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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핀란드화'라는 이름의 유령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중국의 부상에 대한 우려가 한반도를 뒤덮고 있다. 우선 북한이 중국 경제에 예속되고, 중장기적으로는 한국마저 중국의 속국으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두려움이 그것이다. 작가 복거일은 “중국의 그림자가 커질수록 소련의 속국으로 전락해야 했던 예전 핀란드의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른바 ‘한반도의 핀란드화(Finlandization)’론이다. 최근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흡수, 합병하는 일련의 상황은 이러한 우려에 더욱 힘을 싣는다.

 ‘핀란드화’란 무엇인가. 20세기 들어 러시아와 두 차례 전쟁을 치른 핀란드는 1948년 소련과 우호협력원조 조약을 체결했다. 소련을 위협하는 어느 국가에도 자국의 영토를 제공하지 않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도 가입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반대급부로 소련은 핀란드의 정치적 독립과 자율성을 보장했다. 이 때문에 ‘핀란드화’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혼재해 있다. 하나는 약소국이 인접한 강대국에 예속되어 묵종적 자세를 취하는 일, 다른 하나는 강대국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약소국이 생존을 담보하기 위해 택하는 중립노선이다.

 얼마 전 필자는 핀란드를 방문해 헬싱키 대학과 핀란드 국제관계연구소 두 곳에서 강연할 기회를 가졌다. 필자의 강연 주제가 ‘중국의 부상과 한반도의 미래’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한반도의 핀란드화’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쏟아졌다. 놀랍게도 이 용어에 대한 현지인들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핀란드 학술원 의장을 지낸 원로학자 라이모 베이리넨 교수는 “핀란드화라는 개념은 70년대 초 서독 보수 정치인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와 일부 언론인들이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비판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일반화된 것”이라고 지적하며 “핀란드 국민의 95%는 이 용어를 싫어한다”고 부언해 주었다.

 특히 핀란드화를 ‘소련에 대한 예속’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동구권 국가들과 달리 소련이 핀란드 내정에는 간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소련은 핀란드와의 관계를 자신들이 추진하던 평화공존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로 부각하기 위해 애썼기 때문에 기껏해야 핀란드 공산당에 대한 음성적 재정지원이 전부였다는 것이다. 냉전 기간 현지 지식인이나 언론인들이 소련에 대한 비방을 자제한 것은 정부의 강요가 아니라 자발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강대국 정치에 연루되고 싶지 않았던 당시 핀란드 지식인들은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에 대해서도 비판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물론 이들은 이 무렵 핀란드가 비동맹 중립을 표방하면서도 유엔 같은 국제무대에서 친소 노선을 지지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소련과의 기본적인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핀란드가 73년 헬싱키 협약을 만들어냈고 군비통제와 인권문제를 지속적으로 논의하는 헬싱키 프로세스를 주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동서 양 진영 사이에서 ‘가교 국가’ 역할을 수행한 셈이다. 미국과 나토가 핀란드 영토를 이용해 소련을 침공할지 모른다는 모스크바의 우려, 거꾸로 소련이 핀란드를 통해 스웨덴과 노르웨이를 침공할 수 있다는 서방의 우려를 동시에 불식하기 위해 국방 분야에서 엄격한 중립을 견지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핀란드는 소련의 군사 위협에 대비하는 강력한 국방태세를 유지했고 무기체계도 미·소 두 나라 모두에서 획득했다.

 냉전 기간 핀란드의 대소 경제의존도가 크게 심화되었고, 그 결과 소련의 정치적 압력에 취약했다. 수출 시장과 값싼 에너지 공급원을 확보하려는 시도 때문에 70년대 이후 핀란드의 대소 무역의존도는 40%에 육박한 바 있다. 그러나 친소 정책을 주도했던 우르호 케코넨 대통령은 “지구상의 모든 국가가 사회주의를 택한다 해도 핀란드는 시장경제를 고수할 것”이라고 못박을 정도로 독자적 경제노선을 고수했다. 대소 경제의존을 줄이기 위한 다변화 전략도 게을리하지 않았고, 우리가 익히 잘 아는 핀란드의 국민기업 노키아는 바로 이러한 노력 위에서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핀란드화’를 단순히 강대국에 대한 약소국의 일방적 예속으로 규정하는 시각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변화하는 대외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한 약소국의 생존전략으로 보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중국의 부상을 마주한 우리도 마찬가지다. 동북아 질서의 변화가 반드시 한반도의 핀란드화를 부를 것이라는 불길한 확신에 시달릴 필요는 없다는 의미다. 오히려 우리의 운명은 강대국의 전략적 선택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단합과 대응전략에 달려 있다는 것이야말로 냉전기 핀란드의 생존전략이 한국에 주는 값진 교훈일 것이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 ·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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