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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의 하모니 실험은 치열하게 볼거리는 풍성하게

‘묵향’
요즘 공연계에 유난히 눈에 띄는 두 남자가 있다. 현대무용가 안성수(52)와 공연 연출가로 변신한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52) 콤비다. 안성수는 정교한 수학적 움직임과 음악의 절묘한 시각화로 브누아 드 라 당스 후보에까지 오른 대표적인 안무가요, 정구호는 여성복 브랜드 ‘KUHO’로 우리 패션계를 이끌어온 스타 디자이너다. ‘안·정 콤비’는 최근 국립발레단 ‘포이즈’(2012), 국립무용단 ‘단’(2013)이 주목받으며 무용계 특급 브랜드로 떠올랐다. 연출 개념이 약한 무용 공연에 패션 디자이너가 나서 안무가와 찰떡 궁합을 이루며 한층 업그레이드된 무대 미학으로 새 바람을 일으킨 것.

지난해 말 정구호가 10년간 몸담은 제일모직을 나온 뒤로는 더 똘똘 뭉쳤다. 지난 3월 김주원·김지영 두 스타 발레리나를 앞세운 탱고와 플라멩코의 향연 ‘투 인 투’를 전석매진시켰고, 4월 말 강동아트센터의 지역문화콘텐트로 제작된 ‘아츠 오브 에볼루션’에서는 발레와 현대무용, 한국무용수를 한 무대에 세우는 실험을 했다. 5월 31일부터는 국립극장에서 1주일간 이어지는 ‘단’ ‘묵향(국립무용단 윤성주 예술감독 안무)’ 교차공연으로 돌아온다. 대한민국 무용계를 종횡무진 휘젓고 있는 두 남자, 대체 무슨 사이일까.

국립무용단 ‘단’(안성수 안무· 정구호 연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5월 31일(토), 6월 4일(수), 6월 6일(금) 공연된다.
정구호
“안 선생님이 결혼 안 하셨다면 아마 오해 많이 받았을 걸요.”(정구호)
질투 날 만큼 다정해 보이는 동갑내기 두 남자는 서로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깍듯이 존대했다. 흔히 예술가는 까칠하고 신경질적이며 자기 세계를 양보하지 않는다지만, 각자의 분야에서 정상에 오른 두 예술가에겐 사소한 의견 충돌도 없단다. 누군가 아이디어를 내면 결코 ‘안 된다’가 아니라 방법을 찾을 뿐이라는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무한 신뢰를 과시하는 이상적인 예술동지였다. 마치 ‘핑퐁처럼’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작품을 만든다면서 인터뷰도 핑퐁처럼 만담하듯 이어갔다. 오십 줄에 든 아저씨들답지 않게 소년처럼 순수한 눈빛을 교환하는 이들은 과연 한 쌍의 소울메이트였다.

-한국무용의 현재를 보여주는 국립무용단 교차공연이 정구호 프로젝트가 됐네요.
정구호(이하 ‘정’): 어깨가 무겁다고 해야 되는데 사실 재미있어요. 정말 잘하시는 두 안무가께서 하시는 거라, 저는 멋지게 춤출 수 있도록 판만 벌이면 되니까요.

-두 분이 오래 함께하셨는데 최근 ‘정구호 연출’을 내걸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 전부터 조금씩 아이디어 내다가 ‘포이즈’ 때 최태지 단장님이 제안을 주셔서 기회가 됐죠.
안성수(이하 ‘안’): 사실 예전 작품들도 거의 구호 선생님이 연출한 거예요. 2001년 평론가 상을 받았던 ‘시점’이나 2004년 올해의 예술상을 받은 ‘선택’이란 작품도 선생님이 제안해 준 비주얼 안에서 저는 안무만 했을 뿐이죠.

정구호에게 아이디어를 펼칠 기회를 제공한 건 안성수 쪽이다. 1992년 어느 날, 뉴욕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던 무용 애호가 정구호에게 친구 안은미가 찾아왔다. “끝내주는 한국인 안무가를 봤어.” 공연을 함께 보러 갔고, 작품 의상을 조언하며 자연스레 친구가 됐다. “안 선생님이 1998년 ‘춤과 영상의 만남’이란 작품에 영상작가 대신 제게 영상작업을 맡기셨어요. 그때부터 조금씩 역할을 키워 여기까지 왔네요. 안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무용계에 들어오지도 않았겠죠.”

-20년 지기가 서로 꼬박꼬박 존대하시네요.
: 사실 그런 친구가 잘 없는데, 이 관계는 그냥 이렇게 가자고 자연스럽게 지내게 됐어요. 좀 다른 종류의 친구 같아요. 일반적인 생활화된 친구가 아니라 서로 좋아하는 일을 같이 작업하는 걸로 만족하는 사이죠.
: 중요한 고민도 털어놓고 상담도 하는데, 일 주변의 생활을 공유하는 관계랄까요.

-서로 어떤 점을 존경하시나요.
: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니까요. 구호 선생님의 설명만으론 전 비주얼을 그릴 수 없어요. 하지만 저도 모르는 비주얼을 위해 움직임을 만들면, 그걸 가지고 원하시는 걸 항상 이루어낸다는 거죠. 불가능한 게 하나도 없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 제가 어떤 아이디어를 내도 그에 맞는 멋진 춤을 짜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사실 약간 챌린지를 하는 건 있어요. 어디까지 가능한가 늘 챌린지를 하는데, 그런 것들이 항상 잘 맞아떨어져요. 생각과 다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왔던 것 같고요.

-작업 과정이 정말 궁금한데요.
: 누가 먼저 아이디어를 내든 핑퐁하면서 발전시켜 나가요. 예컨대 제가 이런 작곡가 음악 써보면 어떨까 제안하면, 그중 이 곡을 쓰자 제안 주시고. 말 그대로 핑퐁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만들어져요.
: 핑퐁을 하는데, 이건 아니다가 아니라 계속 더해지는 거죠. 가위표가 생기는 게 아니라 더해져서 좋은 쪽으로 가는 시스템이에요. 예컨대 ‘단’에서 선생님이 시나위에서 음표를 지워서 모던하게 가자고 하면, 그게 저와 딱 맞아떨어지는 거죠. 음표를 지우면 리듬이 부각되니까 움직임 짜기가 편해지거든요.

-의견 충돌도 가끔 있겠죠.
안·정: 전혀 없었어요.

-설마요.
: 하늘에 맹세코 한 번도 없었어요(웃음).
: 서로 일하는 방법이 이거 아니면 아니다가 아니라, 세상엔 얼마든지 방법이 많잖아요.
: 추구하는 가치가 같으니까요.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늘 동의가 되는 범위 내에 있는 거죠.
: 하면 할수록 더 확실해지는 것 같아요. 선생님이 이 정도면 됐다고 해도 내가 스스로 바꿔야 될 게 뭔지 알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연출에 춤이 가린다는 지적도 있죠.
: 그게 아니라 작품이 더 진해지는 거예요. 저 혼자라면 ‘단’ 같은 작품 안 만들어요. 현대적인 굿판이라는 이미지가 제 움직임만 갖다 놨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색감과 디자인, 음악, 조명, 모든 것이 입혀져야 하니까요. 너무도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연출인데 그로 인해 춤이 가려진다는 건 말도 안 돼요.
: 발레건 한국무용이건 엄청나게 화려한 무대가 많잖아요. 제 무대는 아주 심플한데 그게 더 두드러져 보인대요. 음악이건 무대건 의상이건 제 포커스는 춤이 잘 보이게 하는 거예요. 무용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도록 짠 건데 그게 서로 배치된다고 하면 아닌 것 같아요.

국립무용단 ‘묵향’(윤성주 안무 · 정구호 연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6월 1일(일), 6월 3일(화), 6월 5일(목), 6월 7일(토) 공연된다.
안성수
한국 춤의 오늘 보여주는 ‘단’과 ‘묵향’
‘단’과 ‘묵향’은 지난해 파격적인 무대로 국립무용단의 정체성 논란을 촉발했다. 그러나 ‘전통을 기반으로 한 한국춤의 현대화와 대중화’라는 국립무용단의 미션에 가장 걸맞은 ‘한국춤의 컨템퍼러리’라 할 만하다. 전통의 현대화를 위해 정구호가 제시한 두 가지 방법론인 셈. ‘단’이 한국무용에 근거한 완벽한 현대무용이라면 ‘묵향’은 전통춤 자체로 현대성을 추구한 경우다. ‘단’이 ‘이체동심’ ‘자중지란’ ‘혼연일체’ 등의 개념을 내세워 인간의 내면적 갈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삼라만상과 음양오행이 교차하는 굿판을 벌였다면, ‘묵향’은 한국무용의 거장 최현의 ‘군자무’를 모티브로 사군자를 모던하게 형상화해 정갈한 선비정신을 한 폭의 ‘미니멀 수묵채색화’로 펼쳐낸다.

-재공연은 어떻게 달라지나요.
: 디테일이 더 완벽해지겠죠. 공연예술은 계속 재공연하면서 완성도를 높여가는 거라 이런 기회가 정말 고무적이에요. 완전체로 레퍼토리화돼 가는 과정이 너무 중요하거든요.
: 음악과 조명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셔서 동선도 달라졌죠. ‘묵향’은 더 좋을걸요. 그림이 너무 예뻐서 제가 만들지 않았지만 뿌듯하고, 그걸 발전시켜 나가면 한국을 대표할 만한 작품이 나올 것 같아요.

-‘단’ 이후 국립무용단이 욕도 먹었죠.
: 욕먹지 않는 개혁은 없어요. 국립무용단은 우리 무용의 현재를 대표하는 단체고, 지금 현재의 모습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전만 고집하면 국악원과 차이가 없겠죠. 과거엔 그런 관점이었어도 이제 진보해 가야 되지 않을까요.
: 국립무용단마저 컨템퍼러리 안무가에게 맡기면 뭐가 남느냐고도 하던데, 현재의 한국 춤을 현재의 한국인이 만드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요. 아침 연습을 보면 그들의 실체를 알게 돼요. 저는 그걸 귀하게 여기고 구성의 언어로 쓰는 것이죠.
: 하나의 완성된 문화가 이뤄지려면 세 부류의 집단이 꼭 있어야 돼요. 전통을 유지관리하는 팀,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팀, 완전히 실험적인 도전을 하는 팀, 이 세 가지가 반드시 존재해야 문화적 밸런스가 맞는다고 생각해요. 국립무용단은 전통에 뿌리가 있지만 그것을 베이스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한국의 현재를 대변하는 무용단이 되는 게 맞지 않을까요.”

“무용 넘어 융복합 공연예술도 실험할 것”
한국 무용의 컨템퍼러리화에 계속 동참할 욕심이 있다는 이들은 이미 국립무용단의 신작 ‘토너먼트’(9월 예정)를 준비 중이다. 윤성주 예술감독까지 참여하는 배틀 형식으로 구성해 일상이 경쟁인 현대인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전혀 다른 성향의 두 안무가가 한 무대를 함께 구성하는 것부터 최초의 시도란다.

“두 분이 복합적으로 짜셔야 하니 저 혼자 즐겁고 두 분은 머리 싸매셔야죠. 기존 작품과 달리 드라마, 특수효과 등 재미를 부여해서 구성을 달리해보려는 작품이에요. 순수 무용작업만 하다 보니 대중이 어려워해서, 예술성은 유지하면서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볼거리 많은 공연으로 만들려고요.”(정)

제일모직을 나와 “열여덟 살 이후 처음 쉬어본다”는 정구호는 당분간 무용 중심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개인적으로 요즘 패션의 가치가 살짝 예전과 다르다는 느낌 때문에 좀 재미없어졌다”며 “죽을 때까지 열정을 쏟을 만한 일을 찾기 위해” 고민이 필요한 시기란다. “스테이지 작업은 할수록 재미있네요. 무용을 넘어선 새로운 개념의 융복합 공연예술도 실험해보려고 짜고 있어요. 우리 둘의 현재 위치가 안정적인 걸 추구할 위치는 아니니까요. 그동안 검증받았으니, 이제 남들이 두려워서 못하는 실험적인 것을 제안해 더 많은 이에게 영향을 주어야 할 위치라 생각해요.”(정)

“구호 선생님 연출이 아니라면 그런 작업 절대 안 했을 거예요. 저는 자신해요. 선생님같이 적립된 틀이 있는 사람이 그걸 깰 수도 있거든요. 아주 재미있을 거란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같이하는 거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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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