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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경의 취리히통신] "안전 문제는 털끝만큼도 타협 안 해" 노르웨이 엄마의 교훈

‘취리히 미국여성회’가 주최하는 안전교육 워크숍 포스터. 한 사람당 입장료가 30프랑(약 3만5000원)으로 비싼 편이지만 예약이 만료됐다.
윗집엔 노르웨이 가족이 삽니다. 그 집 딸 릴리아와 우리 집 딸이 동갑내기라 친하게 지내게 됐죠. 어느 날 제가 딸을 데리고 가야 하는 모임이 생겼습니다. 장소는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공원. 차로 가면 10분이지만 마땅한 대중교통편이 없어 꼼짝없이 한 시간을 걸어야 한다고 고민하니, 차 있는 릴리아 엄마가 선뜻 태워준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묻습니다. “아이용 카시트는 있는 거지?” 차가 없어 걸어갈 판인데 웬 카시트? 없다고 하니 그럼 태워줄 수가 없답니다. 혹시 열두 살 이하 아이를 카시트에 앉히지 않고 운전하다 걸릴 경우 내야 하는 벌금 60프랑(약 7만원) 때문에 그런가 싶었죠. “단속이 문제가 아니라 안전 때문이야. 난 다른 건 몰라도 안전 문제는 털끝만큼도 타협 안 해.” 그날 유모차를 끌고 한 시간 거리를 걸어가면서 속으로 릴리아 엄마 원망을 어찌나 했는지 모릅니다.

 세월호 참사 소식에 분노만큼 컸던 게 죄책감입니다. ‘내가 만리타향에서 왜 죄책감을 느낄까’ 곰곰이 생각하다 떠오른 게 그날 일이었습니다. 남만큼도 내 아이 안전을 걱정하지 않은 죄, ‘이번 한 번만’이라며 규정과 늘 타협하며 살아온 죄, 그럼에도 무슨 일이 생기면 남 탓만 한 죄. 한국에서 살 때 택시를 탔다 하면 첫마디가 “급하니 빨리 좀 가주세요”였습니다. 비행기 이착륙 시 벨트를 안 매고 있다가 승무원에게 주의를 받으면 투덜거렸고요. 에스컬레이터를 뛰어올라 가거나 무단횡단을 한 건 셀 수도 없습니다. ‘나 같은 어른이 모여 한국을 ‘위험 사회’로 만들었다’는 뒤늦은 자책으로 괴로웠습니다.

 안전사고 발생률이 낮은 유럽 선진국의 경우 학교·직장에서 철저한 안전교육을 시킨다는 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저희 집 앞에 있는 중·고등학교엔 잊을 만하면 대형 소방차가 와서 귀가 찢어질 듯 사이렌을 울립니다. 모의 대피 훈련을 하는 거지요. 주목할 점은 정부가 교육을 충분히 시행하는데도 여성회·학부모회 등 각종 민간 단체들이 자발적으로 꾸리는 프로그램이 넘쳐난다는 겁니다. 아이가 다니는 놀이방 앞에 붙은 안내문들의 제목은 이렇습니다. ‘영·유아 양육 시 위기상황 대응법’ ‘아이가 물에 빠졌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집에 불이 났을 때’ ‘여름철 숲 속 활동 시 주의사항 실습’. 민간 단체 주도이다 보니 대개 유료 교육이지만 금세 마감됩니다.

 심리학자로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은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정치인 등 타인의 비판을 두려워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관행적인 방법을 선호하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 한다고 지적합니다. “의료사고 소송이 빈번하게 일어나자 의사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수술 절차와 방법을 바꾸었다. 더 많은 테스트를 지시했고, 전문의들에게 더 많은 사례를 알려주었으며, 실효가 없더라도 일반적인 치료법을 적용했다. 이런 행동은 환자를 돕기보다는 의사를 보호하는 일이며 갈등만 더욱 증폭시킨다.” 지지율이 뚝 떨어진 한국 정부가 자기 보호에 급급한 의사 행태를 보이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전시용 법안과 눈가림용 매뉴얼이 난립할 수 있다는 거죠. 개인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의사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중국 고대 전설적 명의인 편작에겐 역시 의사인 두 형이 있었다고 합니다. 황제가 편작에게 3형제 중 누가 가장 훌륭한 의사냐고 묻자 편작은 망설임 없이 맏형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어려운 병을 고쳤다고는 하나 병이 나기도 전에 미리 알아내어 그 병에 걸리지 않게 해주는 맏형이 가장 훌륭한 의사입니다.” 한국 정부가 병이 나기도 전에 미리 알아내 예방하는 명의는 아니더라도 어려운 병을 뒤늦게나마 잘 고쳐줬으면 하는 바람은 지나친 걸까요.

김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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