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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꼭 '아기 걸음'으로 걸어야 할까

나현철
경제부문 차장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13개월째 제자리다. 역대 둘째로 긴 금리 동결이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금리를 올리기도, 내리기도 여의치 않다. 숫자로 나오는 지표가 나쁘지 않고 물가도 안정돼 있지만 탄탄하고 튼실하다는 느낌은 없다. 이라크 사태나 세월호 참사와 같은 돌발변수에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신흥국 위기와 가계부채라는 위협적인 국내외 리스크도 여전하다. 섣불리 움직이기보다는 지켜보는 게 당연해 보인다.

 시장에선 다른 시각이 있다. 13개월은 긴 기간이다. 경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숨가쁘게 돌아간다. 1년이 넘도록 거시경제 여건에 전혀 변화가 없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미래 경제 상황에 대한 중앙은행의 인식과 의지를 보다 분명히 확인했으면 하는 기대가 적지 않게 존재한다. 이러는 데엔 해석의 범주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총재의 말보다 숫자가 백번 낫다.

 둘 사이의 간격을 좁힐 수는 없을까. 아예 없을 것 같지는 않다. ‘베이비 스텝(baby step)’이라는 틀에서 벗어난다면 말이다.

 베이비 스텝은 1990년대 중반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기준금리를 최초로 공개하기 시작하면서 쓴 통화정책에서 비롯됐다.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단위로 조금씩 움직여 실물경제에 충격을 주지 않고 물가와 경기 조절을 하자는 것이다. 조심스레 조금씩 발을 내딛는 아기 걸음과 비슷하다고 해서 베이비 스텝이다. 이 방식은 물가와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미국 경제를 안정시킨 것으로 평가됐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됐고, 한국은행도 외환위기 이후 따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도 이게 맞는지는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베이비 스텝을 시작했던 1990년대 미국 금리는 3~8% 사이에서 움직였다. 대개는 5~6%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그 범위에선 0.25%포인트가 베이비 스텝으로서의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직전인 80년대만 해도 사정이 달랐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연 6~20%로 고공비행을 하고 있었다. 기준금리도 한번에 1~2%포인트씩 바뀌곤 했다. 80년에는 한 달 새 6%포인트 넘게 올린 적도 있다. 당시 시장금리는 두 자리였다. 이런 때 베이비 스텝은 쓸 수도 없고 효과도 없는 정책이었다.

 지금은 정반대다. 미국도 한국도 사상 유례없는 초저금리다. 미국은 제로금리, 한국은 2.5%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금리가 높아 보이지만 북한 같은 국가위험도(country risk)를 감안하면 사실상 바닥이라는 지적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0.25%포인트는 경제에 너무 크고 부담스러운 단위다. 아기 걸음이 아니라 거인의 발걸음이 될 수 있다.

 모든 제도는 시대의 산물이다. 환경이 바뀌면 대처도 달라야 한다. 크게 움직이기 어렵다면 보폭을 좁히는 건 어떨까. 0.25라는 숫자를 0.1이나 0.05로 쪼개는 식으로 말이다. 마침 우리는 4분의 1 단위로 구성된 야드파운드법이 아닌 미터법을 쓰는 나라다.

나현철 경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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