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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게 퍼주고 노후에 버림받는 '상속 빈곤층' 는다

서울 구로구에 사는 이모(74·여)씨가 1998년 숨진 남편에게서 받은 유일한 상속재산은 2층짜리 집 한 채였다. 3남매를 둔 이씨는 20대 초반에 미국으로 이민 가 고생하며 사는 장남 문모(54)씨가 눈에 밟혔다. 의류도매업을 하는 장남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돼 주려고 10여 년간 지하 골방에서 모자를 만들어 미국으로 보냈던 그였다. 다른 두 자녀를 설득해 집을 장남에게 줬다. 14년 뒤인 2012년 이씨는 뇌출혈로 쓰러졌다. 수술을 받았지만 신체 마비가 왔다. 6개월간 병원비만 3000만원이 들었다. 장남 문씨에게 연락했으나 “돈이 없다”는 야멸찬 답이 돌아왔다. 빈털터리였던 이씨는 장남을 상대로 부양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20단독은 지난해 말 “문씨는 과거 부양료로 이씨에게 3000만원을 지급하고 장래 부양료로 매달 20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씨는 ‘상속빈곤층 부모’로 분류된다. 배우자가 사망 시 남긴 전 재산을 자녀들에게 증여한 뒤 궁핍하게 산다는 의미다. 재산을 물려주고도 자녀로부터 버림받는 이른바 ‘신(新)고려장’의 피해자인 셈이다.

 본지가 전국 법원에서 2007~2013년 사이 선고된 부양료 청구사건 판결문 226건 중 부모·자식 간 소송 144건(원고 151명)을 분석했다. 그 결과 10건 중 3건이 상속빈곤층 부모가 제기한 것이었다. 전체의 31.4%가 증여나 상속을 통해 재산을 미리 자식들에게 나눠 줬다. 또 부모들의 평균 나이는 77.1세였으나 월 생활비는 34만여원에 불과했다. 노령연금 등으로 생계를 잇는 사람이 94.4%로 절대 다수였고 이 중 36.1%는 단 한 명의 자녀에게서도 지원을 받지 못했다.

  직계 혈족 간 부양의무를 규정한 민법 974조는 58년 민법 제정 당시부터 존재해 왔지만 사문화된 조항이었다. 혹여 못된 자식이 부양의무를 저버려도 ‘내가 잘못 가르친 탓’이라며 참아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화난 부모들이 법원을 찾기 시작했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2002년 68건이었던 부양료 소송은 지난해 250건으로 늘었다. 부모를 부양하는 것에 대한 견해를 묻는 통계청 설문조사 결과는 변화된 세태를 그대로 보여 준다. 2006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답변이 7.8%에서 2012년 13.9%로 배 가까이 늘어났다. “가족이 공동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답변은 2006년 63.4%로 과반을 넘었지만 2012년에는 33.2%로 줄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68) 소장은 “자식들에게 다 퍼주고 대책 없이 늙어 버린 부모세대가 ‘같이 못 살겠으면 돈이라도 대라’며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며 “슬픈 현실이지만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임채웅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자녀 교육이 노후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닌 이상 교육비나 결혼비용 등을 지원할 때 적당히 선을 그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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