질 수 있게 도시 관련 정책을 완전 뜯어고치는 쪽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더욱이 최경환 경제부총리 후보자가 경기부양을 위해 불합리한 부동산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어 이참에 도시개조 프로젝트를 시행해보면 어떨까 싶다.

 이를 위해 우선 서울 한강변에 남아있는 재건축 단지를 시범사업으로 추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게다. 주거지를 상업지로 바꿔 한강 쪽에 공공 성향이 강한 오피스·호텔 등을 짓고 주거단지는 그 뒤쪽에 배치하는 식으로 말이다. 도시 스카라인에 어울리는 멋진 건물이 한강변에 쭉 들어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우리 한강도 얼마든지 세계적인 명소로 개발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경기 상황에 따라 개발 규제를 풀었다 묶었다 하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미래 지향적인 도시개발을 위한 기본골격을 다시 짜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백년대계의 도시개조 작업을 추진할 좋은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최영진 부동산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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