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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더 늦기전에 췌장암 걸린 아버지에게 잘 해드리고 싶다는 40세 워킹맘


Q 올해 마흔이 된 워킹맘입니다. 최근 친정 아버지가 췌장암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잘 지내시는 줄로만 알았는데 병을 숨기고 있던 겁니다. 미안하기도 하고 밉기도 해 혼자 한참 울었습니다. 사실 아버지가 워낙 무뚝뚝한 성격이라 길게 대화해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전화하면 “바쁜데 뭐하러 걸었느냐”며 무뚝뚝하게 받아 민망한 적도 있을 정도입니다. 어렸을 때는 섭섭하기도 했지만 아이 낳고 직장 생활 해보니 묵묵히 가족을 위해 돈 버느라 고생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습니다. 더 늦기 전에 효도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런데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니 황당합니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효도할 방법이 있을까요.

A 남녀의 사랑과 부모·자식 간 사랑은 다를까요. 이 질문에 어떤 답이 떠오르나요. 대부분 당연히 다르다고 생각할 텐데요. 뇌과학을 기반으로 한 신경생물학 연구를 보면 남녀의 사랑과 자식 사랑은 최소한 뇌 반응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성을 사랑하는 낭만적 사랑과 자식을 사랑하는 내리사랑 모두 활성화하는 뇌 영역이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지난번(江南通新 5월 28일자) 사랑을 하면 무모해진다는 얘기를 했죠. 부모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비합리적이고 자기 희생적일 때가 많습니다. 누가 봐도 뻔히 날려 먹을 사업을 하겠다며 손 벌리는 아들에게 속고 또 속으며 계속 돈을 주는 게 부모 마음입니다. 옳든 그르든 사랑은 이렇게 눈을 멀게 합니다.

 남녀의 사랑과 자식 사랑의 차이점은 뭘까요. 육체적 사랑과 관련한 영역은 남녀 간 사랑에서만 활성화합니다. 남녀 간 사랑에서만 쾌락의 호르몬인 도파민이 쏟아져 나온다는 겁니다. 반면 친밀도와 관련한 영역, 즉 친밀감을 만드는 옥시토신 호르몬은 부모의 자식 사랑에서 콸콸 나옵니다. 남녀의 사랑이 모든 걸 다 걸 정도로 불붙다가도 순식간에 꺼져 버리기 쉬운 반면 자식 사랑이 평생 지속되는 이유입니다. 남녀 간의 사랑에 있어서도 친밀감이 클수록 오래 유지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 사연처럼 속내를 숨기는 부모가 많습니다. 자녀가 걱정할까봐 염려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암 투병 중인 것도 몰랐던 자식은 졸지에 불효자가 돼버립니다.

 부모가 자녀를 걱정하는 건 친밀감(sense of closeness)에 기반한 깊은 공감입니다. 말 그대로 두 사람 사이의 정서적 거리입니다. 부모가 느끼는 자식과의 정서적 거리는 아마 제로(0)에 수렴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식의 고통이 곧 내 고통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내 아픔보다 자녀가 걱정할 일이 더 걱정된다는 거죠.

 그래서 부모의 자식 사랑은 희생적입니다. 그러나 역시 사랑입니다. 상대방의 관심과 보상을 바라지 않는 사랑은 없습니다. 부모의 자식 사랑이나 남녀 간 사랑 모두 뇌에서는 같은 보상 시스템을 원한다는 겁니다. 부모님이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도 이중성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네가 걱정하는 게 싫지만 네 사랑을 너무 받고 싶구나”라는 이중성 말입니다.

 효도. 이건 자식의 부모 사랑입니다. 또 자녀가 해야 할 당연한 도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효도의 심리적 유용성이라고 할까요. 도리를 넘어 나를 위해서도 효도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 마음은 참 이상해서 부모가 살아 있을 때는 약점이나 섭섭한 일이 주로 떠오릅니다. 그러나 막상 세상을 떠나게 되면 장점, 그리고 내게 해준 의미있는 사건이 주로 기억납니다. 평소의 부정적인 기억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생각도 잘 나지 않습니다.

 불효자라고 눈물 흘리는 자식을 보면 대부분 부모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모님 살아 생전 섭섭해하다가 돌아가신 순간 잘해준 기억만 나는 거죠. 그러다 보니 고맙단 말 한 번 제대로 못한 불효의 한이 가슴에 사무치게 됩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나를 위해서 효도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불효의 한은 시간이 흘러도 잘 지워지지 않고 슬픔과 죄책감을 느끼게 하니까요.

 자 그럼, 부모님은 어떤 효도를 좋아할지 한번 생각해 보죠.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3위가 손주의 재롱, 2위가 용돈, 그리고 1위가 안부전화나 방문이었습니다.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가 뭘까요.

 먼저 손주 재롱을 생각해 보죠. 누구나 첫 사랑에 관해 사무친 추억이 있을 겁니다. 가끔 그런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다시 한 번 하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하죠. 뇌에서의 사랑의 반응은 남녀 간이나 부모·자식 간에 큰 차이가 없다는 걸 감안할 때, 손주의 재롱은 첫사랑의 회상이나 새로운 사랑의 시작과 같은 것입니다. 자기 자식을 낳았을 때보다 손주에게 더 폭 빠지는 할머니·할아버지를 자주 봅니다. 나이 들수록, 다시 말해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감성이 순수해집니다, 사랑에 대한 욕구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더 늘어나는 겁니다. 그래서 내 분신의 분신인 손주를 향한 강력한 애정 반응이 일어납니다. 게다가 자식과 달리 직접적 책임을 질 필요가 없기에 잔소리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사랑만 해주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손주를 낳아 드리는 게 인삼·산삼보다 좋은 보양제입니다.

 그 다음 용돈에 대해 알아보죠. 부모님이 단지 돈이 좋아서 용돈받기를 기뻐할까요. 사실 자녀가 준 용돈을 모아 목돈을 만들어서 다시 자녀에게 주는 부모도 많습니다. 그런데 왜 용돈을 좋아하는 걸까요. 사람은 사랑이 구체적으로 보일 때 사랑을 더 느낍니다. 청혼할 때 남자가 꽃 하나 준비 안하고 말로만 결혼하자고 하면 여자는 실망합니다. 아무리 사랑의 고백이 진실해도 말입니다. 선물은 이런 심리적 의미가 있습니다. 사랑은 분명 보이지 않는 감성이지만 여기에 구체적인 게 담기면 사람은 사랑을 더 진하게 느낍니다.

 사랑하는 남녀, 눈이 빠지도록 서로 쳐다봅니다. 왜일까요, 사람은 눈과 눈이 마주칠 때 사랑이 가장 잘 전달된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보고 싶은 겁니다. 목소리에도 물론 사랑이 전달됩니다. 하지만 목소리보다 눈 맞춤이 훨씬 강한 사랑의 소통 방법입니다.

 무뚝뚝한 아버지 눈을 보며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게 쑥스럽겠죠. 하지만 겉표현이 무뚝뚝한 것과 마음 속 감성이 말라붙어 무뚝뚝한 건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자녀가 걱정할까 자기 암까지 숨기는 아버지, 마음 속엔 딸을 열렬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마음껏 표현해 드리세요.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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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