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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택 기자의 '불효일기'<16화>왜 건강관리를 하시나요

발칙한 질문으로 시작해야겠다. 암환자 아버지는 왜 건강관리를 하는 것일까. 말도 안 되는 질문이기는 하다. 건강을 잘 챙겨서, 아프지 않고 오래사는 것은 모든 암환자의 목표인데. 그걸 모르고 질문을 한 것은 아니다. 단순히 아프지 않고 오래 살기 위해서라면, 의사 지시 따르고 치료 받으면 된다.

물론 많은 암환자들은 저마다의 건강관리 노하우가 있다. 이전에 병실에서 만났던 어떤 50대 암환자 아저씨는 항암치료가 끝나면 시골에 내려가 농사를 짓는다고 하셨다. 농사로 다져진 신체 덕분에 치료가 부담스럽지 않다고 했었다. 다른 아저씨는 꾸준히 걸었다. 병동 내에서는 복도를 걸어다니면서 체력 관리를 하는 노인들을 의외로 많이 볼 수 있다.

아버지 역시 나름대로의 건강관리 비법이 있다. 우선 지칠 때까지 산책을 한다. 대개 동네 작은 산에서 봉우리 2개 정도를 넘어가는 2시간 코스의 산책을 한다. 물론 가족 입장에서는 조마조마하다. 아버지는 “컨디션 따라 일찍 귀가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지만.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먹는다. 직접 요리를 할 때도 많다. 입맛이 없으면 음식 프로그램을 보면서 맛을 상상하고, 또 그 느낌을 살려서 먹는다. 통증이 오면 기록을 해 의사에게 제출하고, 아프면 자세를 바꿔가면서 안 아프게 잘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

아프기 전 일할 때 만큼이나 치열한 투병생활. 암환자 아버지는 왜 건강관리를 할까. 정답이라고 말씀하신적은 없지만, 아버지와의 대화를 종합해 본 결과 “애들 만나려고”였다. 애들의 범주에는 나(자녀)도 있고, 아버지가 지도했던 학생들 또는 나의 친구들도 있다. 아버지의 지인 또는 학창시절 친구분들도 ‘애들’의 범주로 묶으시기도 한다.

오늘도 아버지는 깔끔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만나게 된 것은 문자 몇 개를 주고 받다가 번개(?)를 하게 된 것이다.

“어디냐.”
“지하철이요. 집으로 가는 중입니다.”
“커피숍에서 잠깐 보면 안 될까. 나도 버스 타려고.”
“그러세요.”
“OK.”

아버지는 조금씩이라도 꼭 영어를 쓴다. “Thank you very much” “Good” 같은 간단한 문장을 쓰지만, 불효자 아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기자가 되면서 영어를 손에서 놓은 아들을 꾸짖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유독 외국어 공부를 강조했다. 내가 서른 살이 넘은 뒤에도 아버지는 꾸준히 국제 무대의 중요성과 외국어 공부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버지의 지속적인 관심과 훈계로, 지난해에는 무려 영어로 토론을 진행하는 ‘아시아 유럽 저널리스트 콜로퀴움’이라는 행사에 갔다가 엄청 고생 하고 왔다. 아들이 영어 장벽으로 고생하고 왔다는 이야기를 너무나도 즐겁게 듣고, 또 당시 발표했던 내용을 한 번 아버지 앞에서 똑같이 말해보라고 하시는 것을 보면 엄청 좋아하셨던 것으로 보인다.

난 커피를 시켰다. 아버지는 커피가 지겹다면서 망고 주스를 드시기로 했다. 아버지는 커피를 하루에 3잔 이상 드신다. 입에 너무 텁텁해서 견딜 수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암환자는 가글을 많이 해야 하고, 가글을 많이 하면 입 안이 텁텁하다. 이 때문에 커피를 먹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불효자 아들이 장애물이 됐다. 갑자기 내 배가 아팠다. 중고교 시절 익숙했던 위장병의 통증이 엄습해, 아버지를 커피숍에 두고 바로 옆 약국으로 갔다. 최근 내가 진료를 받았는데 담당 의사가 항생제와 소염제를 처방해줬다는 이야기를 하자, 약사는 겔포스를 줬다. “모레 진료 때는 의사 선생님께 제산제 이야기를 하세요”라고 했다.

결국 불효자 아들은 아버지가 한 입 먹은 망고주스를, 아버지는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됐다. 아버지는 커피에 설탕을 두 봉지를 넣었다. “암이 설탕을 좋아한다지?”라는 농담과 함께.

아버지는 커피를 한 입 먹고는, 친구분인 ‘준수 아저씨’의 아들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다음주 쯤 명동에서 결혼을 하는데, 자신이 가야 친구가 좋아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엄마는 “아니, 암환자가 건강이나 챙기지 무슨 결혼식을 다 챙겨서 가느냐”고 핀잔을 줬지만,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일상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결혼식에서 친구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학창시절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다. 앞으로 2주 동안 아버지의 머릿속은 친구 아들의 결혼식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어제까지는 다른 목표가 있었다. 어제 아버지는 저녁에 가족들을 모조리 불러 모임을 했다. 근처 아구찜집에 갔었다. 차를 타고 2시간 가까이 달려 온 숙부님 가족 등 20여명의 가족이 함께했다. 아버지는 “언제 또 볼지 모르지만, 오늘 봐서 반가웠다”면서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아버지는 이 역시 어머니의 반대가 있었지만(어머니는 언제나 아버지가 건강 상태를 생각하지 않고 무리한다고 걱정한다), 아버지의 꾸준한 주장으로 결국 진행됐다.

아버지는 어제의 가족모임을 위해 최근 입원에서 통증 조절에 애를 썼다. 병실에서 1시간 단위로 자신의 통증과 투약된 진통제에 대한 느낌을 소상히 적어, 의사 접견 시간에 이야기 했다. 결국 아버지는 자신에게 맞는 진통제와 용량을 어느 정도 찾아, 의사에게 적절한 처방을 받고 퇴원을 했다. 혹시 몰라 듀로제식 두 장을 양쪽 가슴에 붙이고(의사가 지시한 최대 용량보다 작은 양이다) 왔다고 했다.

퇴원을 앞두고 침대에 기대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 통증이 덜 오는 자세를 찾는 중이다. 아버지는 3일간 고군분투한 끝에 최적의 통증방지 자세와 진통제의 용량을 찾았다. 매 시간마다 세부 사항을 적어 의사에게 제출했다. 그 덕분에 본인이 그리도 원하던 가족 모임을 주재할 수 있었다. 통증이 심하면 취소될 예정이었다.

이날 가족 모임을 위해, 퇴원 후 이틀간 집에서도 최대한 움직이지 않았다고 했다. 자꾸 움직이면 늑골에 있는 암덩어리가 통증을 일으킬까 두려워서다. 의자에 앉은 자세로 가만히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통증으로 힘들어하면 모임은 취소가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만큼 가족들을 모두 불러 식사 한 번 하고 싶었나보다.

오늘은 수녀로 봉직하는 고모님과 점심을 드셨다고 했다. 진료차 병원에 갔던 아버지의 스케줄에 수녀님께서 맞춰주셨다고 한다. 함께 병원 식당가에서 점심을 먹었다고 한다. 다음에는 수녀님을 집에 초대해 같이 소고기를 구워먹고 싶다고 했다. 수도자 누님께 뭔가 대접을 하고 싶지만, 여의치 않은 사정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사실 한 번 제대로 모시고 싶을 것이다.

아버지는 남은 삶을 더 가치있게 살고, 아쉬운 것이 없도록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 첫 걸음이 바로 건강관리였다. 물론 매주 병원을 집처럼 드나드는 암환자의 상황이지만, 오늘 하루를 살더라도 재밌게, 또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 만나 추억을 쌓고 싶었던 것이다.

*ps. 대학 교수로 일하시는 독자님으로부터 e-메일을 받았다. “복잡한 심사였는데, 한 아들이 암에 걸린 아버지를 모시고 이런 맛깔 나는 이야기를 풀어내다니…. 공유할 기억이 있고, 옆집의 삶을 엿보면서 느끼는 이 은밀한 공범의식은 뭐라 말할 수 없는 쾌감”이라고 말씀하셨다. 독자님의 말씀대로, 아버지의 추억을 더욱 공유하려고 한다. 그게 아버지의 재미이기도 할 것이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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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