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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피아는 진정한 의리 아니다"

현충일에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참배를 마친 김보성이 태극기 앞에 섰다. 그는 “힘으로 군림하려는 것을 선천적으로 못 참아서 정말 많이 싸우고 다녔다”며 “어렸을 적엔 거칠고 주먹이 센 게 진짜 남자라 생각했었다. 요즘엔 이타심이 강한 사람이 진짜 남자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현충일이니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만나자고 했다. “호국영령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영화배우 김보성(48·본명 허석)은 인터뷰 장소 고르는 일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6일 오후 현충원을 찾은 참배객들은 방금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그를 둘러싸고 ‘의리’를 외치며 좀체 보내주질 않았다. 검은 양장에 넥타이까지 맨 그는 땡볕 아래서 진땀을 쏟았지만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함께 참배를 마친 뒤 근처 방배동 카페골목으로 옮겨 한숨을 돌렸다.



어릴 때부터 정의의 사도로 행동
13대 1로 싸우다 한쪽 눈 다쳐
닭이 가장 무서워 치킨도 안 먹어

 - 의리를 외치며 쌀가마니를 후려치는 음료 CF가 장안의 화제다.



 “그 광고가 나오고 조회 수가 100만을 넘는데, ‘아 정말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멋있는 광고인 줄 알고 심각하게 찍었다. 나중에 보니 코믹으로 나오더라고. 어쩐지 초고속 카메라로 찍더라니. 이후 지금까지 수십 개 광고가 들어왔는데 의리라는 단어에 누가 되면 안 되니 조심스럽게 선택하려 한다.”



 화제의 광고를 찍을 땐 지금처럼 ‘확 뜨지’ 않아 계약금이 수천만 원대로 알려져 있다.



 - 너무 진지한 모습에 오히려 웃음이 난다.



 “허허허. 웃기려고 한 게 아닌데 웃으시는 분들이 많더라. 태생이 그런 걸 어떡하나. 허세라고들 보시는데, 고교 시절 13대 1로 싸워서 오른눈을 다친 것도 저는 약자를 보호한답시고 싸웠던 거다(현재 그는 시력장애 6급이다). 그걸 일반인들은 ‘정말 그럴 수 있나’하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나는 진심인데.”



 그에겐 만화 같은 일화가 따라 다닌다. TV 프로그램 녹화 중 쌍절곤을 돌리다 눈가가 찢어졌을 때 ‘반성의 의미로’ 마취 없이 꿰맸다는 얘기를 여러 인터뷰에서 한 적이 있어 사실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했다. 또 폭음 후 급성 저혈당이 오자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동영상을 찍으며 “우리나라가 의리공화국이 됐으면 좋겠다”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주식투자 실패로 거의 전재산을 잃었다는 그는 최근 세월호 사고 피해자를 위해 은행에서 1000만 원을 대출받아 기부하기도 했다.



 - 인생을 마치 연극처럼 사는 것 같다.



 “그런 표현은 마음에 든다. 내가 쓴 시 중에 그런 어구가 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살다가 가끔은 스크린에서 나와….’ 사실 나는 누가 ‘잘한다, 잘한다’ 하면 흥이 나 오버 하는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긴 하다. 그렇다고 ‘의리’도 캐릭터를 설정해 밀어붙이는 건 절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약자를 괴롭히면 내가 다 해결했고, 그런 게 수천 번이다.”



 - 의리가 악용될 수도 있지 않나.



 “그래서 나는 공익을 위한 정의로움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게 없으니까 ‘관피아’(관료 마피아)란 것도 생기고…. 지역주의, 학연 등은 진정한 의리가 아니다. 의리에 앞선 건 정의니까.”



 의리를 지키려다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2012년 그는 노조 탄압으로 수사를 받은 한 용역업체에 이름을 빌려준 일로 구설에 올랐다.



 - 어떻게 그런 일에 연루됐나.



 “도운 게 아니다. 2009년 제 매니저가 ‘지인이 경호회사를 하는데 얼굴 좀 올리면 안되냐’고 하더라. 그래서 ‘알았다’고 했다. 난 경호업체라고 알고 있었다. 약자를 돕는 사람들이니 정의로워 보였다. 계약서도 없고 돈을 받은 사실도 없다. 그 뒤 한 달쯤 지나보니 홈페이지에 내가 명예회장으로 돼 있더라. 용역을 한단 사실도 그때 알았다. 2012년 경찰 조사에서 업체 측도 모두 인정한 사실이다. 그래서 당시 바로 내렸는데 3년이 지나 사달이 났다.”



 - 혹시 무서워하는 게 있나.



 “닭이 징그럽다. 치킨도 안 먹는다. 6살 때 어머니가 점쟁이를 데려왔는데, 닭을 이리저리 던지고 휙휙 돌리자 푸드덕대는 게 너무 징그러운 거야. 그때 트라우마가 생겼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의리 열풍은 내가 잘해서 된 게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의리가 김보성을 안 만났으면 이다지 바람을 일으키긴 힘들었겠단 생각이 들었다. 약삭빠른 세태와 그의 우직함이 대비돼 보였다.



글=이정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보성=본명 허석. 1989년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로 데뷔했다. 90년대 영화 ‘투캅스’ 시리즈로 전성기를 열었다. 연기 변신을 위해 의사 역에 도전한 2003년 영화 ‘최후의 만찬’이 흥행에 실패하며 연기 인생에 위기가 닥쳤다. 2014년 ‘의리 열풍’의 주인공으로 다시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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