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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김흥수 화백 95세로 별세

‘한국의 피카소’ 김흥수 화백(왼쪽)이 9일 세상을 떴다. 먼저 간 아내 장수현씨 곁으로 갔다. 사진은 2003년 평창동 김흥수 미술관에서의 두 사람. [중앙포토]


원로 김흥수 화백이 9일 오전 3시쯤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95세.

추상·구상 아우른 하모니즘 화풍 큰별 지다
턱수염에 중절모‘미술계 멋쟁이’
먼저 떠난 43세 연하 아내 곁으로



김 화백은 2년 전 아내 장수현 화백(김흥수 미술관장)과 사별한 뒤 장 화백의 동생 가족들과 함께 생활해 왔다. 유족들은 “갑작스러웠지만 편안하게 가셨다”고 전했다.



 함경남도 함흥 출신의 김 화백은 1944년 도쿄미술학교(지금의 국립도쿄예술대학)를 졸업하고 해방 후 52년 서울예술고등학교 미술과장 및 서울대 미술대학 강사로 일했다. 55년 프랑스로 건너가 7년간 파리에서 수학했다. 77년엔 추상과 구상이 조화를 이루는 하모니즘 미술을 선언, 국내 화단에 새바람을 불러왔다. 그는 여성의 누드와 기하학적 도형이 어우러진 추상화, 즉 이질적인 요소들을 조화시킨 독특한 조형주의 화풍을 창시하고 이를 하모니즘이라 명명했다. 파리 뤽상부르미술관(1990), 러시아 푸슈킨 미술관, 에르미타주 미술관(1993)에서 대규모 전시를 열었다. 2006년엔 제주도에 작품 20여 점을 기증했고, 2010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됐다.



 트레이드 마크는 하얀 턱수염에 깃털 달린 중절모. ‘미술계 멋쟁이’였던 고인은 세대를 초월한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덕성여대 미대에서 사제지간으로 만난 43세 연하의 아내 장수현 관장과 1992년 결혼식을 치렀다. 당시 30세 신부를 맞이한 73세 노화가는 이미 두 번의 결혼과 이혼 이력이 있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주례를 맡아 “만년청년과 절세가인의 결합”이라고 덕담하기도 했다. 장 관장은 2002년 평창동에 김흥수 미술관을 개관하고 함께 ‘꿈나무 영재 미술교실’을 운영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김 화백 건강이 악화되자 휠체어를 끌어주며 곁을 지켰다.



 김 화백은 백내장 수술과 척추수술을 여러 차례 하고도 미수(米壽·88세)에 ‘춘화 드로잉’을 선보이는 저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경제적 사정으로 김흥수 미술관을 처분하는 등 쓸쓸한 말로를 보냈다. 지난해 10월 ‘고(故) 장수현, 김흥수 예술의 영원한 동반자’전을 열어 부인의 1주기를 추모한 그는 “생전에 우리 장수현 관장이 나한테는 작품을 통 안 보여줘서 이번에 처음 봤는데 걸어놓고 보니 아까운 사람이 너무 일찍 떠났구나 싶다”며 회한을 드러냈다. 지난 1월 관훈동에서 열린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 참석한 것이 세간에 보인 김 화백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유족으로는 아들 용환·용희·용진씨, 딸 용자씨가 있다. 영화 ‘풍산개’를 만든 전재홍 감독이 고인의 외손자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13일 오전. 02-2072-2011.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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