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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택 기자의 '불효일기' <28화> "아버지 위독하시니?" 씁쓸한 인간관계

"내가 먼저 죽을테니, 너는 오래 살아라."

"아니다. 네가 관리를 잘 하고 있으니, 내 몫까지 살아다오."

"넌 요즘 밥은 잘 먹고 다니니."

"어. 마누라가 밥 잘 챙겨준다. 된장국 먹었다."

"나도 뭐 잘 먹고 다닌다. 조만간 요 근처에서 국밥 한 그릇 하자."



예상했겠지만 두 암환자의 대화록이다. 아버지가 고교 시절 동창분과 전화통화를 하는 내용의 일부다. 아버지의 친구분은 폐암, 아버지는 식도암이다. 상태로 보면 아버지가 더 안 좋다. 아버지는 식도암이 폐, 늑골, 위 등으로 전이됐기 때문이다. 두 암환자는 동병상련으로 서로 의지를 하고 있다. 서로 병 치료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 받고, 또 일상에 대해 이야기 한다. 대화의 '핫 아이템'인 식사 메뉴에서 시작해, 요새 관심사나 병원 통원 현황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이 보통이다.



얼마 전 결혼식에서도 아버지는 친구분 중 함께 암을 투병하고 있는 분과 바로 옆에 앉아 식사를 했다. 서로 항암치료 스케줄을 묻고, 몸이 어떤지를 물었다. 물론 결론은 "나는 곧 죽을테니, 네가 내 몫까지 오래 살아다오"라는 당부로 끝났다. 아버지의 친구분은 본인의 몸이 편치 않으셨지만, 줄곧 내게 "네 아버지 잘 모셔다 드려라"는 말을 했다.



요즘 아버지가 연락하는 지인 중 상당수는 투병 이전에는 연락하지 않았던 분들이 많다. 뒤늦게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연락오는 옛 지인분들이 많고, 아예 새롭게 지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뭐 그래봤자 10명 남짓하겠지만.



"아버지 위독하시니?"라는 물음에



아버지의 표현을 빌리자면, 새롭게 친구 관계가 형성된다고 한다. 물론 대부분 떨어져 나가는 것이 현실이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힘 있고, 건강했을 때에는 다들 친하게 지냈어. 사실 사업하면서 누구한테 아쉬운 소리를 하기보다는 주로 다른 사람을 챙겨주는 일들이 많았지. 데리고 있었던 직원들 중에서도 경조사 나거나 하면 내가 안 챙겨준 사람이 어디 있었겠어. 장례식이라도 있으면 학원을 일찍 마치고 모든 직원을 데리고 가서 함께 슬퍼하는 것이 예사였다고.



근데 내가 아프니깐 다 부질없어. 아무도 내게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아. 뭐 다들 먹고 살기 힘들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 이해는 가. 하지만 옛날 생각을 아무도 해 주지 않는구나. 아프고 힘이 빠진게 이럴 때 실감이 난다."



암 투병 직후 많은 환자들은 인간관계의 부질없음을 체감하게 된다. 정승집 강아지가 죽으면 문상객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작 정승이 죽으면 썰렁하다는 옛말을 다들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한 번은 어떤 아버지 지인분께서 내게 이렇게 전화를 걸어왔었다.



지인분: 아버지 위독하시니?

나: 아니오. 많이 아프시지만, 겉으로는 멀쩡합니다. 거동도 하시고요. 전화 한 번 해보실래요?

지인분: 아니다. 일단, 알았다. 또 연락하자.



내 아버지의 존재가 지인분께는 정말 관혼상제라는 단어로만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난다.



고마운 분들도 많다



하지만 아버지에게는 몇 분 안 되지만 잘 챙겨주는 새로운 친구들도 생겼다. 박사장이라는 분이 있다. 암 투병 초기부터 고모님을 통해 알게 된 분인데, 아버지를 그리도 잘 챙겨준다고 한다. 물론 아버지가 해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고맙다는 말뿐이다. 그 분이 최근 사고로 입원을 하자(지금은 퇴원했다), 거동이 쉽지 않은 아버지가 버스를 타고 가서 병문안을 할 정도다. 아버지 말로는 "움직일 수 있는데, 안 가보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학창시절 친구들 중 몇 분은 아버지와 모바일로 사진도 주고 받으면서 우애를 다진다. 주로 서로 건강이 어떤지, 자식들은 결혼을 했는지 같은 안부를 주고 받는다. 공공기관에서 근무를 하면서 자녀들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친구분,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분 등 친구 몇 분이 아버지를 꾸준히 챙겨주셔서 감사하다. 친구분들은 본인들께서도 나이가 꽤 있으신데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위해 방문을 하고 또 같이 식사를 하신다.



아버지는 "요새는 몸이 더 아픈데, 친구들이 자꾸 온다고 하면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런 친구들이 있어서 행복하다는 감정이 말에 묻어난다. 친구들이 전화를 주면 아무리 바쁘더라도 꼭 받는다. 그 중에서 가장 아버지를 챙겨주는 분은 매일 전화통화를 하는 '준수 삼촌'이다. 아들 된 입장에서 정말 황송하다는 말 외에는 드릴 말씀이 없을 정도다.



자주 연락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호수 삼촌'으로 부르는 동양란 도매를 하는 사장님 한 분도 아버지를 꼭 챙겨줬다. 돌아가신 고모님의 지인으로 내게도 많은 힘이 되어 주시는 분이다.



"자존심 때문에 연락 못해"라는 어머니



어머니의 경우에는 아버지 사업이 망하면서 인간관계의 대부분을 정리했다고 한다. 물론 일을 하면서 아버지를 부양해야 해 사람들과 교류할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본래 자존심이 세고, 열심히 살았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왔던 어머니에게, 그동안 일궈놓았던 모든 것이 무너졌고 남편이 환자가 됐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지인들과 거의 연락을 하지 않는다. 일하는 것 외에 어디 외부에 가는 일도 별로 없다. 가끔 사우나에 가 온탕에서 몸을 쉬고 오는 것이 전부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를 챙긴다. 최근에는 사우나에서 알게 된 할머니에게 국산 고사리를 샀는데, 그게 맛있어서 다음에도 사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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