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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교육에 진보-보수 구분이 어디 있나

김기현
서울대 교수·철학
가난으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고된 노력은 수치상의 성과를 거둬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착시 현상을 만들었다. 그 단맛에 취해 무한경쟁과 그로 인한 이기적 인간들로 이뤄진 환경은 어쩔 수 없는 부작용쯤으로 여기며 의식의 저변으로 밀어놓았다. 조금 두터워진 지갑을 만지며 애써 부정적 사회현상들을 외면할 즈음에 터진 세월호 참사는 우리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며 우리 사회의 병폐가 넓고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줬다.



 어린 학생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젊은이들을 무고한 피해자로 만든 가해자는 우리 사회 전체임이 분명해졌다. 정부는 사고대처에 무능했다고 비판받고, 공조직과 사조직의 야합이 이른바 관피아의 이름으로 비난받고, 탐욕에 눈먼 사기업의 운영 행태가 도마에 오르고, 사고 현장의 직원들의 윤리가 냉소의 대상이 되고 있다. 조직과 제도상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를 이번 기회에 뼈아프게 성찰하고 고쳐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들의 밑바탕에 공동체 의식의 부재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놓여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개인의 이익과 영달을 추구하는 탐욕적 인간상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는 그만두더라도 의무와 원칙을 준수하는 것과 같은 최소한의 공동체적 가치도 자리를 잡을 수 없다.



 힘든 날들을 보내다 일찍 삶을 마감해야 했던 아이들의 모습과 그런 희생을 유발한 우리 사회의 못난 모습 사이에 기묘한 데자뷰가 나타난다. 공동체 의식이 결여된 적자생존 교육의 세례를 받고 성장한 기성세대가 부조리한 사회를 만들어 결국 그 질곡에서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을 희생으로까지 몰아간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깊이 읽어내려 갈 때 결국 교육과 맞닿는 이유다. 암기식·주입식 교육 너머 인성 교육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간간이 들려오는 소리가 제도와 관행의 개선을 외치는 큰 소리에 가려져서는 안 되는 이유다.



 초·중등 교육의 수장인 교육감 선거는 이런 시대적 상황과 관련돼 있기에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앞으로 4년의 지방행정에 영향을 미치는 선거가 아니고 우리 미래세대의 자질에 영향을 미칠 선거였기에 더 그렇다. 17개 교육감 자리 중 13석이 소위 진보로 분류되는 인사들의 차지가 되었다. 이 결과를 놓고 이런저런 정치적 해석과 대응이 제시되고 있다. 정치논객들의 해석이 구차하게 들리는 이유는 선거 결과의 의미가 너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에 기반한 무한경쟁 속에서 시들어가는 젊은 영혼들을 바라보는 딱한 마음, 이들 뒷바라지에 자신의 삶을 상실해가는 어머니들의 분노, 교육 현실의 지지부진한 변화에 대한 답답함이 교육감 선거 결과로 분출된 것이다.



 타협을 모르는 우리 사회의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교육계로 침투해 아이들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몇몇 교육감이 당선 후에 말했듯이 교육에는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성장하는 세대는 개성이 강조되는 다원화된 세계에 살고 있다. 특정한 이념을 가르친다고 심어지지도 않으며, 인성을 가르치는 교과목을 설치한다고 해서 공동체 의식이 함양되지도 않는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건강한 토론과 협력의 교육환경이다. 토론과 협력학습은 자신의 가치를 만들고 수정하며 보다 나은 의견에 승복하고 다른 의견 사이에서 합의에 도달하는 훈련을 가능하게 한다. 자신의 목소리가 교육환경에서 살아 숨 쉬는 것을 확인할 때 아이들은 공교육을 신뢰하게 될 것이며 공동체 의식이 자연스럽게 내면화되고 건강한 진보와 건강한 보수가 자라나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게 될 것이다.



 토론과 협력학습의 필요성은 보수와 진보를 넘어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의 꿈과 끼를 살리는 교육이 지향하는 교육에도 담겨 있고 진보교육감들의 혁신학교와 관련된 공약에도 나타난다. 새 시대가 요구하는 교육 방향이 여야를 불문하고 선명함에도 불구하고 넘어서야 할 장애물이 여럿 있다. 수월성에 대한 획일적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 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실수 없이 기계적 계산을 해내는 것이 우수하다는 전통적 인재상은 오늘의 다원화된 시대에는 이미 시효가 만료됐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교과목의 홍수에서 숨통을 틔워주어야 하며 기존의 교사 양성체계를 새로운 교육 이념에 부합하도록 재정비해야 한다. 토론과 협력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환경을 만들려면 그에 필요한 교육 재정도 돌아봐야 한다. 이 모든 일들은 여야의 협력을 요구한다. 이념적 대립으로 시대가 요청하는 보편적 지표가 흐려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비록 기성세대가 공동체적 가치를 모범적 실천을 통해 가르치지는 못했으나 그들 스스로 미래 가치를 창출해나갈 교육환경은 만들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김기현 서울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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