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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센 사람일수록 말할 의무가 있다

고정애
런던특파원
영국 의회 주변은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의회민주주의의 상징이니 그럴 법도 하다. 건물 외관은 또 좀 고색창연한가. 실은 내부도 못지않다. 방문자들로 붐비는 웨스트민스터 홀부터 그렇다. 1097년 건립됐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중세 느낌이 물씬 나는 목조 장식의 천장부터 영국사를 호령했던 인물 이름이 새겨진 동판이 곳곳에 박힌 바닥까지 어디 하나 소홀히 넘길 데가 없다. 의회 내 ‘사통팔달 길목’이랄 수 있는 중앙 로비에선 영국 정치의 중심이란 위용이 느껴진다.

 건물에만 눈길이 가는 게 아니다. 흰색 가발을 쓰고 검정 타이츠를 착용한 입법서기들은 어떤가. 수백 년째 같은 차림이었을 그들을 보며 누구나 세월을 가로지르는 듯한 느낌이 들 게다.

 이런 건 그래도 과거로부터의 흔적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중요한 건 현재일 터이니 말이다.

 실제 진정 인상 깊었던 건 바로 PMQ(Prime Minister’s Questions)였다. 매주 수요일 12시부터 30분간 총리에게 질문하고 답변을 듣는 시간이다. 영국 BBC는 물론 미 의회 방송인 C-스팬도 중계한다.

 어떻기에 싶을 터인데 검투사들의 혈투가 벌어지는 콜로세움을 떠올리면 된다. 칼이 아닌 말로 무수한 공격과 반격이 오간다. 야유와 박수와 발구름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데시벨의 소음이 회의장을 가득 메운다. 평의원들의 벌떡벌떡 일어서기는 코믹하기까지 하다. 하원의장이 수시로 조용히 하라는 의미로 “오더(order·질서)”를 외치는데 하도 우렁차, 의장은 필시 목청을 보고 뽑았을 것이란 확신이 들 정도다. 그에 비하면 우리 국회는 양반이다.

 하이라이트는 총리와 야당 당수 간의 질의응답이다. 미래 권력을 꿈꾸는 이가 공격하고 현재 권력이 반격하며 일 합을 겨룬다. 야당 당수가 여섯 번까지 발언할 수 있으니 정확하게는 육 합이랄 수 있겠다. 두 사람은 노트 하나만 보며 치고받았다. 장수 간 대결로 승부를 가렸던 중세 시대의 전투가 이랬으리라.

 PMQ를 현장에서 두 번 봤다. TV 중계로 볼 때보다 더 시끄러웠고 더 현란했다. 두 권력이 품어내는 말의 에너지가 관람석 꼭대기에까지 전달될 정도였다. 저런 것까지 묻나 싶은 것도 물었고 저런 걸 다 알고 있나 싶은 것까지 답했다. 평점도 매길 수 있었다. 둘 다 열심히 안 할 도리가 없겠다 싶었다.

 우리는 권력 있는 사람일수록 대중 앞에서 말을 안 해도 되는 특권을 누린다. 말을 하더라도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 그마저도 대리인을 내세울 때가 많다. 육성(肉聲)이 있어야 할 자리를 무언(無言) 또는 전언(傳言)이 대신하곤 한다. 그러다 위기를 재난으로 키운다. 요즘처럼 말이다.

 영국에서도 대의민주주의 위기란 우려가 나온다. 정치인들이 불신을 받는다. 여기나 한국이나 싶을 때도 많다. 그러나 분명 영국의 PMQ는 부러웠다.

고정애 런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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