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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線 알아보는 눈 바치 선생님이 준 귀한 선물”

1 쉼 박물관에서 구본창 작가에게 작품을 설명해주는 게하르트 바치 교수.
2 풍경을 형상화한 작품 앞에 서서 풍경과 하나가 됨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작가 구본창(61)이 독일 함부르크조형미술대에서 예술사를 배웠던 게하르트 바치(Gerhard Bartsch·71) 교수를 부르는 호칭은 ‘독토어(Doktor) 바치’다. 외국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럼없이 교수의 이름을 부른다고 하건만, 그에게 바치 교수는 여전히 몸가짐이 조심스러워지는 스승이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연을 맺어 왔어도 “어떻게 감히 스승의 이름을 부르느냐”고 말한다. 바치 교수의 부인이자 함부르크국립예술대학 교수였던 화가 노은님(Eun Nim Ro·68)은 차라리 큰누나 같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이후 작품 세계를 새롭게 구성한 구 작가에게 청담동 화랑을 소개시켜 주며 격려했던 그녀다.

바치 교수와 노 교수는 최근 국내에서 잇따라 전시를 개최했다. 서울 테헤란로에 있는 갤러리 이마주에서는 ‘노스 라이트(North Light)’란 제목으로 독일과 노르웨이의 후배 교수 2명과 함께 4인전(5월 2~22일)을 했다. 또 평창동 쉼박물관에서는 바치 교수가 국내 첫 개인전 ‘오디세우스의 여행(Odysseus Travelling·5월 9일~6월 20일)’을 시작했다.

18일 오후 쉼박물관을 구 작가가 찾았다. 그의 손에는 두 송이의 카네이션이 들려 있었다. “한국에서는 5월 15일이 스승의 날인데 이날 카네이션을 드려요”라는 설명에 바치 교수는 “독일에서는 이런 게 없다”면서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건강은 좀 어떠시냐”는 질문에는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바치 교수는 2005년 뇌막염을 앓았다. “처음엔 심한 독감에 걸린 줄 알았어요. 입원한 지 4일째 되는 날 의사가 ‘죽는다’고 하더라고요. 치사율이 40%가 넘는 병이라면서. 사람들을 모아 하루 3교대로 간호했어요. 다행히 9일 만에 차도가 있었지요.” 노 작가의 회상이다.

걷는 것, 글을 쓰는 것부터 다시 배워야 했던 바치 교수에게 그림은 재활의 희망이었다. 하루 종일 그리고 또 그렸다. 유화를 그리는 부인과의 차별화를 위해 드로잉에 집중했다.

노: 얼마나 열심히 그리는지 쓰레기 좀 버려달라고 해도 “작업 하는 데 방해하지 말라”고 짜증을 낼 정도예요. 어렸을 때 그림 그리는 것을 아주 좋아했는데 부모님은 못 그리게 하셨다죠. 열 다섯인가 여섯 살 때 지중해와 스페인으로 배낭 여행을 떠났는데, 여행 중 만난 바젤의 한 화랑 주인이 전시를 하자고 제안했고 그 전시에서 작품도 다 팔았다 하더라고요.

3 스승 바치 교수와 노은님 교수 옆에 앉은 구본창 작가.
구: 그런데 왜 제목이 ‘오디세우스’인가요?

바치: 나를 치료해주던 의사가 마지막 상담 시간에 이렇게 얘기하더군. “당신은 오디세우스군요. 많은 것을 겪고 많은 생각을 했으며 오디세우스처럼 삶을 현명하게 헤쳐나갔군요.” 세상을 정처 없이 여행하고, 많은 어려움을 겪고 또 극복하고 나서 결국 고향으로 돌아오는 오디세우스처럼 나도 투병하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던졌지. 내 속에 있는 ‘또 다른 자아(Alter Ego)’를 찾고 싶었다고나 할까.

구: 드로잉이 즉흥적이면서 자유로워요. 함부르크에서 사진디자인을 공부할 때 선(線)을 매우 강조했던 생각이 납니다. 선은 살아 있는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그냥 껍데기만 그린 ‘가짜’도 많거든요. 제게 그걸 볼 줄 아는 눈이 생겼다는 것만 해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치 교수의 자유분방하면서도 간결한 선과 단순한 컬러는 사실 치밀한 분석적 작업의 결과다. 전시장 한 켠에는 그가 프로이트와 융의 정신분석학을 넘나들며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다양한 영상을 어떻게 형상화했는지 보여주는 촘촘한 도표가 걸려 있다. 그는 실제 여행을 하며 느낀 감정과 상상 속 여행의 느낌을 섞어 작품으로 풀어낸다. 눈앞에 보이는 건물과 산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 너머에 있는 지평선이 등고선처럼 그의 망막에 와 닿는다.

“이 그림은 캘리포니아 데스밸리를 상상하고 그린 것이지. 원시성이 느껴져서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야. 나는 이곳에 갈 때마다 고향에 가는 것 같네. 바위들이, 또 널브러진 산이, 융기한 바다소금이 생명의 힘을 주는 것 같아.”(바치)

쉼박물관 박기옥 관장이 쑥떡과 수박을 준비했다며 테이블로 불렀다. 스승과 제자는 서로 태블릿 PC를 꺼내 보여주며 못다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젖혔다.

노: 본창씨 학교 다닐 때 인기가 참 좋았지. 식당 아줌마는 지금도 ‘본창 잘 있느냐’고 물어봐요. 지금도 한국 학생들이라고 하면 ‘본창 구’를 아느냐고 물어본다니까.

구: 그때 암실 관리인 아저씨는 제게 아예 열쇠를 맡기셨죠. 30년 전이 정말 엊그제 같네요. 저는 내일 아랍에미리트로 떠납니다. 올해 이슬람 문화의 도시 행사 사진전에 한국 작가로는 유일하게 초대를 받게 됐어요. 또 7월에는 프랑스 아를 페스티벌에 공동 큐레이터로 참석합니다. 5명의 큐레이터가 작가를 2명씩 소개하는데 저는 돌아가신 한영수 선생님과 중국 작가 한 사람을 추천했어요. 다들 상업사진가로 알고 계시지만 그분이 50년대 한국의 풍경을 찍은 미공개작들이 정말 아름다워서 소개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치: 우리 부부는 오랜만에 여유롭게 한국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있다네. 얼마 전에는 제주도에 다녀왔고 최근엔 강원도 인제를 갔다왔지. 정말 아름다운 곳이라 사진도 많이 찍었고 한국 자료도 많이 모으고 있어. 창조적인 영감을 많이 받을 것 같아.”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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