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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 선·악을 분리하면 인간은 자유로울까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 1850~1894) 스코틀랜드 태생으로 에든버러 대학에서 공학을 공부했다. 어려서부터 병약해 유럽과 미국 등지로 휴양 여행을 다녔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11세 연상의 이혼녀와 결혼한 뒤 의붓아들을 위해 『보물섬』을 썼고, 남태평양 사모아 섬에 정착해 작품 활동을 하다 뇌일혈로 세상을 떠났다.
실제로는 읽었든, 안 읽었든 다들 읽었다고 말하는 책이 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도 그런 책 가운데 하나인데, 아마도 영화와 연극, 뮤지컬로 워낙 많이 만들어져 굳이 소설을 읽지 않고도 줄거리를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이 작품의 줄거리를 다 아는 독자라 하더라도 특히 주목해서 읽어야 할 대목은 마지막 장 ‘헨리 지킬의 진술’이다.

지킬 박사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좋은 체격에 성실함과 총명함까지 갖추었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유희에의 탐닉과 오만한 욕망이다. 그는 인간의 이중성을 끈질기게 파고든 끝에 끔찍한 진실을 발견한다.

“바로 인간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다면적이며 이율배반적인 별개의 인자들이 모여 이루어진 구성체라는 가설을 감히 내놓고자 한다. 인간의 절대적이고 근원적인 이중성을 나 자신이 직접 체험했다. 의식 속에서 갈등하는 두 개의 본성을 본 것이다.”

지킬 박사는 선과 악이라는 인간의 두 가지 본성을 분리시키면 인간이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실험에 몰두한다. 마침내 자신 안에 숨어 있는 악의 본능을 끄집어내는 약을 만들어내고, 뼈가 뒤틀리는 극도의 고통을 겪은 뒤 변신에 성공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악의 정체가 바로 흉측한 몰골에 난폭한 성격을 지닌 에드워드 하이드인데, 그는 거울에 비친 추악한 외모를 보며 반감이 아니라 오히려 반가움을 느낀다.

“몸이 더 젊고 더 가볍고 더 행복해진 느낌이었다. 그 안에 통제할 수 없이 무모해진 내가 있었다. 의무감은 녹아내렸고 영혼은 낯설며 순수하지 않은 자유를 갈구했다. 마침내 그 본성을 깨달은 순간, 마치 와인을 마실 때처럼 나는 쾌감을 느꼈다. 나는 두 손을 뻗어 이 신선한 감각을 만끽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비록 사악한 모습이지만 위선에 익숙한 지킬보다 하이드가 훨씬 더 자연스럽고 인간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하이드 역시 자신의 분신 아닌가? 하이드는 개성이 뚜렷한 ‘순수한’ 악의 존재였다. 그렇게 해서 나이 오십 줄에 접어든 저명한 교수가 약을 먹고 쾌락을 위해 범죄를 저질렀던 것이다.

“대중의 눈앞에서는 점잖은 체모를 유지하다가 한순간 동네 악동처럼 껍데기를 모두 벗어던지고 곧바로 자유의 바다로 뛰어들었다.”

범죄는 하이드가 저지른 것이고, 다시 깨어나면 선한 양심은 훼손된 것 같지 않았다. 그는 하이드의 악행을 만회하기 위해 더 열심히 선행을 베풀었다. 그런데 문제는 선악의 복합체이기는 했으나 지킬이 하이드를 생각하는 만큼 하이드는 지킬에게 흥미가 없었다는 점이다. 하이드에게 지킬은 범죄를 저지르고 몸을 피하는 은신처에 불과했다. 지킬은 아버지 이상의 관심을 갖고 돌보았으나 하이드는 아들의 무관심을 극한으로 보여주었을 뿐이다.

지킬은 고심 끝에 하이드와 결별하기로 하고 두 달 동안 약을 끊는다. 하지만 자유를 갈망하는 하이드의 고통을 참지 못해 다시 약을 제조하고, 마침내 악의 본성이 포효를 지르며 갇혔던 우리에서 뛰쳐나온다. 그날 밤 하이드는 발작적 황홀경을 느끼며 노신사를 무차별 난타해 살해한다.

하이드는 다시 지킬로 변신해 숨지만 사악한 자아의 유혹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이드의 힘은 점점 더 강해져 이제 약을 먹지 않아도 지킬은 하이드로 변신하게 된다. 지킬은 다시 변신하기 위해 약을 두 배로 먹지만 더 이상 약을 제조할 수조차 없는 지경에 이른다. 쾌락과 자유는 두려움과 공포로 변하고, 지킬은 마지막 선택을 한다.

“지금은 내가 죽을 시간이다. 이후로는 내가 아니라 하이드의 문제가 될 것이다. 이제 나는 펜을 내려놓고 이 고해의 편지를 봉인한 후 불행한 헨리 지킬의 삶을 마감하고자 한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추리소설의 본질은 살인이 아니라 질서의 복원이다. 범죄로 인해 야기된 혼돈과 불안이 종국에는 제자리를 잡고 균형을 회복해 가는 것이다. 지킬 박사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악의 존재를 스스로 제거함으로써 질서를 되찾듯이 말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읽을 때마다 떠오르는 궁금증 하나는, 작가인 스티븐슨이 지킬 박사에게서 악의 본성이 아니라 선의 본성만 끌어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재미는 없었을 것이다. 베스트셀러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선보다는 악에 더 관심이 많으니까.

이 작품은 1886년 영국에서 출간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4만 부나 팔렸는데, 그 비결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지킬과 하이드가 동일 인물인지 알 수 없도록 한 덕분이었다. 그런 궁금증이 사라져버린 지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장르에서 이 작품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나 자신의 내부에도 두 개의 본성이 도사리고 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이드의 머리글자인 H와 지킬의 머리글자 J 사이의 알파벳이 I(나)인 것처럼 말이다.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다. 출판사 굿모닝북스 대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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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