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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가만히 있으라"는 청와대 소송

권석천
논설위원
“법대로 하자”는 말에 토를 달기는 쉽지 않다. 법치주의 사회에서 법으로 시비를 가리는 것만큼 명쾌해 보이는 일은 없다. 하지만 2~3년씩 소송을 하려면 시간·돈·노력을 쏟아부어야 하고, 가슴은 멍 투성이가 된다. 힘의 차이가 분명한 상황에선 법정도 기울어진 운동장일 때가 많다. 정부나 공직자의 소송에 다른 잣대, 다른 기준이 필요한 건 그 때문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960년대 들어 공무원의 공무 수행과 관련된 보도에 대해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 기준을 확립했다. 거짓임을 알면서 보도했거나 사실 확인과정을 무분별하게 건너뛰었을 때만 명예훼손 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역시 미국은 다르다고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 법원의 판례는 몇 문장으로 요약된다.

 “국가기관의 업무 처리가 정당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는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원칙적으로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 “보도 내용이 공직자에 대해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이 아닌 한 쉽게 제한돼서는 안 된다.”

 문제는 이런 판례 흐름에 역행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월호 침몰 이후 청와대 비서실이 낸 명예훼손 소송은 4건에 이른다. ‘청와대 비서진과 박지만씨가 갈등을 빚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진도 현장 방문 때 생존 어린이를 데려와 장면을 연출한 것 아니냐’ ‘박 대통령이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위로한 할머니는 청와대 측이 섭외한 인물이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자신을 향해 “91년 오대양 사건 재수사 방해” 의혹을 제기한 심재륜 전 부산고검장과 그 발언을 보도한 일간지 기자를 검찰에 고소했다.

 김 비서실장과 청와대의 법률가들이 판례를 검토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렇다면 왜 소송전을 하고 있는 걸까. 한 판사 출신 변호사의 분석은 이렇다. “비판성 보도에 대해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것 아닐까요. 이른바 위축 효과(chilling effect)죠. 언론사들도 소송이 들어오는 게 싫을 테고….”

 보도 내용의 진위는 가려져야 한다. “‘쇼크 상태’였던 아이가 왜 박 대통령 현장 방문에?”란 제목의 기사를 보면 네티즌들의 의혹 제기와 “아이가 많이 안정이 됐다”는 친척 언급이 나란히 제시돼 있다. 보기에 따라선 악의적이란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다만 손해배상 소송까지 낼 문제인지는 의문이다. 사실이 아니라면 정정보도나 반론보도 청구로 바로잡으면 될 일 아닌가. 한 법학자는 국가기관의 명예훼손 소송에 대해 이렇게 지적한다.

 “국가의 명예란 국가가 스스로 그 명예를 주장하며 국가와 정부를 비판하는 국민을 처벌하거나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다고 하여 지켜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비록 악의적이고 상당성을 잃은 비판이라 할지라도 국민에 대한 설명과 설득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 국민 통합을 이루어나가는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다.”(김태선 중앙대 교수, 2011년 논문)

 우려되는 건 눈앞에 어른거리는 데자뷰(기시감)다. 2008년 광우병 파동 후 언론사와 네티즌에 대한 민·형사 소송이 이어졌다. 결과는 줄줄이 무죄였다. 한국 사회는 공론의 장(場)에서 진실을 확인하고 토론할 기회를 놓친 채 인권 후퇴 국가의 오명만 뒤집어쓰고 말았다.

 청와대 소송전은 그 무언가를 예고하는 전조(前兆) 증상일 수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소송전이 전개되는 무대 뒤편에서 ‘VIP(대통령) 충성’ 문건이 돌고 있었고, 곧이어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이 터졌다. 과잉방어의 심리는 이성을 무서운 속도로 마비시킨다. 대형 재난이 일어나기 전 반드시 징후가 나타난다는 하인리히 법칙은 세월호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시민들은 사실과 거짓을 분별할 능력이 있다. 그러니 국민의 판단력 걱정은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면 된다.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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