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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3명과 인연 … 안기부 2차장 때 황장엽 망명 주관

국정원장 후보자 이병기 주일대사(가운데)가 지난해 5월 외교부에서 열린 재외공관장 간담회에서 당시 김영선 주인도네시아 대사(오른쪽)와 대화하고 있다. 왼쪽은 임기모 주자메이카 대사대리. [중앙포토]
‘최적의 정치감각을 갖춘 외교관, 그만큼의 외교적 기술을 갖춘 정치인’.



이병기 후보자는 누구
정치감각 갖춘 외교관 평가
2004년 탄핵사태 때 박근혜 지원
대북 정보망 재건, 사기 진작 과제

10일 국정원장 후보자로 내정된 이병기 주일대사에 대해 복수의 외교부 관계자가 내놓은 평가다. 청와대가 간첩 사건 증거 조작 등으로 상처를 입은 국정원의 수장으로 이 후보자가 적격이라고 판단한 이유이기도 하다. 전임 원세훈 원장이 뇌물수수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남재준 원장이 불명예 퇴진한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비(非)군인 출신인 데다 이미 안기부 차장을 역임해 조직 생리를 잘 아는 이 후보자가 적임이라고 본 것이다.



 그는 역대 대통령 세 명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이 후보자가 정치권과 연을 맺은 것은 1981년이었다. 당시 보안사령관을 예편하고 정무장관이 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노신영 외무장관에게 비서 추천을 부탁하자 노 장관은 케냐 주재 대사관에서 1등 서기관으로 근무하고 있던 이 후보자를 천거했다.



 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올림픽조직위원장, 민정당 대표위원 등을 지내는 동안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며 ‘그림자 비서’라는 평가를 받았다. 노태우 정부 3년차인 90년엔 차관급인 청와대 의전수석 자리에 올랐다. 마음만 먹으면 친정인 외무부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동기와 선배 외교관들을 생각해 외무부 고위직은 고사했다고 한다. 민정·민주·공화당이 합당해 만들어진 민자당에선 김영삼 전 대통령과 통했다.



 92년 대선 후보 결정 때 청와대 내 기류를 김 전 대통령 쪽으로 돌리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에선 안기부 2차장을 맡았다. 그가 2차장일 때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2010년 사망) 망명이라는 특대형 사건이 터졌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중국 장쩌민(江澤民) 주석에게 친서를 보내서야 겨우 황 비서를 필리핀으로 빼돌릴 수 있었을 정도로 사태는 급박하게 돌아갔다. 황 비서가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67일 동안 이 후보자는 안기부 주무 차장으로서 실무를 총괄했다. 황 비서가 97년 4월 20일 성남 서울공항에 내렸을 때 처음 맞이한 한국 인사도 그였다.



 2차장 임기를 마지막으로 공직생활을 끝낸 이 후보자는 일본 게이오대에서 객원교수로 있다가 2002년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정치특보로 정계에 들어와 핵심 측근으로 활동했다.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사태 이후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에 구원투수로 등장한 박근혜 대통령의 우군으로 자리 잡았다. 2004년부터 ‘친박’으로 자리매김한 그는 2007년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쟁을 벌일 때 박 대통령 캠프에서 선거대책부위원장을 맡아 외교·안보 분야 및 정무에 관해 조언했다. 지난해 대선 때는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 고문을 맡아 박 대통령 당선에 일조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해 5월엔 주일대사로 부임해 악화일로인 한·일 갈등의 최전선에 있었다.



 이 후보자는 국정원의 정치적 독립성 확보라는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다. 국정원 1차장을 지낸 전옥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는 “국정원이 정치적 구설에 오르고 오해를 사면서 정보활동이나 대북 정보망이 많이 무너진 상황”이라며 “이 후보자는 단기간 내에 조직을 통제해 직원들의 사기도 높이고 정보맨들이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국정원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지혜·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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