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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알 권리'가 '잊혀질 권리' 보다 먼저다

이만재
서울대 융합기술원 교수
지난달 13일 유럽 사법재판소는 ‘잊혀질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내용은 이렇다. 스페인에 사는 마리오 코스테하 곤살레스가 과거 자신의 집이 경매에 넘어간 사실을 보도한 언론사와 검색 결과에 띄운 구글을 상대로 기사 및 검색 결과 삭제를 요구했다. 이미 빚을 갚았고 집도 되찾았는데 자신에 관한 기사를 구글에서 검색하면 여전히 경매 이야기 위주의 정보가 나온다는 이유였다. 법원은 구글에 “원고에 관한 검색 링크를 삭제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사건의 핵심 키워드가 된 ‘잊혀질 권리’에 대해 꼼꼼히 따져보자. 이해하기 쉽고 정서적인 공감을 사기에도 좋은 말이지만 그 권리를 주장하기에 앞서 문제점을 먼저 따져봐야 한다. 이 판결에서 주목할 부분은 기사 원문이 아닌, 기사와 연결된 검색 결과 링크를 삭제하라고 한 점이다. 인터넷 검색 기능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감추고 싶은 욕망이 있다. 범죄 전과는 형이 집행된 후에도 당사자의 사회활동을 제약한다. 그래서 대다수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이번 판결처럼 숨기고 싶은 과거나 범죄 전과가 보도된 기사를 인터넷 검색 결과에서 영원히 지우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은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활동한 자취들이 한 사람의 ‘평판’을 결정하는 시대다. 이 때문에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나는 페이스북이나 구글 플러스 계정에는 악플이 드물다. 지금의 인터넷 평판 시스템이 나쁜 행동을 억제하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과거를 쉽게 지울 수 있다면 이런 선순환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지저분한 과거는 지우면 그만이다.



 잊혀질 권리를 공직선거 후보자들이 주장하기 시작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가 전과 등 알리고 싶지 않은 기록을 인터넷 검색 결과에서 지울 수 있다면 인터넷 검색은 시민들의 올바른 선택을 오히려 방해할 수 있다. 이번 판결에서 ‘널리 알려진 공인의 경우에는 이러한 판결이 유효하지 않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공인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결국 인터넷 사업자들이 소송에 휘말릴 위험이 큰 개인의 링크 정보들을 자발적으로 삭제할 가능성이 높다.



 인류의 집단지성 체계도 무너질 수 있다.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수집한 정보가 모여 있다. 특히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현존 인물 관련 정보는 신뢰할 만한 신문이나 출판물 게재 내용만 인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특정 인물에 대한 불리한 내용을 없애라는 판결이 나온다면 위키피디아 설립자 지미 웨일스의 우려대로 ‘인터넷 검열’의 시대가 시작될 것이다. 전 세계인들이 다섯째로 자주 찾는 사이트인 위키피디아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다시 생각한다. ‘모든 시민’의 알 권리는 ‘일부 사람들’의 잊혀질 권리보다 중요하다. 잊혀질 권리 논쟁에 대한 더 신중하고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만재 서울대 융합기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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