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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악마는 익명성에 숨는다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다(水淸無魚)’처럼 오랫동안 나를 헷갈리게 한 속담도 없다. 오염된 시커먼 물이면 몰라도, 물고기가 어째 맑은 물에 없단 말인가. 게다가 “사람이 너무 청렴결백하면 남이 잘 따르지 않는다”라는 속담의 속뜻에 이르면 헷갈림은 극에 달한다. 이게 무슨 소린가. 그럼 적당히 타락하고, 뒷거래하며 사는 게 인생 정답이란 말인가. 설마 투명 사회보다 불투명 사회가 낫단 말인가. 불행하게도 2014년 6월의 대한민국은 이 질문에 “아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대표적인 게 공직자윤리법이다. 공직자윤리법은 국가적 과제가 된 관피아(관료 마피아) 척결의 최전방 소총수와 같다. 이 법에 따라 만들어진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는 퇴직 공무원의 낙하산 취업 제한 등을 심사·의결한다. 그런데 11명의 위원 중 위원장과 당연직 안전행정부 차관을 제외한 9명의 명단은 비공개가 원칙이다. 왜 그런가. 안행부의 설명은 이렇다.



 “위원 명단이 공개되면 민원이 몰린다. 이른바 안면 받힐 일이 생긴다. 책임 있게 독립적으로 심사할 수 없다. 그래서 법으로 막은 거다. 이전에도, 앞으로도 명단 공개는 절대 없다.”



 과연 그런가. 어렵게 수소문해 전직 위원 A에게 물었다. 그는 실명 공개가 법 위반이라며 익명을 요구했다.



 “현직 차관급 공무원 4명이 당연직 위원이다. 누가 위원인지 관료들은 다 안다. 일반 국민만 모르는 거다. 언론의 감시에서도 자유롭다. 그러니 봐주기가 더 쉽다. 위원회의 익명성은 ‘권한은 행사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묘수’로 작동한다.”



 게다가 2007년엔 “위원회 회의 내용은 공개하지 아니한다”(시행령 제19조 5항)는 조항이 추가됐다. 왜 이런 조항이 필요한지 설명도 이유도 없었다. A가 전한 비공개 회의 장면은 이랬다.



 “회의 시간도 일정치 않고, 심사 건수 편차도 크다. 적을 땐 10여 건, 많을 때 50~60건. 공무원들이 두툼한 자료를 만들어 온다. 꼼꼼히 들여다볼 시간은 당연히 없다. 대충 ‘문제 없지요?’ 묻고 ‘문제 없다’하면 통과하는 식이다. 공무원들도 소극적이다. 추가 자료를 요청하거나 (취업 제한 명단에) 누락된 기업을 지적하면 귀찮아 한다. ‘(잘해야) 우리 동료 앞길 막는 건데 열심히 해서 뭐하나’란 분위기다. 따지는 사람만 바보 되기 십상이다.”



 그 결과가 재취업 심사 통과율 93%다. 지난 5년간 1362명의 공무원이 심사를 받고 그중 1263명이 통과했다. 정권 말이면 통과율은 더 높아진다. 오죽하면 공직자윤리법이 재취업 제한법이 아니라 재취업 면죄부법으로 불릴까. A는 “실상을 알고 난 뒤엔 위원회 참석이 싫어졌다”며 “위원직도 전혀 명예롭게 여겨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럼 위원 명단은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나. A의 답은 “아니다”였다. “김영삼 정부 땐 위원장 포함, 9명의 위원을 공식 발표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까지는 간헐적으로 위원 명단을 발표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비공개로 굳어졌다. 비공개 조항은 시행령·규칙이 아니라 안행부 정보공개운영규정에 담겨 있다. 안행부가 마음 먹기 따라 언제든지 없앨 수 있다는 의미다.”



 A는 매듭말이라며 서양 속담 하나를 인용했다. “악마는 두 곳에 숨는다. 디테일과 익명성이다. 공직자윤리법 17조는 취업 제한 대상을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기업체로 규정하고 있다. 이 ‘밀접한’이란 단어 하나로 안행부는 법을 무력화했다. 수천, 수만의 공무원을 무사 통과시켰다. 물론 그런 일을 가능케 한 일등 공신은 익명성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관피아 근절책을 여럿 내놓았다. 공무원의 재취업 제한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유관 업무 범위도 소속 부서에서 소속 기관으로 확대하며 윤리위원회 심사 결과도 공개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책엔 여전히 두 가지가 빠졌다. 디테일과 익명성. 이 둘을 빼고선 악마의 손에서 ‘그’를 구해낼 수 없다. ‘공직자윤리법’ 말이다.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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