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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땐 없던 절 동쪽 연못, 고려 때 만든 까닭

위에서 본 실상사 연못. 타원형 연못의 왼쪽 위 직선 부분이 입수로, 오른쪽이 물이 빠져나가는 출수구다. [사진 불교문화재연구소]


조계종 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정안 스님)가 11일 발굴 결과를 발표한 남원 실상사의 12세기 고려시대 연못인 ‘원지(苑池)’는 형태가 특이하다. 높이에 차이를 둬서 3단 형식으로 조성했다.

스님들을 위한 정원 있었던 듯
경전 중심에서 참선수행으로
불교 역사 흐름 변화 보여줘



가로·세로 16X8m 크기의 타원형 연못 시설 바닥에는 40㎝∼1m 크기의 강돌이 촘촘하게 깔려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질 정도다. 목포대 최성락(고고학과) 교수는 “상당히 예술적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찰 연못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고 평했다.



 이 연못의 조형적 특색과 함께 용도에 대한 흥미로운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연못을 통해 한국 불교사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불교 경전의 가르침을 중시하는 신라시대의 교종(敎宗) 전통이 고려시대에는 수행자의 깨달음을 중시하는 선종(禪宗) 중심으로 점차 변해가는데, 그런 흐름을 실상사 연못이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못은 강돌을 3단으로 쌓아 만들었다. 54㎝ 깊이에 19t의 물을 담았다. [사진 불교문화재연구소]
 조계종 중앙승가대 최태선(불교학부) 교수는 “『법화경』같은 불교 경전에서 연못은 연꽃이 피어 있는 극락정토의 공간, 즉 구품연지(九品蓮池)로 그려진다. 구품연지를 실재 사찰에 조성할 경우 위치는 대개 사찰의 남쪽, 당간지주(幢竿支柱)나 일주문(一柱門) 부근이다. 그런데 실상사에서 발견된 이 연못은 사찰의 동쪽 담장 바깥에 위치하고 있다”며 “전통적으로 사찰의 동·서·북쪽은 대개 승려들을 위한 공간이다. 때문에 실상사 연못은 교학적 세계관의 표현이 아니라 승려 수행공간의 일부였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불교 경전을 기반으로 설계했던 기존의 사찰 건축 방식에서 벗어나 스님들의 수행공간을 위해 별도의 정원을 만든다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는 얘기다.



 동국대 고영섭(불교학과) 교수는 “실상사 연못이 조성된 12세기 초반 불교계는 왕실·중앙귀족 중심의 교종에 맞서 지방호족·방계왕족과 관련 있는 선종이 실상사의 남원처럼 각 지방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 상황을 반영해 승려를 위한 정원 시설이 사찰에 등장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연못이 정확하게 어떤 용도였는지는 아직 단정짓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불교문화재연구소 김진덕 팀장은 “엄밀히 따지면 연못이라고 부르기 애매하다”고 했다. 연꽃이 자랄 수 있는 진흙 바닥이 아니어서다. 연못 바닥은 황색점토·숯 등을 이용해 방수 처리를 했다. 연못에 연결된 42m 길이의 입수로, 출수구(出水口) 등을 통해 복원된 청계천처럼 맑은 물이 고였다가 배출되는 시설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정원에 있는 못, 원지라고 부르는 게 적절하다는 얘기다.



 연못 위쪽 부지에서는 건물터 2곳도 발견됐다. 그중 한 곳에는 누각이 서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못을 관찰하기 적당한 위치다. 김진덕 팀장은 “고려 시대 실상사의 수행자들은 연못의 맑은 물, 그에 비친 달빛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참선수행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공개된 연못의 시설은 12세기 조성 당시 정원의 일부인 것으로 추정된다. 연못의 배수로 동쪽은 아직 미발굴 상태다. 누각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의 전모도 역시 연못 동쪽을 추가 발굴해야 보다 정확한 모습을 알 수 있다. 문화재청과 불교문화재연구소는 16일 현장에서 회의를 열어 연못 시설의 보존 방안, 추가 발굴 여부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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