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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그리고 2014년 … 월드컵은 희망을 부르는 주문

1954년 3월 7일 스위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이 열린 일본 도쿄 메이지 신궁 경기장의 그라운드는 진흙탕에 가까웠다. 그러나 한국 선수들은 진흙탕 그라운드에서 5골을 넣고 일본을 꺾었다. [사진 이재형 소장]


1954년 6월 18일(한국시간), 스위스 취리히 하르트룸 스타디움. 김용식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비장한 각오로 그라운드에 들어섰다. 주장 민병대와 홍덕영·박규정·박예승·강창기·최정민·우상권·성낙운·정남식·주영광·박일갑. 11명의 축구대표팀 선수들은 가슴에 선명한 태극기를 달고 당시 세계 최강 헝가리 대표팀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축구대표팀이 정부 수립 이후 처음 대한민국(KOREA) 국호를 달고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는 순간이었다.

전쟁 폐허 속 일본 꺾고 본선 출전
부산서 서울까지 카퍼레이드
"60년 전 대표팀 선배들 투혼처럼 침체된 분위기 바꿀 계기 되길"



 정확히 60년이 지난 2014년 6월 18일, 축구대표팀 후배들은 브라질에서 러시아와 월드컵 첫 경기를 치른다. 60년 새 한국 축구는 아홉 차례 월드컵 본선에 출전할 정도로 성장했다. 아시아에서 월드컵 본선 최다 출전 국가다. 그러나 월드컵을 맞이하는 국민의 마음은 무겁다. 세월호 참사로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차분하게 대표팀을 지켜보고 있다. 꼭 60년 전 첫 월드컵 본선 출전을 앞뒀을 당시 분위기와 비슷하다.



1954년 6월 9일 스위스 월드컵 대표팀이 출국에 앞서 서울 여의도 비행장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스위스 월드컵 예선 일본전을 앞두고 선수들이 필승을 다짐하며 자필 서명을 했다(위쪽). 스위스 월드컵 조직위원회에서 발간한 브로슈어. 16개 본선 출전국 국기 중 태극기는 축구공에 가려 빠져 있다.
 축구 관련 각종 자료와 물품을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이재형(53) 축구역사문화연구소장은 54년 스위스 월드컵 당시 대표팀의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들을 본지에 공개했다. 이 소장은 작고한 김용식 감독, 정남식·최정민 선생의 가족 등을 통해 관련 자료를 수집해 왔다. 54년 한국 사회는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3년간의 전쟁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가옥·건물 파괴 등 경제적 손실도 많았지만 가족과 이웃을 잃으며 입은 정신적인 상처가 더 컸다.



 그런 분위기 속에 축구대표팀은 54년 3월 처음 월드컵 예선에 나섰다. 당시 한국은 일본에서 두 차례 예선 경기를 통해 월드컵 본선 진출을 노렸다. 대표팀의 각오는 비장했다. 당시 이유형 감독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출국 허가를 받는 자리에서 “패하면 선수단 모두 현해탄에 몸을 던지겠다”고 했고, 선수들은 이 뜻에 동참하는 의미로 자필 서명을 했다. 도쿄 메이지 신궁 경기장에서 열린 경기에서 한국은 1차전 5-1 승리에 이어 일주일 뒤 2차전에서 2-2로 비기며 처음 월드컵 출전권을 따냈다. 온 국민은 식민지배를 했던 일본을 이기고 돌아온 대표팀 선수들을 크게 환영했다. 부산에 도착한 선수들은 대구-대전을 거쳐 서울까지 카퍼레이드를 하며 큰 환대를 받았다. 선수들이 지나가는 곳마다 “대한민국 만세” 함성이 쏟아졌다. 일본 아사히스포츠는 ‘한국 선수들은 전쟁의 혼란을 겪었음에도 전쟁 이전의 실력 이상을 보였다. 한국 선수들이 보여준 축구 열정에 일본 사람 모두가 감격했다’고 소개했다.



 54년 6월 9일 여의도 비행장에 집합한 선수들은 비행기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첫 월드컵 출전 과정은 험난했다. 대표팀을 지원할 축구협회 직원은 협회장까지 포함해 고작 5명이었다. 경제사정이 어려웠고, 사회적으로도 혼란스러워 대표팀에 대한 충분한 지원을 할 수 없었다.



이재형 소장
 스위스로 갈 때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일본 도쿄에 가면 유럽행 항공권을 구할 수 있을 거라며 무작정 떠났다. 그런데 항공권을 구하지 못해 도쿄에서 닷새나 발이 묶였다. 영국인 신혼부부에게 비행기 티켓을 양보 받는 등 우여곡절 끝에 방콕-콜카타-로마를 경유해 스위스 취리히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경기가 열리기 하루 전날이었다. 당시 스위스 언론은 “한국 대표팀은 축구하러 온 게 아니라 관광하러 왔다”고 비아냥댔다.



 약소국의 설움도 있었다. 스위스 월드컵 공식 브로슈어 표지에는 본선 진출국 16개국의 국기와 축구공이 그려져 있다. 여기에 태극기만 유일하게 빠져 있었다. 이 소장은 “축구공을 부각시키기 위해 표지 가운데에 편집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태극기를 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표팀은 1차전 헝가리에 0-9로 대패했다. 선발로 나선 선수 중 4명은 경기 도중 발에 쥐가 나서 제대로 뛰지도 못했다. 사흘 뒤 제네바에서 열린 2차전에서는 터키에 0-7로 패했다. 골키퍼 홍덕영은 상대국 선수들의 소나기 슛을 몸을 날려 막아내다 가슴에 피멍이 들었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당시 대표팀은 월드컵을 통해 ‘코리아’를 만방에 알렸다.



 이 소장은 “휴전한 지 1년도 안 된 상황에서 당시 선수들이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일본을 꺾고 월드컵에 출전한 것만으로도 축구가 국민에게 큰 힘을 줬다”며 “나라 분위기가 침체돼 있는 현재의 모습도 60년 전과 비슷하다. 홍명보팀이 선배들처럼 투혼을 발휘해 국민에게 힘을 불어넣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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