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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문화는 교류" 200년 전 꽃핀 한·중 지식포럼

중국 옌칭에서 열린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의 송별연을 그린 ‘추사전별도(秋史餞別圖)’를 무호(無號) 이한복이 베껴 그린 그림. [사진 문학동네]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정민 지음, 문학동네
718쪽, 3만8000원


우연은 필연의 씨앗일 터이다. 하지만 인연의 기운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는 농부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모든 만남이 그럴 것이다. 스쳐 지나가다 문득 멈추는 찰나, 전혀 새로운 미래가 움트는 순간이다.

 1766년 1월, 옌칭(燕京·연경, 지금의 베이징·北京)의 유리창 거리. 구경 나온 조선 연행사(燕行使·청나라에 보낸 사신)의 일원이 서적을 들추던 중국 선비의 안경을 탐낸다. 말은 통하지 않으니 필담으로 "값은 후하게 쳐 드릴 테니 팔라”고 청한다. 당시 조선에서는 질 좋은 안경을 구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중국의 선비는 불쑥 안경을 벗더니 “동병상련의 뜻”이라며 그냥 준다. 답례품도 사양한다.

 이는 조선 사신일행에 화제가 됐는데, 마침 호기심 충만한 36세의 홍대용이 이 기회를 흘려 보내지 않는다. 객점으로 이들을 찾아가 수인사를 나눈다. 바로 항저우 출신 향토선비 엄성과 반정균이다. 서로 의기가 맞아 숙소를 오가며 필담을 나누는데, 새로운 친구들이 가세하면서 만남이 커진다. 한·중 지식교류의 큰 마당이 선 셈이다.

 이 때는 몰랐다. 이 우연 찮은 만남이 조선의 근대를 꽃피우는 씨앗이 될 줄은. 귀국 후에도 이들의 교유는 지속된다. 홍대용의 ‘건정동필담’과 엄성의 ‘철교전집’에 주고받은 서찰과 문집이 상세히 담겨 있다. 지식 교류는 시야를 넓힌다. 홍대용은 『의산문답』에서 실옹(實翁)과 허자(虛者)를 통해 서양과학을 소개하며 자신의 우주관을 펼친다. 바로 ‘북학(北學)’의 뿌리이다. 이 같은 학풍은 박지원의 『열하일기』, 박제가의 『북학의』로 이어진다. 바야흐로 병자호란에서 비롯된 자격지심과 삼전도 굴욕이 안긴 정신적 외상을 발전적으로 극복하는 계기가 된다. 한·중 지식인 간의 만남이 시내를 이루고 미구에 거대한 강줄기로 발전하면서 흘러간 명(明)을 고대하던 북벌(北伐)의 정서가 현실의 청(淸)을 인정하는 북학(北學)으로 변전하는 것이다.

청나라 화가 나빙이 그린 박제가 초상화. 두 그림 다 과천시 추사박물관 소장품이다. [사진 문학동네]
 저자 정민은 이를 ‘문예공화국’이라 칭했다. 18세기 유럽에서 쓰였던 용어인데, 라틴어를 공통 문어로 나라와 언어의 차이를 넘어 인문학자들이 편지와 책으로 소통하던 아름다운 지적 커뮤니티를 일컫는 상상 속의 공화국이다. 한국과 중국의 지식인들도 당시 한문을 매개로 지적 공동체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문예공화국에서는 모든 시민이 ‘벗’이다. 일찍이 박지원은 “벗은 ‘제2의 나(第二吾)’이자 주선인(周旋人)이라고 한다. 붕우(朋友)의 붕(朋)은 깃털 우(羽)에서, 우(友)는 손 수(手)에서 비롯된 글자이다. 날개가 없는 새와 두 손이 없는 사람을 생각해 보라. 날지도 뛰지도 못한다. 친구란 바로 이런 존재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한·중 교류를 마뜩잖은 눈으로 보는 이들도 있었다. 홍대용의 천애지기(天涯知己)론에 김종후는 “청(淸)은 비린내 나는 더러운 원수의 땅, 1등인으로서 2등 3등인과 교류를 떳떳하게 여기느냐”고 질타하기도 했다. 홍대용은 이에 “우물 안에서 돌을 맞았다(下穽投石)”고 했다. 그래도 만남은 또 다른 만남을 잉태하는 법이다. 세월이 흘러 24세의 추사 김정희가 연행에 올랐을 때 77세의 중국 지식인 옹강방이 반겼고, 이 만남은 또 19세기 한·중 문예공화국의 단초를 연다.

 프랑스의 분자생물학자 자크 모노는 “모든 진화는 우연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합목적성이나 필연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연에 호기심과 인내심이 더하면 필연으로 승화하지 않을까. 저자가 하버드대학 옌칭도서관에서 후지스카(藤塚)컬렉션을 접한 것도 마찬가지일 게다. 한·중 문예공화국의 뿌리를 경성제대 교수였던 일본인 학자가 캐내고, 관련 기록들이 미국 대학에 갈무리돼 있으며, 작금에 이르러 한국 학자가 드러내는 것도 것도 홍대용의 코스모폴리탄 시각으로 보면 이 역시 긍정적인가.

박종권 기자

청나라서 배울 건 배우자, 북학사상

북학(北學) 사상의 바탕은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이다. 청(淸)을 배척만 할 것이 아니라 배울 것은 배우자는 것이다. 당시는 이미 멸망한 명(明)을 여전히 정신적 지주로 삼으면서 ‘북방의 오랑캐’를 치자는 북벌(北伐) 대의론이 우세하던 시기이다. 이 때 정체된 조선의 현실을 깨닫고 청나라의 선진문화를 선택적으로 수용하자는 주장은 신선하면서 동시에 위험한 것이었다.

 북학은 『맹자(孟子)』에 나오는 용어인데, 박제가가 『북학의(北學議)』로 제목을 붙이면서 당시의 학문과 사상 전반을 응축한 표현이 됐다. 그 선구에는 홍대용·박지원과 박제가·이덕무·이서구가 있다. 이들은 고증학에 관심을 기울였는데, 이러한 학풍은 정약용을 거쳐 김정희로 이어진다. 북학의 개방성은 최한기의 개국론으로도 발전하며 근대사상의 전환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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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