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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산 ‘으리’ 한잔 하실래요


#남성 화장품 이니스프리 포레스트포맨 퍼펙트 올인원 스킨 CF 촬영장. 광고 콘티에 ‘스킨을 거칠게 바른다’는 지문이 있다. 이걸 본 모델, 카메라가 돌기 시작하자마자 스킨을 손바닥에 덜더니 사정없이 자기 뺨을 후려친다. ‘쩍, 쩍’ 하고 울리는 손바닥과 뺨의 마찰음. 현장 스태프은 다들 깜짝 놀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들 마주봤다. 촬영이 두어 번 반복되자 카메라로 봐도 모델 볼이 벌겋게 달아오른 게 확연하게 보일 정도. 3번의 재촬영 끝에 드디어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 현장에 있던 사람 모두 기립박수를 쳤다.

#이번엔 비락식혜 CF 촬영장. 모델은 “이얍!”하는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쌀 가마니를 찢더니 박력있게 캔 식혜를 꺼냈다. 얼마나 힘을 줬는지 손등이 찢어져 피가 흘렀다. 스태프들이 놀라서 모델 주위로 몰려갔지만 그는 오히려 “괜찮다”며 계속 촬영을 이어갔다. 촬영이 끝난 뒤 “항아으리” “신토부으리” “아메으리카노” “나는 으리니까”로 이어지는 사운드 녹음 시간. 감독은 물론 스태프들도 다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왔고 그렇게 녹음은 끝났다. 모델이 돌아가고 스태프들이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집에 간 줄 알았던 모델이 15분 뒤 녹음실에 다시 나타났다. “곰곰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성에 차지 않는다”며 재녹음을 하겠다고 돌아온 거다. 그리고 역시나. 두 번째 녹음본이 훨씬 좋았고, 이 광고는 대박이 났다.

일러스트=송혜영
신뢰를 잃은 시대에 의리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배우 김보성(48)이 출연한 CF 촬영장 뒷얘기다. 이니스프리 광고를 본 사람 대부분은 김보성을 주로 기억하지만, 사실 이 광고의 원래 메인 모델은 탤런트 이민호다. 부드럽고 지적인 도시 남자 이민호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서브 모델로 김보성을 캐스팅한 거다. 김보성은 거칠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로 이민호의 세련된 분위기와 대비를 이루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광고 말미의 “의리의 선물인가?”라는 대사가 말해주듯 김보성은 특유의 의리 코드로 메인 모델보다 더 주목을 받았다.

이니스프리 강은주 남성화장품 홍보담당은 “처음엔 김보성의 마초적 이미지를 보여주려 했지 ‘의리’를 등장시킬 생각은 전혀 없었다”며 “현장에서 촬영감독과 김보성이 대화하는 중에 이 대사가 튀어나왔고 광고와 어울린다는 생각에 썼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이 대사 한마디로 이니스프리가 ‘의리의 화장품, 이니습으리’로 거듭났다”며 “회사에선 완전 홈런 친 프로젝트로 평가한다”고 했다.

진짜 장외홈런은 팔도식품의 비락식혜가 쳤다. 네티즌 사이에서 ‘맨정신으론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역작’이란 의미로 ‘약 X고(먹고) 만든 광고’라고 불릴 정도다. 허공을 가르며 박력있게 공중을 날아오르고, 항아리에서 진지하게 식혜를 퍼올리는 모습 등은 보는 이를 황당하게 만드는 소위 ‘병맛’ 코드다. 맥락 없이 형편없고 어이없다는 얘기다.

분명 병맛인데 김보성은 왜 욕을 먹는 대신 환호를 불러일으키는 걸까. 시종일관 진지한 김보성의 태도가 큰 역할을 한다. 김보성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고속촬영기법(슬로모션)으로 촬영한다기에 ‘오, 멋있는 건가’ 싶어 남자답게 식혜를 벌컥벌컥 들이켰다”고 말했다. 다 웃자고 만든 상황을, 본인만 ‘멋지다’고 착각해 최대한 멋있으려 노력했단 얘기다.

팔도식품 홍보팀 임민욱 과장은 “카페인 많은 커피나 에너지 음료에 젖어 있는 젊은이들에게 전통음료를 알리자는 취지로 광고 회의가 시작됐고, 영화 ‘수상한 그녀’를 모방하자는 방향으로 아이디어가 구체화됐다”고 말했다.

‘수상한 그녀’는 70대 할머니가 겉모습만 20대 여자로 바뀌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영화로, 전통음료가 겉보기엔 구식같지만 알고보면 매력있는 음료라는 걸 알리려고 여기서 아이디어를 차용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모델로는 이 영화 주인공 심은경이 유력했다. 김보성으로 바뀐 건 당시 인터넷 상에 퍼져있던 ‘으리으리 시리즈’가 광고팀 눈에 띄면서다. 으리으리 시리즈란 무슨 단어든 김보성이 부르짖은 의리와 결합해 ‘으리’로 마무리하는 인터넷 유머다.

이 두 편의 광고가 다가 아니다. 최근 김보성과 걸그룹 에이핑크가 같이 등장하는 인터넷 쇼핑몰 G9 광고는 사실 비락식혜 CF보다 먼저 촬영한 작품이다. 세월호 사건 직후인 4월 20일 촬영을 했는데 세월호 분위기 탓에 방송을 미루는 사이 비락식혜가 대박을 쳤다.

이 촬영 현장에서도 김보성은 숱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다. 이날 김보성은 칼 같이 약속을 지키는 평소와 달리 당초 약속된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왔다고 한다. 세월호 사건 때문에 속이 너무 상한 나머지 촬영 전날 몸살이 나서 몸을 움직이지도 못할 지경이 됐다는 거다.

이 광고를 제작한 알파빌리의 구교진 조감독은 “김보성은 몸이 안 좋은 와중에도 막내 스태프까지 다 챙기면서 촬영 현장 분위기를 좋게 만들었다”며 "우리 회사가 이니스프리 광고도 찍었는데 그 뒤로 의리를 지키겠다면서 일주일에 한 번꼴로 감독이랑 나한테 전화를 걸어온다”고 말했다. 본인이 운영하는 한남동 고깃집(의리의리한집)에서 한턱 쏘겠다고 계속 전화하는데 제작진이 바빠서 못갔다고.

뜬금없는 ‘의리’로 떴지만 사실 그와 함께 작업한 사람들은 김보성의 소탈함과 성실함을 성공 요소의 하나로 꼽는다. 스스로 마음에 들 때까지 시종일관 진지하게 노력하는 모습이 이제야 사람들에게 먹히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는 휴대폰과도 의리를 지키는지 심지어 휴대폰도 011로 시작하는 구형이다. 촬영 현장에서는 이 구식 스마트폰 초기모델을 스태프들한테 들이밀며 “같이 사진 찍자”고 먼저 다가간다. 그러니 같이 모델로 나선 걸그룹 에이핑크를 만났을 땐 오죽했을까. 삼촌팬마냥 입이 귀에 걸려서는 사람들한테 “에이핑크랑 사진 한장만 찍어달라”고 했단다.

광고 몇 편으로 대박을 터뜨리면서 김보성은 전성기를 맞았다. 1989년 하이틴 스타로 데뷔했지만 어느덧 생활고로 월세 낼 돈은 물론, 통장 잔고가 8000원밖에 없던 ‘한물 간 연예인’이 밀려오는 CF 제의를 정중히 거절해야 하는 핫한 스타가 된 거다.

갑작스럽게 신드롬급 인기를 얻으면 늘 ‘거품’이란 수식어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그런데 김보성은 그런 논란도 없다. 김보성의 고교 동창이기도 한 LH엔터테인먼트 대표인 이혁준 문화평론가는 “김보성의 진정성”에서 인기 지속의 비결을 찾았다. 그는 “김보성이 곧 의리라는 공식은 광고를 통해 입혀진 게 아니라 오히려 25년간 김보성이 줄기차게 외쳐온 김보성만의 정체성을 광고가 끌어다 쓴 것”이라며 “그가 외치는 의리의 진정성이 훼손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김보성의 의리는 미디어 상에서만 존재하는 만들어진 이미지가 아닌 김보성의 실체,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터지자 그는 은행에서 대출받아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1000만원을 기부했다. “능력이 이것밖에 안돼 원망스럽다”면서. 김보성이 주식과 지인의 빚 보증 등으로 생활고에 시달린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바라 대중이 받은 감동은 컸다.

그런 그가 지난달 21일에는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인 월드비전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월드비전 대외협력팀 박찬주 과장은 “김보성을 직접 만나면 TV 속 모습보다 훨씬 순수하다”면서 일례로 홍보대사 위촉식 날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위촉식이 월드비전 현지 매니저들 교육 날짜와 겹쳐 세계 18개국에서 활동하는 현지인 매니저가 한자리에 모였단다. 동남아와 아프리카에서 온 매니저들이 자기 나라 말로 ‘의리’를 적은 종이를 흔들며 “김보성” “의리”를 연호했더니, 김보성이 한참동안 소리내서 엉엉 울며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박 과장은 “JTBC ‘유자식 상팔자’에서 김보성 아들이 나와 ‘우리 아빠는 TV에 아프리카만 나오면 엉엉 운다’고 말하기에 ‘설마’ 하고 의심했는데 실제로 보니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진심에서 우러나와 홍보대사를 맡은 만큼 활동도 저돌적이다. 그는 위촉식 다음날부터 출연하는 방송마다 “최고의 의리는 나눔의리(나누으리)”라며 월드비전 알리기에 열심이다.

박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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