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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남자가 감정을 표현할 때

김형경
소설가
그는 아내가 이야기를 꺼내면 잘 경청하려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인내심이 바닥난다. 장황하게 나열되는 아내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핵심이 없고, 불평불만의 연속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끔 아내의 말 속에 분노의 감정이 묻어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자신에 대한 비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성장 과정에서 그가 경험한 폭력 중에는 언어폭력이 으뜸이기 때문이다. 그는 기어이 아내의 말허리를 자르고 만다. “그래서 결론이 뭐야? 알아들을 수 있게 한 문장으로 말해 봐.” 순간 아내는 입을 닫고 토라진 태도로 자리를 뜬다. 그는 대화를 시도했는데 아내가 왜 화를 내는지 알 수 없다.

 그녀는 남편이 감정을 잘 표현해 주기를 바란다. 자기와 함께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나누고, 삶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특정인에 대한 불평불만을 공유하기 원한다. 여자들은 불만을 공유하면 유대감이 형성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녀는 가끔 남편의 감정을 이끌어내기 위한 무의식적 전략을 쓰기도 한다. 왜 날마다 술을 마시느냐고 잔소리를 퍼부어 결국 남자가 소리를 지르게 함으로써 그의 감정을 확인한다. 그럼에도 아내들은 막상 남편이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면 당황한다. 남편이 내놓는 비통하고, 나약하고, 고통스러운 감정 앞에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저렇게 약한 남자를 어떻게 믿고 세상을 살아갈지 걱정이 앞선다.

 얼마 전까지 남자들은 감정을 억압한 채 가장과 남편 역할만 하면 됐다. 하지만 최근에 여자들이 남자에게 다른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감정을 부드럽게 표현하면서 정서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를 원한다. 이 색다른 요구 앞에서 남자들은 이중으로 결박되는 느낌이 든다. 한편으로는 “당신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기 바라요”라는 말과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나약한 감정을 내보이면 남자답지 않겠지요”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부부나 연인들이 상대에게 원하는 것 중에는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대신 소화시켜 달라는 요구가 있다. 대화가 잘 통하는 남자를 원하는 여자도, 섹스가 잘 통하는 여자를 원하는 남자도,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일상에서 경험하는 불편한 감정들을 상대방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다. 상대가 자신의 스트레스나 불안을 진정시켜 주고, 자신의 존재가 의미 있다는 메시지를 주기를 원한다. 그런 이들일수록 자기 감정을 조절하고 소화시키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주기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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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